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사전에 2인자는 없다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9.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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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에게 힘 몰아 주지 않아… 김중권 위상 흔들, 권노갑 잠행
야당 총재 시절 김대중 대통령은 승용차 뒷 좌석에 오르면 대개 바깥에서 문을 열지 못하도록 손수 ‘잠금 장치’를 채우곤 했다. 71년 5월 교통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생긴 버릇이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3공화국 때부터 줄곧 테러 위협에 시달려온 그로서는 본능적인 자기 방어라고 할 수 있다.

신변 안전에 대한 DJ의 꼼꼼함은, 보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몸을 던지는’ 것도 마다 않는 김옥두 의원을 각별히 여기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김의원이 동교동 가신 사이에서 매우 ‘독특한 입지’를 확보한 것도 이런 이유다.

DJ는 사람을 100% 신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상 생활과 관련된 이런 사소한 행동을 놓고도, DJ 반대자이든 추종자이든 할 것 없이 ‘사람을 100% 신뢰하지 못하는’ DJ 스타일을 말하는 이들이 꽤 많다. 논리적 비약임에 틀림없지만, 어쨌든 웬만큼 안정적인 지위에 오른 동교동 가신 출신 의원 사이에서도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이 여전히 ‘보스의 신뢰’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분석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즉 DJ의 신임이 약화되었다 싶으면 동교동 진영에서 지위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한다는 얘기이다. 동교동 사단에서 ‘서열’은 전적으로 DJ가 결정하는 구조이다. 이런 구조는 집권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평이다. 특정 인물에게 힘을 몰아 주어서 ‘대리 관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경쟁을 유발해 자신을 중심으로 힘이 집중되도록 하는 DJ 특유의 용병술은 집권 이후에도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DJ는 ‘영원한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최근 여권 내부 권력 지도의 변화도 이러한 용병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집권 이후 확고한 2인자로 자리잡은 것으로 자타가 평가해 온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위가 최근 흔들리는 듯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권력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강래 파동 이후 김실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급격하게 약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특히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YS 대선 자금을 폭로한 뒤 이런 징후가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고 한다(<시사저널> 제489호 ‘희생양 이강래, 왕따도 당했다’ 참조). 벌써 여권 일각에서는 차기 비서실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는 탓인지 몰라도 김실장은 최근 내년 총선을 대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4월17~18일 대구·경북 지역을 돌았다. 그의 일정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고향인 경북 청송·영덕에 들러 지극한 정성을 쏟은 점. 휴일임에도 김실장이 가는 곳마다 지역 유지들이 대거 몰렸다. 그와 접촉한 인사들은 대부분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한 바닥 다지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화려한 정계 복귀로 세간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궐 밖 대신’ 권노갑 고문이, 요즘 철저하게 잠행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가 2년 만에 당으로 복귀하자마자 권력 지도는 순식간에 ‘권노갑 중심’으로 재편되는 듯했다. 이 때문에 언론도 권고문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의 측근들도 굳이 막후 역할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권고문의 행보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당에 복귀할 때 의욕을 보였던 것과 달리, 요즘에는 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밖으로만 돈다. 그는 이 달 말 미국 방문을 시작으로 5월에는 독일과 중국에 간다. 여권 핵심부의 한 관계자는 “은인자중하라는 대통령의 뜻이 전달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DJ는 한번 신임을 거두어들였다고 해서 계속 용도 폐기하지도 않는다. 때가 되면 또 중용한다. ‘붙박이 2인자’를 용납하지 않을 뿐이다. 동교동에서 내내 찬밥만 먹던 한화갑 의원이 이런 DJ 스타일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의원은 가을 당직 개편에서 총장 기용이 점쳐지고 있다. DJ는 아무도 전적으로 믿지 않지만, 참모가 영원히 품을 떠나게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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