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적자에게 한국은 갈 수 없는 나라
  • 신지호 (오사카 경법대학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
  • 승인 1996.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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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적자, 북한 주민 취급받아… ‘조선=분단 전 조선’ 의미, 왕래 길 터줘야
언젠가 도쿄에서 재일동포가 비교적 많이 몰려 사는 동네의 음식점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우연히도 옆 테이블에서 그 동네 조총련 분회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필자가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자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것저것 물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쪽이 흡수 통일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아니 조총련 사람이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나는 흡수 통일에 반대요.”

이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조총련 중앙본부의 한 간부도 사석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한국의 주사파 학생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왜 그렇게 일반인의 정서와 동떨어져서 고립을 자초하는지.”

위와 같은 현상은 단지 사상 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인적 구성에서도 재일 동포 사회는 남과 북이 얽히고 설켜 있다. 현재 조총련계 민족 학교에는 한국 국적 학생도 상당수 다니고 있으며, 동포 상공인들의 세금 문제를 처리해 주는 조총련 상공인회에도 적지 않은 한국 국적 동포가 가입해 있다. 가족 구성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교포가 자신은 조선 국적, 부인은 한국 국적이니 ‘통일 부부’를 이루었노라고 농 어린 자랑을 하기에, 밤마다 삼팔선을 넘나드느라고 고생이 많겠다며 폭소를 터뜨린 일도 있다.

이처럼 재일동포 사회에는 본국과 같은 분단의 벽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본국의 분단 구조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민단과 조총련의 상층부를 제외하고는 서로 적대 의식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다.

문제는 본국이다. 한국의 경우 재일동포 사회를 민단과 조총련으로 양분해 보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고 있으며, 조총련은 반국가 단체 취급을 받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92년까지도 해외 여행을 가려면 반드시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일본은 가장 위험한 국가였다. 길을 걷다가 한식집 간판이 보여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 먹고 있으면 어느 순간 머리 뒤로 김일성 사진이 내려오고 사진이 찰칵 찍혀 협박을 당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북한 연구를 위해 통일원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가끔 조총련 사람들을 만난다고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는 이가 많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음과 같은 충고를 잊지 않는다. “만나더라도 술은 먹지 말라. 혹시라도 약물을 타 납치할지도 모르니.”

약간 논리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던진다. 일본과 같이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세계 각국의 정보가 넘쳐 흐르는 사회에 어떻게 조총련과 같은 조직이 존재하는가?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재일동포의 국적에 대한 오해다. 재일동포들은 외국인 등록을 할 때 국적 난에 한국 또는 조선이라 쓴다. 국내에서는 이 조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이라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 주지하듯이 현재 북한과 일본은 미수교 상태다. 따라서 일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재일동포가 쓰는 조선 국적이란 무엇인가? 일제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조선의 조선이다. 즉 분단되기 전 상태를 말한다. 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하루아침에 황국 식민에서 외국인이 된 당시 60만 재일동포가 처음으로 외국인 등록을 했을 때 절대 다수의 국적이 조선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한민국이 유엔이 인정하는 유일 합법 정부라는 논리 및 65년의 한·일 수교로 인해 한국 국적 취득자가 늘어나면서 어느 사이에 한국 국적과 조선 국적의 숫자가 역전된 것이다.

또한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이기도 하다. ‘국적 난의 조선은 조선반도(일본에서는 한반도를 조선반도라 부른다) 출신자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한국은 대한민국 국민임을 나타내는 표시다’라는 것이 일본 법무성의 공식 해석이다.‘남북교류협력법’ 결함 많아

둘째, ‘한국 국적=민단, 조선 국적=조총련’이라는 등식의 오류다.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그에 반대했다 하여 민단으로부터 제명당해 오랜 기간 독자적인 조직을 꾸려 활동한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이들은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한국에 오지도 못하다가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겨우 오게 된 이들은 결코 민단계가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총련 활동을 하다가 북한식 사회주의에 실망하여 그것을 비판해 쫓겨난 사람이 꽤 많다. 북한·조총련 얘기만 나오면 한국의 반공 단체 못지않게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도 상당수가 조선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자신의 국적이 북한이 아니라 분단되기 전 조선이기 때문이다. 분단을 싫어하는 그들에게 조선은 통일 염원이 담겨 있는 말이다.

따라서 70만 재일동포 중 약 50만이 민단계라는 표현은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한국 국적자 가운데 민단 활동을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셋째, 조총련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몰이해다. 조총련은 정치 단체이자 민족 단체다. 즉 북한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격과 민족 교육·경제 활동·권리 옹호 등의 민족적 성격이 나뉘지 않고 혼합되어 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조총련 활동에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동포 중 교육과 권익 옹호 등 순수 민족 활동이 아니라 북의 정치 체제를 지지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얼마 뒤면 그 정확한 답이 나올지 모른다. 북·일 수교는 일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이 공식 인정됨을 의미한다. 현재의 모호한 조선 국적자 중 몇 사람이나 북한 국적을 정식 취득할 것인가? 이는 조총련의 최대 고민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일 수교가 되더라도 정식 북한 국적이 아닌 현재와 같은 애매한 조선 국적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최근 조총련 내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조선 국적자들에게 가장 아픈 대목은 한국에 자유롭게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재일동포의 95% 이상이 남쪽 출신이다. 1세의 경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국적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은 갈 수 없는 나라다. 왜? 한국 실정법상 재일 조선인은 북한 주민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법률이 90년 제정된 남북교류협력법이다. 이 법 제10조에는 ‘외국 국적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소지하지 아니한 해외 거주 동포가 한국을 왕래하고자 할 때에는 여권법에 의한 여행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행증명서만 소지하면 재일 조선인들도 얼마든지 한국에 올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유 방한을 1회로 제한하고, 두번째부터는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라고 권유하고 있다. 민족을 지키고 통일을 염원하면서 조선 국적을 고집하고 있는 이들에게 국적 변경이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한국 국적 가진 북한 주민이 일본에 사는 꼴

뿐만이 아니다. 이 법 제30조에는 ‘이 법의 적용에 있어서 북한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 단체의 구성원은 북한 주민으로 본다’라고 되어 있다. 조총련이 이 범위에 들어감이 당연할진대, 그렇다면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는 북한 주민과 다를 바 없다.

법이 모든 상황을 전부 반영할 수는 없겠지만, 재일동포에 관한 한, 이 법은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현재 조총련 산하 민족학교와 상공인회에는 적지 않은 한국 국적 동포들이 관여하고 있다. 이 법 제30조에 따르면, 그들은 북한 주민이다. 결국 한국 국적을 가진 북한 주민이 현재 일본에서 사는 셈이다. 이렇듯 현재 재일동포 사회는 냉전시대적 구분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과 다양성을 띠고 있다.

70만 재일동포는 5백만 해외동포 중에서도 특수한 존재다. 일제 식민 통치의 직접적 산물이면서도, 광복 후에도 식민지 35년보다 더 긴 세월 동안 일본 사회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아온, 그래서 대다수 해외동포들이 거주국 국적을 가진 것과 달리 아직도 절대 다수가 본국 국적을 의연히 고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본국은 늘 떳떳하지 못해 왔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이제라도 한국 사회는 재일동포에 대한 냉전 시대의 반공논리적 접근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민족 논리로 그들을 맞이해야 한다. 재일 조선인의 자유로운 방한, 더 나아가 국적을 초월해 재일동포에게 자유로운 남북 왕래를 보장하는 것은 어쩌면 본국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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