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쿠데타 10대의 ‘학교 탈출’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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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폭력으로 ‘갈 데까지 간’ 공교육 거부하고 ‘나의 삶’ 찾은 10대들
“여러분, 나뭇잎은 왜 초록색일까요?” 교사가 물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재잘거렸다. “하나님이 초록색으로 칠했어요.” “하늘을 닮아 그래요.” 이들의 문답을 조용히 지켜보던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엽록소가 들어 있어서 그래요.”

그 날 아이는 교단 앞으로 불려나가 머리를 두들겨 맞으며 혼이 났다. ‘너는 잘난 척하는 아이’이며 ‘다른 아이들이 대답할 기회를 뺏는 나쁜 아이’라는 것이 교사가 화를 낸 이유였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이 아이가 자라 책을 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열여덟 살이 된 김현진양이 쓴 <네 멋대로 해라>(한겨레출판사)가 그 책이다.

최근 10대가 쓴 자서전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네 멋대로 해라>말고도 벤처 기업 (주)칵테일 사장 이상협군(19)이 쓴 <나이도 몰라요, 학벌도 몰라요>(김영사), 서울대 경제학부 2학년생 전한해원군(18)이 집필하고 있는 <자퇴 교과서>(가칭)가 대표적이다. 엄밀히 표현하자면 자서전이라기보다 자전 일기나 성장 일기에 가까운 책들이지만, 이른바 ‘해체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고통스러운 성장기가 농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책들의 무게는 결코 녹록치 않다.

10대가 책을 쓰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어진이의 서울대 들어가기> <오승은의 수능 노트> 같은 책들은 베스트 셀러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먼저 대학에 들어간 선배가 후배에게 오밀조밀 자기 경험을 들려 주는 내용으로 씌어 있던 이런 책들과 최근 나오고 있는 10대 자서전은 성격이 아주 다르다.

무엇보다 이들 자서전의 필자는 자퇴 또는 자퇴에 준하는 행동(이를테면 성적·출석 무시)으로 ‘학교를 거부한’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가출 충동’과 나란히 한국 사회 청소년을 사로잡는 ‘교출(校出) 충동’을 실천에 옮긴 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정당했다고 강변한다.

뿐만 아니다. 이들은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지금 같은 학교 제도는 무의미’하며, 학교는 더 이상 ‘오직 하나의 절대적인 길’이 아니라 ‘언제든지 포기 가능한 선택 가운데 하나’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교육의 위기를 논하지만 교육의 미래가 극히 불투명한 오늘날 이들의 주장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발적 퇴학’ 강행한 까닭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본다면 이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고등학교를 그만둔 김현진양은 국내 최연소 인터넷 웹진(<네가진>)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자, 문화관광부 청소년위원회 부위원장 따위 경력을 몰고 다니며 언론 매체의 눈길을 모았다.

고등학교를 7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에 합격한 전한해원군은 최근 KMTV <핫 스테이지>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 ‘VJ(비디오 자키) 해원’으로 대중적 명성을 쌓고 있다. 전교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상협군은 국내 최연소 벤처 기업 ‘사장님’이자 세계 시장에 진출한 국내 최초의 패키지 소프트웨어 ‘칵테일’ 개발자로, 요즘 중·고등학생 사이에 떠오르는 우상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의 성장기는 상처투성이다. 상처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이들은 주저없이 학교를 그 발상지로 꼽는다. 이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한 것인지, 학교가 아이들을 거부한 것인지 쉽게 가늠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현진양이 ‘자발적 퇴학’을 감행한 가장 큰 이유는 학교측이 영화를 찍지 못하게 해서였다. 중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 ‘시네 키드’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청소년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다. 그러나 학교측의 방해는 집요했다. 시나리오 제출을 요구하고 ‘우리 학교 학생을 한 사람이라도 출연시켰다가는 혼날 줄 알라’는 교사들의 협박에 아이는 교장실을 찾았다. 다음은 자서전에 실린, 아이와 교장 사이에 오고 간 대화이다.

“(영화를 찍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는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아이다. 교장실에서 나가라.”

“납득할 때까지 못나갑니다.”

“그럼 솔직히 말하겠다. 내가 보니까 별로 재능도 없어 보이는 게 하긴 뭘 한다고 설치냐? 연예인이 되려면 예고를 갔어야지 인문고에는 왜 왔나?”

