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이은석 인터뷰]“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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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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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죄를 지어 몹시 괴로워”
등록금을 벌어 복학하라는 부모님 말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는데?

언론 보도가 잘못되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등록금을 주지 않은 적은 없다. 올해 굳이 휴학한 것은 영문과에 편입하기 위해서다. 산업공학과 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수업을 따라갈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면 부모님을 죽일 정도로 미워한 이유는?

어머니는 나를 인격적으로 무시했다. 형과 달리 나는 공부 외에는 잘 하는 게 없다. 음악·미술·운동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야단만 맞았다. 어머니는 ‘싹수가 노랗다’ ‘나가 죽는 게 낫다’ ‘차라리 나가 버려라’고 폭언했다. 밥 먹을 때도 빨리 먹지 않는다고 야단을 쳐 입안에 밥을 가득 집어넣고 화장실에 가서 토한 적도 있다. 아버지는 개 쳐다보듯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내 생일을 한 번도 챙겨주지 않았다. 군대 있을 때도 면회 한번 오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중에는 내 부모가 맞는지 회의할 정도였다.

부모의 구박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중·고등학교 친구는 거의 없었다.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내가 워낙 사교성이 없었다. 그나마 PC 통신 영화동호회에 친숙했던 것은 내가 원할 때 접속해 글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프 모임에서도 누구 하나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았기에 편했다. 이야기를 해도 영화 이야기만 주로 했지 집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형에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나?

형은 내가 구박당하는 것을 모른다. 형은 항상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내가 고3일 때는 군대에 갔다. 작년부터는 형은 따로 나가 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형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부모를 살해할 수 있는가?

막연하게 ‘너 죽고 나 죽자’는 생각을 품은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토막 살해한 것은 보복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무서워서 그랬다. 없던 일로 만들고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시체만 없어진다면 무서움이 사라지리라 믿었다. 시체에 칼을 대니 정해진 듯 자동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피범벅이 된 내 모습을 보고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때 제정신이 아닌 짐승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나?

죽을 죄를 지었다. 내가 한 행동에 대가를 치르겠다. 몹시 괴롭다.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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