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쿠바 앞질러 금 12개 목표
  • 박성준,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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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12개, 10위권 목표…양궁·사격·유도·마라톤 등에 기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몬주익에서 ‘황영조 신화’를 일궈냈던 한국 마라톤은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연패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까? 같은 대회 때 역도 56㎏급에서 세계를 번쩍 들어올렸던 전병관은 7월21일 미국 애틀랜타의 조지아월드콩그레스센터에서 있을 59㎏급 결승전에서 또 한번 괴력을 발휘할 것인가? 노련한 경기 운영 능력과 화려한 네트 플레이로 천하를 평정했던 배드민턴의 박주봉(한국체대 교수)은 ‘셔틀콕의 황제’라는 명성을 고수할 수 있을까?

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단 결단식이 지난 7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데 이어, 남자 하키·야구·남자 마라톤 선수단이 줄지어 현지로 떠났다. 한국은 이번 애틀랜타올림픽에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선수단을 출전시킨다. 한국은 소프트볼을 제외한 25개 종목에 선수 3백12명, 코치 72명, 본부 임원 44명, 지원 인력 75명 등 5백3명에 이르는 대규모 선수단을 꾸렸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22개 종목에 선수 3백10명, 23개 종목에 선수 3백9명을 파견한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서 누가, 어느 종목에서, 어떤 빛깔의 메달을 목에 걸 것인가. 대한올림픽조직위원회(KOC)의 공식 목표는 금메달을 최소한 12개 따내 참가국 가운데 10위 안에 든다는 것이다. KOC 훈련부 윤상옥씨는 “당초 목표는 금메달 10개였다. 그러나 지난해 참가한 각종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려 메달 목표를 올려 잡게 됐다. 물론 이것은 최소한의 목표다”라고 말한다.

메달 수로만 따지자면 국민들의 눈과 귀는 단연 양궁 종목으로 쏠린다. 84년 8월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 서향순과 김진호가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뒤, 양궁 종목은 한국의 가장 확실한 ‘메달밭’이 되어 왔다. 김수녕·양희경·윤영숙이 출전했던 서울올림픽 때 한국 선수단은 여자 개인 1~3위, 남자 개인 2위, 여자 단체와 남자 단체에서 각각 1위를 하는 등 거의 모든 메달을 휩쓸었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한국 양궁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선수단에 안겼다.

양궁 전종목 석권 가능성

 
이번 애틀랜타올림픽에서도 한국 양궁은 세계 최강임을 입증할 수 있을까.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이기식 감독은 양궁에 쏠린 국민의 기대가 너무 커 어깨가 무겁다고 말하면서도‘전종목 석권’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과욕은 금물이지만,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이제껏 갈고 닦은 기량을 선수들이 제대로 발휘하기만 하면 남·녀 단체전과 개인전에 걸린 금메달 4개를 거머쥘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같은 낙관론이 가능한 까닭은 남자 부문 개인 종합에서 세계 최고 기록(1,368점)을 보유한 오교문 선수가 남자 팀의 기둥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과 체력 면에서 단연 뛰어난 오선수의 유일한 적수로는 유럽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그로브 마르티누스(노르웨이) 정도가 꼽힌다. 한국 양궁팀은 남자 단체 부문에서도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 남자 단체 우승 확률을 높여주고 있다. 남자팀은 오교문 외에 김보람·장용호가 출전한다.

남자들만 실력이 막강한 것이 아니다. 비록 세계 최고 기록을 우크라이나팀에게 넘겨준 상태이지만, 김경욱·김조순·윤혜영으로 이루어진 여자팀은 지난 4월 애틀랜타에서 열렸던 프레올림픽 대회에서 단체전을 제패해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과시했다. 오교문이 유난히 돋보이는 남자팀과 달리 여자팀은 감독이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들의 실력이 엇비슷하다.
한국 선수단이 양궁 못지 않게 기대를 걸고 있는 종목은 배드민턴이다. 이 종목은 연구와 강의를 위해 93년 코트를 떠났던 박주봉 선수가 다시 팀에 돌아오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한국 배드민턴은 이번 대회에서 새로 추가된 남녀 혼합 복식(박주봉·나경민) 외에 길영아·장혜옥이 짝을 이룬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박주봉·나경민이 출전하는 혼합 복식은 한국 배드민턴의 간판 종목이다.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한기식 감독마저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장담할 정도로 우승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여자 복식조가 우승으로 가는 길은 꽤 험난하다. 최대 호적수인 중국의 구준·게페이조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팀은 역대 전적에서 5승3패로 중국팀에 앞서 있지만 한감독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실력이 엇비슷할수록 실전에서 선수들이 난조에 빠지기 쉬워 이기던 경기도 놓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선수단이 혼합 복식·여자 복식과 함께 조심스럽게 금메달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쪽은 여자 단식 부문이다. 지난해부터 국제 대회 우승 횟수가 많아지는 등 최근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방수현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방수현은 지난 5월 경기 도중 허리를 다쳐 고전했으나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감독은 방수현이 인도네시아의 강호 수지 수잔티의 벽만 잘 타고 넘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91년 처음 맞붙은 이래 방수현은 수잔티에게 총 세트 누적 전적에서 5승18패로 열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에는 거푸 이겨 희망을 준다.

 
강세 보이던 레슬링은 ‘산 넘어 산’

유도·레슬링은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투기 종목이다. 그러나 유도든 레슬링이든 선수단이 내놓은 애틀랜타올림픽의 예상 성적표는 간신히 현상 유지를 노리는 정도다. 남자 유도의 경우 국제 무대에서 일본이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자 유도 종목에서는 쿠바가 새로운 강호로 떠오른 지 오래다.