아이는 여기서 강하게 반발한다. “저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예술인입니다.” 교장은 대답했다. “그게 뭐가 다른가?”

‘문자 중독증’임을 자처하는 조숙한 아이. 창녀와 미싱 공장 ‘시다’들이 넘실거리는 빈민가에서 ‘인생이 아름답다는 놈이 있으면 내 손으로 없애 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는, 이 ‘칼처럼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아이는 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자기를 찌르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그때 선생님들이 찍어누르려 들지만 않았다면 자퇴까지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튀는 아이’를 무조건 찍어누르려 드는 학교에 대한 반감은 전한해원군 또한 마찬가지이다. 평생 글쓰기를 꿈꾸는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안되어 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퇴를 결심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틈새가 없는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약간의 틈새는 있었다. 그는 이유 없이 구타를 일삼는 교사에게 문제를 제기했다가 교장실에 불려 다니고, 교육 현안을 다루는 텔레비전 토크 쇼에 출연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한국 사회답지 않게 부실 공사 흔적이 전혀 없는, 틈새 하나 없이 꽉 짜인 견고한 구조물’ 같았다고 그는 말한다.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벽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특수 전시(戰時)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학교 공간을 가득 채운 획일주의와 폭력성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결국 해원군은 ‘농구 하다 다치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담임 교사가 농구 전면 금지령을 내린 얼마 뒤 자퇴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학교를 3년씩이나 아무 말 없이 다녔다는 사실에 대해 훗날 미래의 학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는 것이 전한해원군의 말이다. 그는 일제 때 신사 참배를 거부해 학교를 자퇴한 외할머니처럼 자신이 도덕적 결단을 내렸다고 믿는다(‘부모 성 함께 쓰기’를 실천하는 그의 성 가운데 ‘한’은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동기 유발에 실패한 교육은 죽은 교육”

이들과 비교한다면 이상협군의 저항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비록 ‘날이면 날마다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고’, 이 때문에 신경성 위염·비염·알레르기 따위 온갖 신경성 질환을 달고 살았지만 그는 부모와의 ‘최소한의 타협점’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타냈다. 그의 고등학교 마지막 성적표는 체육만 ‘양’, 나머지 과목은 몽땅 ‘가’였다. 이 과정에서 그도 내면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자나 깨나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리 속을 ‘굴러 다니는’ 그에게 학교와 부모가 던진 말은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 참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박찬호를 꿈꾸는 아이에게 ‘대학 들어가면 글러브 사줄게’하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교사들은 그를 ‘공부는 안하고 날마다 딴짓만 한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에게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임진왜란 연대를 외우는 일이야말로 ‘딴짓’이었다. 오직 컴퓨터를 만지고 프로그램을 짤 때만 그는 살아 있었다. 그가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부모 고집을 꺾은 것은 ‘정 그러면 정신 병원에 들어가겠다’고 배수진을 친 다음이었다.

자서전을 쓴 10대들이 학교 교육을 공격하는 주된 이유는 ‘동기 유발에 실패한 교육’이라는 점이다. 이상협군에게 배움의 동기를 부여한 유일한 원천은 컴퓨터였다. 반에서 늘 40등을 밑돌던 그가 딱 한 번 1등을 한 일이 있다. ‘성적을 올리면 (압수했던) 컴퓨터를 돌려주겠다’고 어머니가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자서전을 쓴 10대들은 역설적으로 동기가 강렬했기 때문에 학교를 버렸다. 김현진양은 영화를 만들려고, 전한해원군은 창의성을 죽이지 않는 ‘제대로 된’공부를 하려고 학교를 떠났다. 현진양은 정체성 2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극한 상황이었다고 자퇴 당시를 표현한다. 결국 그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림으로써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냈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학교에 남은 아이들은 오히려 ‘잠재적인 학업 중퇴자’였다. 그들은 공부를 한다는 명분 아래 친구를 만나거나 잠을 자거나 연예인 사진을 돌려보기 위해 학교에 나간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아이들. 전교 몇 등 안에 드는 이른바 모범생이었던 한 아이는 “넌 꿈이 뭐야?”라는 현진양의 물음에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응, 고등학교 졸업하는 거.”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학교에 대한 10대 필자들의 공격은 매섭다. 김현진양은 학교가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위한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무용지물인 교과목들, 비합리적인 커리큘럼, 비능률적인 수업 방식 따위가 그 대상이다.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교육 환경도 비판받는다. 이들에게 학교는 키가 165cm만 넘으면 무릎 위로 들어올려 앉아야 하는 일명 ‘초코파이 책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고, 50명 넘는 학생들이 바글거리는 교실에 선풍기는 2대인데 교무실은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눈에 비친 학교는 정직하지 않다. 열악한 교육 환경을 인정하기는커녕 ‘이게 정상이다. 이게 사실은 좋은 거다’라고 세뇌하려 드는 것이 학교이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거기에 속아 넘어갈 만큼 순진하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부르짖는다. ‘20세기 말, 이미 갈 데까지 다 간 학교여. 차라리 정직하라. 그것이 그나마 그대들의 모습을 덜 구차하게 할지니.’(<네 멋대로 해라>)

