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일,북경에서 조인식 갖는다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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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나진·선봉 카페리 직항로 개설 완전 타결, 북경서 ‘조인식’…내년 3·1절 취항 유력
분단 반 세기 만에 마침내 남북한간 인적 교류를 실현시킬 역사적인 사업 하나가 타결되었다. 바로 속초항과 나진·선봉 항을 잇는 카페리 직항로와 나진·선봉에서 중국 훈춘에 이르는 육상로를 개설하는 사업이 최근 성사된 것이다. 사업을 추진한 지 7년 만의 일이다. 남북한과 중국은 11월20일 북경에서 차관급 대표들이 회담을 갖고 이 사업을 매듭짓는 합의서에 서명하기로 지난 9월 중순 합의했음이 밝혀졌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사실을 안기부·통일원·해양수산부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최근 확인했다. 이 소식통들은 11월20일 합의서에 서명할 3국 대표가 한국의 장승우 해양수산부 차관, 북한의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 중국의 용영도(龍永圖) 대외경제무역부 부부장이라고 밝혔다. 3국 정부의 국장들은 서명에 앞서 10월20일 북경에서 합의서 문안을 마지막으로 가다듬는다.

이 소식통들에 따르면, 합의서 서명은 두만강 유역 개발을 담당한 유엔개발계획(UNDP)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정부가 북한 정부(정무원)가 아닌 대외경제협력추진위 명의로 서명하는 것을 양해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카페리로 나진·선봉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훈춘으로 가는 한국인들에 대해 북한 당국이 신변 안전을 약속해옴에 따라 당초 요구했던 북한 사회안전부장에 의한 신변 안전 보장 요구도 철회했다.

속초~나진~훈춘 ‘무비자 여행’

이에 따라 11월20일 이후 카페리가 취항하면 한국인 승객들은 나진·선봉을 거쳐 훈춘까지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승객들은 카페리에서 나진·선봉에 내릴 때와 훈춘으로 가기 전 국경을 지날 때 통과세와 물품세를 각각 따로 내야 한다. 북한과 중국 당국은 이미 오래 전에 훈춘 근처 양국 국경 지역인 북한의 원정리와 중국의 권하를 사람과 물품이 동시에 통과세를 내는 1급 세관지로 격상시키는 데 합의했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속초∼나진·선봉 직항로 개설 사업을 추진해온 동북페리 문봉수 사장(48)을 10월6일 만났다. 문사장에게서 앞서의 소식통들로부터 취재한 사실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처음에 확인 요청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기자가 앞서의 소식통들로부터 취재한 내용들을 낱낱이 제시하자 그는 그제서야 11월20일 북경에서 남북한과 중국이 합의서에 서명하게 되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문사장은 어떻게 그같은 사실을 알아냈느냐고 물으면서 11월20일 이전에는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시사저널>은 지난 수 개월 동안 이 사안을 추적해 지난달 중순 완전 타결되었음을 확인했으나, 남북 관계의 미묘한 성격을 감안해 보도를 미루어 왔다. 그러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방북 사실이 확인된 지난 9월25일부터 일부 언론이 이 사업의 진척 상황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시사저널>은 문사장의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용영도 부부장 방한으로 급진전

<시사저널>의 입장을 확인한 문사장은 더 이상 자기 처지만을 내세우지 못했다. 이 사업이 이미 남북한과 중국 당국 간에 합의되었기 때문에 <시사저널>이 보도했다고 해서 무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듯했다. 그럼에도 문사장은 기자가 이 사업이 타결되기까지의 전과정에 대해 묻자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그는 또 자신이 정부 당국자가 아니라서 기자의 사실 확인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속초∼나진·선봉 카페리 직항로 개설 사업이 완전 타결된 계기는 지난 9월9일 중국의 용영도 부부장의 방한이다. 앞서의 소식통들은 용부부장이 6일 동안 서울에 머무르며 우리 정부로부터 11월20일 북경에서 속초∼나진·선봉∼훈춘 직항로 및 육상로 개설 합의서에 서명하겠다는 결정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그는 방한 기간에 반기문 외교안보수석, 김인호 경제수석, 김석우 통일원 차관, 장승우 해양수산부 차관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용부부장 때문에 남북간 카페리 직항로 개설 사업이 타결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방한을 계기로 남북한과 중국간 합의서 서명 날짜가 11월20일로 잡히는 등 일정이 다소 빨라졌을 뿐이라고 앞서의 소식통들은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 정부가 지난 8월23일 관련 부처 간의 이견을 조정한 뒤 이 사업을 승인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우고 9월이나 11월에 북한·중국과 합의서에 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광일 특보, 부처간 이견 조정

사실 속초∼나진·선봉간 카페리 직항로 개설 사업은 지난 3월 당시 신상우 해양수산부장관(현 신한국당 의원)이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해 내부 승인을 받은 것이다. 북한 당국도 이미 올해 초 김정일 비서의 명의로 최종 승인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지난 7월 하순까지 이 사업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던 것은 안기부와 통일원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앞서의 소식통들은 밝혔다.

