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나는 ‘삼성 채권’, 어디로 갔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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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축하금·대선 준비금으로 준 듯…유용·은닉 후 수사하자 반납?
한나라당에 또다시 ‘돈 망령’이 살아나고 있다. 삼성그룹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채권 1백70억원어치를 준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돈이 대선자금인지, 아니면 대가성이 있는 뇌물성 정치 자금인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삼성측으로부터 받은 돈은 채권과 현금을 합쳐 3백22억원으로 늘어났다. 당시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김영일 의원이 받은 채권 1백70억원,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 서정우 변호사가 받은 채권 1백12억원, 당 재정위원장이던 최돈웅 의원이 받은 현금 40억원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삼성그룹이 왜 한나라당에 ‘올인’ 했느냐는 것과,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앞의 것부터 짚어보자. 4대 그룹 가운데 삼성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이 한나라당에 준 돈은 100억∼1백50억 원. 유독 삼성그룹만 다른 기업의 두 배가 넘는 돈을 한나라당에 주었다. 이러니 ‘사업 특혜설’이나 ‘후계 체제 보장설’이 증권가에 나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삼성그룹이 단순히 정치 자금을 준 것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고 한나라당과 일종의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채권 1백70억원어치가 한나라당에 건네진 시점이 2002년 7∼8월 경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이 때는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전이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지지도가 곤두박질한 시기와도 일치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점에 착안해 “1백70억원은 후보 축하금이자 대선 준비금으로 보인다”라고 추측했다. 당시 정가에는 삼성과 한나라당의 밀월설이 무성했다.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가 주최하는 심포지엄 등에 삼성측 인사들이 자주 얼굴을 보였기 때문이다.

채권의 행방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한나라당은 삼성측으로부터 받은 채권 2백82억원 가운데 1백70억원 정도는 다시 돌려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한나라당이 설사 돌려주었다고 해도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돌려주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채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일단 김영일 의원이 받은 채권 1백70억원 가운데 100억원 가량은 당으로 유입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한나라당 대선 자금의 얼개를 파악했던 이재오 의원은 “삼성 채권은 100억원이 조금 안되는 현금으로 바뀌어 당으로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반면 서정우 변호사가 받은 채권 1백12억원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검찰은 최근 한나라당과 거래한 사채업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 채권의 일련번호를 모두 파악했다고 밝혀 머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일부 인사가 채권 일부를 개인적으로 유용했거나 은닉하고 있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돌려주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차떼기당’과는 또 다른 차원의 비난이 한나라당에 쏟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태가 여기까지 간다면 한나라당이 분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도 후폭풍을 맞고 있다. “한나라당에 준 돈의 출처는 이건희 회장이다”라는 그동안의 해명이 설득력을 갖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은 2월15일 이건희 회장을 처벌하라고 검찰에 촉구했다. 추의원은 “삼성이 불법 정치 자금과 비자금의 창고였다. 이건희 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죄’로 처벌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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