레슬링이 직면한 상황도 이에 못지 않게 위태롭다. 옛 소련이 무너진 여파가 국제 레슬링계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레슬링 선수들은 체급 별로 소련 대표 선수 한두 사람을 상대했지만, 지금은 같은 체급에서 제각각 다른 국가 소속으로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옛 소련권의 강자들을 무더기로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유도팀과 레슬링팀은 한국 체육의 자존심을 걸고‘메달 사냥’에 나선다. 유도팀, 특히 남자 유도팀은 최근 강세를 보이는 일본 유도의 금메달 싹쓸이 야망을 저지해야 하며, 레슬링팀은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최초의 금메달을 안겼던 종목으로서 명예를 지켜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

 
한국 유도팀의 간판 선수인 전기영(86㎏급)은 일본의 요시다 히데히코와 우승 문턱에서 마주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우승자(당시 78㎏급)이기도 한 요시다는 비록 전기영 선수와 벌인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패했지만 체급을 86㎏급으로 올린 뒤 전일본선수권대회 무제한급(무체급)에 출전해 2위를 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나다. 유도팀 이경근 코치는 “86㎏급 선수가 백㎏ 이상 선수들이 즐비한 무제한급에 출전해 준우승한 기록은 일본 유도에서도 사상 전례가 없다. 그만큼 요시다의 실력은 만만치 않다”라고 말했다.

남자 유도팀에는 전기영 외에도 65㎏급 이성훈과 78㎏급 조인철이 메달에 도전한다. 반면 여자 유도는 ‘쿠바 돌풍’만 잠재우면 일본팀과도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 현재 여자 유도에서 금메달 후보로는 95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우승한 정성숙(61㎏급), 역시 9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조민선(66㎏급) 이 꼽힌다.
유도가 일본의 거친 파고를 타고 넘어야 한다면, 레슬링은 옛 소련권 강호들과 새로이 레슬링 강국으로 떠오른 미국 선수들을 꺾어야 메달을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은 그레코로만형에 심권호(48㎏급) 최상선(62㎏급), 자유형에 정순원(48㎏급)과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박장순(74㎏급)을 내세워 금메달에 도전한다.

 
역도·사격·체조에서도 금메달 기대


선수단은 특히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심권호와 9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한 정순원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레슬링협회 이사로서 레슬링 선수단 훈련 지도에 참가한 양정모씨(몬트리올올림픽 우승자)는 “국제 대회 성적이 이번 시합의 보증수표는 절대 아니다. 레슬링 경기는 워낙 상대적이어서 우세를 지키다가도 뒤집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게다가 참가국 수가 많은 만큼 곳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일말의 불안감을 표시했다.

사격은 기록 경기에서 양궁에 이어 한국의 존재를 확인시켜 줄 주종목이다. 사격에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2개를 조준하고 있다. 남자 소구경3자세의 이은철과 여자 공기권총의 김정미가 바로 금과녁을 노리는 주인공들이다. 특히 김정미 선수는 지난 6월 밀라노대회에서 397점을 기록해 개인 1위를 차지하는 등 국제 대회 성적이 좋아 금메달 획득이 가장 유력하다. 반면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이은철 선수는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 출전했던 밀라노대회에서 이은철의 기록과 순위는 1,165점에 25위였다. 사격 종목에는 육상·수영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금메달(15개)이 걸려 있다.
한국 선수단은 이밖에도 역도(전병관·김태현)와 남·녀 필드하키, 체조(여홍철·도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넘보고 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고 구기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여자 핸드볼팀이 분전하는 모습과, 92년‘몬주익 신화’를 재현하려는 한국 마라톤 이봉주·김이용·김완기 선수의 역주도 기대해 봄직하다.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 결정으로 축구에 대한 열기가 더욱 고조된 가운데 올림픽에 출정하는 한국 축구는 비록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더라도 ‘올림픽 8강’ 목표를 선언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대표 선수 3백84명은 태릉선수촌에서 한덩어리가 되어 비지땀을 흘려왔다. 훈련이 한창이었을 때 역도 선수들은 매일 2만5천~3만㎏을 들어올리는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레슬링 대표들은 매일 훈련 강도가 100%에 이를 때까지 태클과 굴리기를 반복했다.

 
국민 성원, 메달 획득에 지대한 영향


하지만 이처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체력과 정신력을 다져온 대표 선수들의 가슴 한켠에도 훈련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응어리가 맺혀 있다. 올림픽이나 세계 대회 등 특별한 때에만 열광하고 식어 버리는 국민 성원과 반비례해 시합 때만 되면 ‘금메달’을 외치는 무리한 요구가 늘 아쉽기만 하다.

각 종목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시합 자체보다는 자기네 종목의 어두운 미래를 걱정한다. 사격 국가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관용 감독은 “사격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날로 줄어들어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사격 강국의 명맥이 끊어질지 모른다”라고 털어놓았다. 유도 대표팀 이경근 코치는 “이번 올림픽이 끝나면 몇 명이 은퇴할지 모르지만 다음 올림픽은 힘들다. 선수 육성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해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애틀랜타올림픽은 살인적인 무더위로 인해 유난히 많은 ‘장외 복병’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메달 전선에서 정작 중요한 장외 복병은 우리 내부에 있다. 그 복병을 어떻게 퇴치할 것인가는 선수단을 응원하는 국민의 태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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