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지고 개혁 뜨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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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안팎의 거센 저항을 물리치고 군 법무장교단이 50년 만의 ‘명예 혁명’을 완수했다. 4성 장군인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전격 구속한 군 검찰은 여세를 몰아 각종 군수 비리와 인사 비리에도 칼을 들이댈
군을 통틀어 8명뿐인 현역 4성 장군 중 한 사람에게 ‘기습적으로’ 칼을 들이댄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충견이 주인을 문 격이다.” 5월8일 밤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대장)이 공금 횡령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전격 구속된 사태를 두고 군의 한 정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군 이래 50여년 동안 군 지휘관들은 군 법무 조직을 자기네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부하 참모 조직’에 불과하다고 여겨온 터였다. 그래서 많은 군 장성들은 이번 수사를 놓고 앞마당을 지키던 개가 주인을 물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군 내부 분위기로 보면 이번 수사는 군 법무장교단에게는 50년 만에 이루어낸 ‘명예 혁명’으로 불릴 만하다. 국방부의 한 법무 장교는 “현역 4성 장군 구속은 지난해 사회의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얻어 국민적 지지를 받았듯이 올해는 군 검찰이 군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을 얻어 대다수 군인의 인권을 위한 군 사법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이다”라고 말했다.

신일순 장군 수사팀은 완벽한 범죄 증거를 잡기까지 몇 달을 내사하면서도 국방부장관은 물론 군 정보기관조차 모르게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뒤늦게 관할관 제도를 통해 수사 내용을 파악한 국방부장관 등 군 수뇌부는 어떻게 해서든 구속만은 막아보려고 제동을 걸었다.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곤혹스러워 보였다. 신장군이 별 넷을 달 때 조영길 장관이 적극 추천했던 것이다.
조장관에게는 외부의 압력도 있었다. 재향군인회·성우회 등 예비역 장성들이 조장관에게 ‘신일순 대장 구속을 승인하면 장관 마치고 군 사회에 돌아와 얼굴 들고 살 생각을 하지 말라’는 요지로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조장관은 수사팀에게 군의 정서를 들어 ‘신장군을 전역시키는 선에서 끝내자’ 거나 ‘횡령 액수를 줄여달라’는 주문을 했다.

수사팀이 반대하자 3군단장 재임 중 횡령액만 넣고 연합사 부사령관 재임 시절의 비리는 없었던 것으로 다루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이에 굴하지 않고 ‘3군단장 시절 1억2천5백만원, 연합사 부사령관 시절 3천5백만원’이라고 구속영장에 기재했다.

이 과정에서 군 수뇌부는 언론의 힘을 빌려 수사의 방향에 제동을 걸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끝내 무산되었다. 군 수뇌부와 군 검찰의 갈등이 겉으로 불거진 때는 지난 5월2일. 국방부 대변인이 신장군에 대한 검찰 수사 사실을 일방적으로 흘리면서 ‘부대비 1천만~2천만 원 전용’사건이라고 축소 발표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군 검찰과 지휘관은 상하 관계이지 수평 관계가 아니라면서, 국방부가 신장군을 사법 처리하기보다는 전역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처럼 내비쳤다. 대부분 언론의 논조도 그런 방향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 날 국방부 검찰단은 발칵 뒤집혔다. 수사팀은 신장군의 비리 혐의가 거의 파렴치범 수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며 압박했다. 군부 내 부정 부패를 비호하는 공범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국방부장관이 구속영장에 사인하라는 강력한 요청이었다. 결국 세 차례에 걸친 신장군 소환과 귀가 조처, 영장 내용 조정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5월8일 밤에야 조장관은 구속영장에 사인했다.

군 법무 장교들은 신장군을 구속한 후 내친 김에 군 내부 비리 수사를 전면 확대하겠다는 태세이다. 성역 중의 성역이던 현역 4성 장군을 사법 처리했으니 이제 중장이나 소장, 준장의 구조적인 부정 비리는 걸리기만 하면 파죽지세로 잡아넣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신장군 구속이 대대적인 군부 사정을 예고하는 신호탄인 셈이다.

