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 합당은 3당 합당 복사판?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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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현실·추진 세력 등 ‘닮은꼴’… YS 대신 DJ로 주인공 1명만 교체
90년 1월22일 한국 정치사를 뒤흔드는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민정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좌우에 세워놓고 3당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정치적 야합이다” “한국 정치 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치 혁명이다”라고 평가가 엇갈렸지만, 3당 합당은 한국 정치사에 드물게 서로 경쟁 관계이던 정당들이 하나로 뭉쳤다는 점에서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에서는 새삼스레 3당 합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최근 정치권을 술렁이게 하는 여권 내부의 합당설이 과거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우선 집권 여당이 처한 정치 현실이 그때와 비슷하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13대 총선에서 패한 뒤 민정·평민·민주·공화 4당 체제의 여소야대 정국을 힘겹게 이끌어 가던 참이었다. 더욱이 민정당 내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 판갈이가 필요했다. DJP 공동 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김대중 정부가 ‘개별적인 의원 영입만으로는 안정된 집권 기반을 다질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거대 신당 창당을 노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각제 개헌이 합당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3당 합당 당시에는 내각제 개헌이 협상 당사자 간의 밀약에 의해 진행된 데 반해, 지금은 내각제 카드가 공개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원집정부제를 최초로 발설해 파문을 일으킨 사람이 박태준 자민련 총재(90년 당시 민자당 최고위원)라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등장 인물’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3당 합당 주역이 노태우·YS·JP라면, 이른바 신 3당 합당의 주역은 DJ·JP·구민정계다. 구민정계와 노 전 대통령의 뿌리가 같다고 볼 때, YS 대신 DJ가 등장한다는 사실만 달라진 셈이다. 실무 협상진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3당 합당 당시 막후 실세로 활약한 민정당의 박철언 정무수석과 김윤환 총무, 공화당의 김용환 정책위 의장은 현정권에서도 각각 TK 세력과 자민련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 다만 박철언 부총재가 합당에 적극적인 반면, 김용환 수석부총재는 반대론을 펴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3당 합당 당시 ‘왕따’ 신세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절치 부심 끝에 새로운 3당 합당을 주도하려는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합당을 둘러싼 분위기는 9년 전과 같이 무르익고 있지만, 합당 후 내각제 각서 파동과 내각제 무산, 한 지붕 세 가족이 빚어내는 끊임없는 불협화음 등을 경험한 정치권이 또다시 대모험을 감행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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