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소프트와 리눅스의 대회전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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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 사용자 급증하나 아직은 역부족… MS, 윈도2000 출 시로 ‘굳히기’ 나서… 2000년대 초반에 전세 역전될 수도
지난 4월19일 오전 9시 미시간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 미국 시카고 매커믹 플레이스 동쪽 건물로 시카고 컴덱스 참관자들이 모여들었다.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석권한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이 2000년 운영 체제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윈도2000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윈도2000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에서 누리는 독점적인 지위를 지키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개발한 운영 체제이다. 빌 게이츠 회장은 “창사 이후 가장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회심작이 윈도2000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윈도 상품을 연거푸 내놓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98을 출시한 지 얼마되지 않아 신제품을 내놓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컴퓨터 사용자들은 그동안 웹 기반 기술을 지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신뢰성 있는 운영 체제를 목말라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같은 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해 윈도2000을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리누스 “윈도를 부셔버리겠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눈엣가시 같은 헬싱키 출신 프로그래머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윈도2000 개발을 재촉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인물은 빌 게이츠 회장의 기조 연설이 끝난 지 30분 뒤 연단에 올라 “윈도를 부셔버리겠다”라고 선언했다. 이 돈 키호테 같은 인물의 이름은 리누스 토발스. 트랜스메타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 근무하는 운영 체제 개발자이다. 그의 무기는 리눅스. 그는 91년 데이터 베이스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리눅스를 인터넷에 공개해 전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리눅스 공동체는 그를 메시아처럼 섬기고, 리누스 추종자들은 자기 발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리누스 가라사대…’라는 인용구를 사용한다. 리누스가 시카고 컴덱스에서 처음 열린 리눅스 글로벌 서밋에서 기조 연설을 하려고 연단에 오를 때 청중은 기립 박수를 보내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가 창시한 리눅스는 가상 공간에서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의 공동 창작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리눅스의 힘은 소스 코드를 공개한 데서 나온다. 윈도 제품을 구입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리눅스는 인터넷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최신 버전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아는 이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전산 시스템 설치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과 일반 사용자들도 리눅스에 한번쯤 관심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개발자가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애써 만든 프로그램을 공개했다는 것부터가 혁신적인 발상이다.

이렇게 출발한 리눅스는 개방과 공유를 모토로 하는 가상 공간의 속성과 맞물리면서 신봉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전세계에 걸쳐 리눅스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고, 리눅스에 기반을 둔 갖가지 응용 프로그램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레드햇·칼데라·슈세 같은 업체들은 지난해 미국 서버에 들어가는 운영 체제의 20% 가량을 리눅스로 깔았다. 주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리눅스를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시카고 컴덱스에 설치된 리눅스 파빌리언에는 애플릭스·리눅스몰·리눅스하드웨어솔루션스·퍼시틱하이테크·픽시스템스·VA리서치·월넛클릭이 모여 리눅스 응용 제품을 전시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교육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에 리눅스 열풍을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지지 세력을 이끌고 만만치 않게 대드는 리눅스를 경계의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10월 윈도2000을 발표해 리눅스의 예봉을 꺾고자 한다. 윈도2000은 지금까지 발표된 윈도9x 시리즈와는 성능과 편이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32쪽 딸린 기사 참조). 지금까지 윈도를 쓰던 사용자들은 갑자기 시스템이 다운되면서 뜨는 파란색 화면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운영 체제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다. 지난 2년 동안 윈도2000을 개발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문이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짐 알킨 수석부회장은 “운영 체제를 더 신뢰성 있게 만드는 데 큰 진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회심작인 윈도2000을 빨리 보급하기 위해 올해 시카고 컴덱스에서 기업 사전 검토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증한 솔루션 공급 업체들과 함께 작업하며 윈도2000의 마지막 시험판을 미리 살펴볼 기회를 가진다. 빌 게이츠 회장은 “50만 개 기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윈도2000을 미리 접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컴덱스 기간 내내 마이크로소프트 부스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윈도2000의 주요 특성을 설명하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실시되었다. 일반인에게 선보인 마지막 시험판은 4월 말 전세계에 퍼져 있는 프로그램 참가 업체에 공급되었다. 프로그램 공급 협력 업체 10만, 프로그램 개발자 14만명, 그리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상인 수천 명에게도 윈도2000의 마지막 시험판을 나누어 줄 계획이다. 여기에서 윈도2000을 하루빨리 보급해 2000년 운영 체제 시장을 석권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힘은 대단했다. 윈도 2000이 채 나오기도 전에 전세계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앞다투어 윈도2000을 탑재한 컴퓨터 생산 라인을 바쁘게 돌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관계가 불편한 것으로 알려진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 IBM은 마이크로소프트 못지 않게 윈도2000을 차세대 운영 체제로 채택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잇달아 리눅스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컴팩·델·휴렛팩커드 같은 업체도 윈도2000을 탑재한 컴퓨터를 생산하느라 정신이 없다. 윈도 2000 출시가 일으킬 컴퓨터 특수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협력 업체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거대한 마이크로소프트 진영과 맞서기에는 리눅스 진영의 전력이 매우 초라하다. 전세계에 퍼진 수많은 프로그래머가 리눅스를 지원하지만 이들을 조직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당장 물건을 팔아야 할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윈도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톡톡히 재미를 본지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신제품 출시를 눈빠지게 기다리는 형편이다. 또 프로그램 개발자들도 윈도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 90%가 윈도를 운영 체제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명분 앞선 리눅스, 장기전에 유리

지금 판세를 보면 리눅스가 윈도를 제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듯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무상 공급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경험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쓸 만한 운영 체제를 무료로 주는 리눅스 진영을 우습게 볼 수 없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전파되는 리눅스 버전은 엄청난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 속도라면 2000년대 초 전세가 역전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오히려 소스 코드 공개가 주류를 이루며 힘을 얻어 가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처지는 난처하기 그지없다.

2000년대 운영 체제 시장을 두고 두 진영은 격렬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명분을 가진 쪽은 리눅스이다. 하지만 막강한 힘과 세력을 과시하는 곳은 마이크로소프트이다. 단기전에서는 힘이 명분을 제압하지만 장기전에서는 명분을 가진 쪽이 이긴다. 리눅스가 윈도2000의 파상 공격에 맞서 얼마만큼 자기 세력을 넓혀갈지도 관심거리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리눅스의 성장 속도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면 소스 코드를 공개하는 마지막 카드를 던질 것이다. 21세기 운영 체제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좀더 시간이 흘러야 판가름 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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