메디슨, 재벌 흉내 내다 ‘뜨거운 맛’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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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벤처 기업, 문어발 확장으로 자금 사정 나빠져… 기술·영업도 ‘한계’
메디슨은 한국 벤처 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업체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최근 SG증권 서울 사무소가 ‘메디슨을 팔아라’는 보고서를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이유는 하나, 메디슨이 재벌을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초음파 진단기 시장에서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는 이 업체는 무려 27개 기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투자 금액은 4백45억원, 융자 금액은 2백20억원. 자기들의 주력 업종인 의료 기기 사업과 무관한 사업에 투자한 금액이 1백21억원이나 된다. 웬만한 재벌 뺨치는 것이다.

이런 문어발식 확장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메디슨을 압박하고 있다. 97년 메디슨이 거둔 순익은 1백50억원. 그런데 27개 기업까지 포함할 경우 순익이 55억원으로 줄어든다. 모기업이 번 돈 가운데 백억원 정도를 까먹은 것이다.

이러니 메디슨의 자금 사정이 넉넉할 리 만무다. 전세계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비와 운영 자금이 늘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현금 순증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것이다.

어려워진 자금 사정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사례가 지난해 10월에 나타났다. 당시 메디슨이 대규모 유상 증자를 할 때 이민화 회장은 12만주 정도를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주주들에게는 신주를 사라고 권유하면서 자신은 신주 인수권을 팔아 치웠다. 그 결과 그의 지분율은 5.38%에서 4.69%로 줄었다.

그런데다 올해부터는 메디슨의 영업 환경이 예전같지 않으리라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지난해 메디슨의 매출액은 56%나 신장했지만, 올해는 27.8%, 2000년에는 19.5%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진 탓도 있지만, 환율 급등에 따른 수혜가 사라진 것도 한 원인이다. 한마디로 메디슨의 황금기는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메디슨이 기술적 우위를 계속 지키기도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 현재 메디슨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3차원 영상 초음파 진단기를 생산하는 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크레츠 테크닉 사를 1백33억원에 인수해 확보한 것이다. 메디슨은 이 기술이 경쟁 업체보다 2∼3년 정도 앞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업계에서는 진입 장벽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올해부터 달라진 회계 기준도 메디슨에게는 부담스럽다. 과거에는 기술 개발비를 여러 해로 나누어 회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해당 연도 재무 제표에 한꺼번에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메디슨의 순익은 급속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메디슨은 지금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화 쪽으로 역량을 결집할 것인가. 올해 벤처 업계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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