현재 군 검찰은 칼을 들이댈 대상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군수 비리와 인사 비리가 그것이다. 이 중 무기 도입 비리로 대변되는 군수 비리가 사정의 핵심 대상이다. 인사 비리도 깊이 들어가면 결국 무기 도입 및 군납 과정 비리와 연결된다. 인사 비리는 부대 예산을 횡령할 수 있는 요직을 둘러싼 자기 인맥 심기와 상납 등 구조적으로 엮여 있다는 점에서 군수 비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군 검찰단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창군 후 처음으로 군수 비리를 제대로 파헤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당선자 시절부터 이같은 분위기를 보고받은 노대통령 역시 군수 비리 수사를 통해 무기 도입 과정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방 개혁의 핵심이라고 인식하고 이를 적극 지시했다고 한다. 무기 도입 사업 비리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역대 정권과 군 내부 실세들이 개입했기 때문에 제대로 파헤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 율곡비리 수사도 당시 수사 사령탑이던 이회창 감사원장이 아들 수연씨의 병역 비리 덫에 걸려 좌절된 경우다. 무기 도입 비리의 핵심 인물이던 권영해 당시 국방부장관은 수사의 칼날이 자기에게 다가오자 이회창씨 차남 수연씨의 병적 기록을 카드로 써서 수사를 좌절시켰다는 것이 당시 수사팀 내부의 정설이다.
군 검찰은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무기 도입 비리의 핵심 인물을 색출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집권 초기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군 검찰 소장파가 모임을 갖고 사정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들 소장 군 검찰관의 힘만으로는 군부 내 반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 법무 장교는 “지난해 김창해 국방부 법무관리관에 대한 명백한 비리 증거를 확보하고도 그를 사법 처리하는 데 1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군 수뇌부의 반대와 방해가 그만큼 극심했다는 말이다.

결국 일부 무기 도입 비리 수사는 지난해 12월에야 군 검찰 내사 자료 일부를 넘겨받은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담당해야 했다. 오리콘 대공포 개량 사업과 케이블 어셈블리 납품 사업, 해군 견인소나장비 납품 사업 등을 둘러싸고 비리를 자행한 혐의로 이원형 국방부 품질관리소장과 무기중개상인 이영우 AM코퍼레이션 회장, 정호영 한국레이콤 회장이 구속되었다. 천용택 전 국방부장관을 유력한 ‘몸통’이라고 보고 소환 조사했지만 아직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경찰 수사는 군 검찰이 군부 내 장벽을 절감하고 청와대에 보고해 위탁 수사한 성격이 짙다. 이에 대해 당시 사정에 개입했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무기 도입 비리 및 로비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부 군 수뇌부의 방해 때문에 도저히 군 검찰이 수사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자 민·군 합동수사본부 설치를 목표로 삼고 경찰에 넘겼다. 그러나 경찰청 수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특조단 결성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군 검찰은 군수 비리 등 군 내부의 각종 구조적 비리를 정화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이번에 현역 4성 장군 구속이라는 충격 요법을 쓴 것이다.”

지난해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조사한 무기 도입 비리 3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군 검찰은 이번에 4성 장군까지 구속한 여세를 몰아 그동안 한번도 사법 처리하지 못한 과거 정권 실세 및 군부 실세들이 개입한 각종 무기 도입 비리까지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현행 군 사법제도에서 이같은 근본적인 군 개혁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측면이 있다(상자 기사 참조).

군 수뇌부는 신장군 구속을 ‘어쩔 수 없이’ 승인했지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반격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군의 한 소식통은, 최근 군 수뇌부 회의에서 군 검찰단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개탄하면서 몇몇 군 검찰관들에 대한 뒷조사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인사철을 앞두고 투서를 대대적으로 색출하겠다는 언론 보도 역시 ‘군 개혁’에 적극적인 특정 군 검찰 간부를 지칭한 것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다.

집권 2기를 앞두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군 통수권자로서 군 개혁을 둘러싼 내부 갈등을 어떻게 정리하고 군을 확고히 장악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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