이 소식통들에 따르면, 안기부와 통일원이 지난 7월 하순까지 내세운 반대 이유는 무엇보다도 북한이 이 사업에 합의하는 주체가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의 외자 유치를 담당하고 있는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아니고 북한 정부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다음이 북한 정무원의 사회안전부장이 카페리호를 타고 나진·선봉에 들어가는 한국 관광객들의 신변을 공식적인 문서로 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기부와 통일원이 반대했던 내면적인 이유는 남북간 직항로 개설이라는 역사적인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김대통령의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마당에 굳이 추진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회의론이었다고 앞서의 소식통들은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은 무엇보다도 95년 6월 북경에서 열린 남북한 차관급 쌀회담에 참여한 북한측 수석 대표 전금철의 공식 직함이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고문이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다가 지난 8월 들어서면서 안기부와 통일원의 분위기는 이 사업을 승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앞서의 소식통들은, 안기부와 통일원이 반대 입장을 철회하게 된 것은 청와대 김광일 정치특보가 이 사업에 적극 관여한 이후라고 밝혔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특보가 해양수산부장관을 통해 동북페리가 추진해온 사업에 대한 보고서를 극비리에 요청한 지난 7월30일부터 이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특보가 관여하게 된 정확한 배경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김특보실이 지난 8월부터 극비리에 추진해온 남북 이산 가족 상봉 프로젝트(<시사저널> 제 411호 보도 참조)와 맞물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앞서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남북간 직항로 개설 사업이 성사될 경우 나진·선봉을 우선 이산 가족 면회 장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김특보가 이 사업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동북페리의 속초∼나진·선봉 카페리 직항로 개설 사업계획서에는 남북간 관광객 교류뿐만 아니라 이산 가족 상봉을 위한 장소로 나진·선봉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담겨 있다. 따라서 김특보가 이산 가족 상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7월 말 해양수산부장관으로부터 전해 받은 보고서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고 이산 가족 상봉을 성사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이 사업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김특보가 관여하면서 남북간 카페리 직항로 개설 사업은 매우 빠르게 진전되기 시작했다. 김특보 개입 이후 우리 정부의 부처간 이견이 지난 8월23일 조정되었다. 따라서 청와대·안기부·통일원이 이 사업을 내부적으로 승인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 김특보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앞서의 소식통들은 밝혔다. 그 뒤 9월1일 김특보는 반기문 외교안보수석에게 이 사업을 통일원과 협의해 빨리 성사시킬 것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가 공식으로 속초∼나진·선봉 카페리 직항로 개설 사업을 승인한 시점은 지난 9월27일이다. 이 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권오기 통일 부총리가 주재해 열린 통일안보조정회의가 11월20일 3국간 북경 합의서 서명 계획을 최종 승인한 것이다.
김대통령 임기 안에 취항할 수도

김특보가 이 사업이 타결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여도 순위에서 네 번째 정도를 차지할 것 같다. 앞서의 소식통들은, 남북한의 긴장 완화와 민족 동질성 회복에 필요한 이 사업을 성사시키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로 동북페리 문봉수 사장을 지목했다. 그 다음으로 지난 3월 김대통령의 재가를 얻어낸 신상우 전 해양수산부장관을 꼽았다. 세 번째로 부처간 이견을 조정한 안기부 엄익준 3차장이 꼽힌다. 이들이 최초의 남북간 정기적 인적 교류 사업을 성사시킨 막후 주역들이다.

11월20일 합의서 서명 이후 속초∼나진·선봉 카페리 취항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11월20일이 초겨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취항 시점은 내년 봄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문봉수 사장과 긴밀하게 협조해 이 사업을 추진해온 이 관계자는 문사장이 내년 3·1절을 취항 시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카페리 취항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권 핵심부가 김대통령 임기 안에 이산 가족 상봉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고 한다면 오는 12월이나 내년 1월에 카페리 취항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북한 당국이 정원식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제안한 판문점보다 나진·선봉을 이산 가족 상봉 장소로 받아 들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앞서의 소식통들은 분석했다.

어쨌든 속초∼나진·선봉 카페리 직항로 개설 사업이 타결된 것은 남북 교류협력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분단 반 세기 만에 남북간 인적 교류가 현실화함으로써 통일 전에 제한된 곳이나마 북한을 관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는 또 중소기업인도 대기업이 못한 역사적인 남북 교류사업을 성사시킨 한가지 예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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