이들의 주장은 같은 세대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전한해원군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상담 전화가 툭하면 걸려 온다”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구의동에 있는 (주)칵테일 사무실에는 가끔씩 가출 청소년이 출몰한다. ‘나도 상협이 형처럼 되고 싶다. 쓸데없는 학교 공부는 싫다’는 컴퓨터 키드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함부로 ‘교출’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이른바 ‘가정 학교(홈 스쿨링) 운동’을 주도하는 현병호씨(<민들레> 발행인)는 한국 교육 체제가 철저하게 공교육 중심으로 짜여 있다고 비판한다(22쪽 딸린 기사 참조). 이런 현실에서 이상협군은 자기 확신을 강조한다. 자기 확신이 없다면 학교에 남아 대학을 가는 편이 그래도 중간은 간다는 것이다. 김현진양은 자퇴 이후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맞바꾸어야 했던 것은 ‘떡볶이 집에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평범한 학창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철저하게 아파한 대가치고는 혹독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이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단순히 학교를 포기하고서라도 개인의 적성과 행복은 지켜져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이들은 미래를 내다본다. 이를 두고 신세대 문화 평론가 김지룡씨는 “신세대들은 이기는 싸움을 한다”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믿음을 갖고 있다.
세기 말 교육 현장에 던지는 10대들의 메시지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학교는 갈 데까지 갔다는 믿음이다. 김현진양은 “학교는 더 이상 독주할 수 없다. 사회 제반 인식이 점차 넒어짐에 따라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곧 다가올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전한해원군은 “지금과 같은 학교 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고, 떠난 아이들이 학교에 남았을 때보다 훨씬 훌륭하게 성장한다면 한국 교육계도 솔직하게 위기를 인정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속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진양은 ‘교육 게릴라’이다.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남에게 보이는 성공’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그가 자퇴한 이후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것도, 이른바 일류 대학을 선택한 것도 이같은 전략의 결과였다. 설사 영악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지는 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이를 위해 최근 그는 ‘탈학교 실천 연대’라는 교육 개혁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전망은 과연 타당한가. 10대들이 쓴 자서전을 ‘맹랑하다’ 내지는 ‘우리 애들이 볼까 무섭다’고 일축하는 기성 세대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학부모들에게 조혜정 교수(연세대·사회학)는 이렇게 충고한다. “이것이 10대의 언어라면 어른들은 판단을 중지하고 먼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경구를 들으며 성장한 기성 세대와, 세기 말의 암울함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은 없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한’ 신세대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조혜정 <이 땅의 10대들에게 보내는 편지>). 생존 자체를 위해 빈곤과 싸우며 ‘노는 꼴을 못 보는’ 감성을 갖게 된 것이 기성 세대라면, ‘놀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을 경멸하는 것이 신세대이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김지룡씨 주장은 신세대의 인생관을 대변한다.

학교에 대한 가치관도 세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성 세대에게 학교는 ‘신성한 곳’이며 ‘가지 않으면 죽는 곳’이었다. 대학 졸업장은 고소득과 미래를 약속하는 보증 수표였다. 그러나 김지룡씨가 지적한 대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는 이같은 신화를 급속히 무너뜨려 버렸다. 대졸 실업자가 즐비한 세상. 이곳에서 살아 남을 사람은 어쩌면 ‘평균적인 삶’을 거부한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평범한 아이들을 또 한번 기죽이는 돌출형 신세대일지, 시대를 앞서 읽은 소수 선각자일지 아직은 모른다. 그렇지만 학교를 해체하라는 과격한 구호마저 등장한 오늘날 이들 ‘카오스의 아이들’은 한국 교육의 가장 약한 고리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급격히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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