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가르칠게, 학교 가지 마라”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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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교육으로 ‘가정 학교’ 떠올라…교과 과정 등 해결 과제 많아
‘학교, 안 다니면 안 되는가.’ 단순히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투정이 아니다. 교육 문제를 근본부터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부모들로부터 나온 자성이다.

가정 학교.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개별로 또는 집단을 이루어 지도하는 방식(일명 ‘홈스쿨링’)이 한국 사회에 첫선을 보였다. 지난 2월과 3월 서울에서는 ‘가정 학교를 생각하는 부모들의 모임’이 잇달아 열렸다(02-322-1603).

대안 교육을 모색하는 잡지 <민들레>를 올 초부터 발행하고 있는 현병호씨는,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학교를 넘어선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몇 년 전부터 통용되고 있는, ‘대안 교육=대안 학교’라는 공식마저 거부한다. 이같은 공식은 교육이 반드시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가정 학교에서 백만 명 넘게 교육

학교, 더 엄밀히 표현하자면 현존하는 공교육 체제를 거부하는 흐름은 구미 사회에서 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초창기만 해도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종교적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80년대를 거치면서 가정 학교 운동은 교육·사회 운동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비공식 통계이지만, 그 결과 오늘날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는 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공교육 체제를 거치지 않고 자율적·창의적으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서 더 나은 성취를 이루었다는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2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들은 집에서 자기 아이를 가르쳤다. 곧 ‘교육’과 ‘양육’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였다. 그러나 곧이어 등장한 근대적인 공교육 체제가 이를 철저하게 분리했다. 학교는 통제를 바탕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기구로 자리잡았다. 교육은 국가에 의해 독점되기 시작했다.가정 학교 운동은 이같은 독점의 폐해가 끝간 데 이르렀다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병호씨는, 오늘날 학교가 기능적 장소로서도 실패하고 공동체로서도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학교는 지식 교육에서조차 이미 사설 학원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경쟁심·이기심·폭력에 대한 굴종 같은 부정적 측면만 길러주는 곳이다.

경기도 포천에 사는 박형규씨(40)는, 자신이 학생이던 20년 전보다 학교가 더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장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97년 7월 자녀들을 자퇴시켰다. 자식 욕심도 크지만 자식들을 올바로 기르고 교육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컸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박씨는 현재 아이 9명을 데리고 ‘작은누리’라는 가정 학교를 운영한다.

물론 가정 학교가 등장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가정 학교 모임 ‘프리다스’ 발기인 아고 유지(42)씨는 “처음에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 안 가는 대신 뭔가 공부를 해 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프리다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우리 생각보다 더 깊고 크다는 것을 프리다스 활동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아고 씨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가 10만 명을 넘어서며, 이에 따라 도쿄를 포함한 지방 도시 3백여 곳에 ‘부등교(不登校)를 생각하는 전국 부모 모임’이 결성되어 있다(이들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등교 거부’ 대신 ‘부등교’라는 표현을 쓴다).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는 부등교 학생들을 위해 ‘프리 스쿨’을 따로 운영한다.

물론 학교를 여전히 ‘신성한 배움터’로 여기는 한국에서 학교를 거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 학교 운동은 △중산층 중심 운동(아직까지 가정 학교는 집에서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지적·경제적 능력을 갖춘 부모의 존재가 필수이다) △독창적인 교과 과정·교재 부족 △의무 교육을 위반한 데 따른 법적 제재 따위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를 해체하라’는 이들의 구호는, ‘무용(無用)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고까지 비판받는 세기 말 한국의 교육 현장에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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