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 싸움터의 ‘독립군’ 이기택·김윤환·이부영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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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김윤환·이부영 제 목소리 내며 각개약진… ‘세대 교체’ 공감대
지방 선거가 3김씨의 영향력 싸움 양상으로 변하면서 정치판에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여야 중진들 사이에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이해에 따라 각개약진하고 있는 꼴이다. 토해 내는 말만 들어서는 누가 민자당 사람이고 누가 민주당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현재 여권 핵심의 흐름에서 가장 멀리 헤엄쳐 나와 있는 사람은 김윤환 정무장관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것이 개헌 불가와 세대 교체이다. 그러나 김장관은 대통령이 설정한 이 대원칙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개헌을 공론화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이르다는 전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재의 권력구조가 개편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들고 나온 내각제 개헌에 대해서도 매우 신축적인 태도를 보인다.

정계 개편 사실상 ‘시동’

김장관은 김영삼 대통령이 얘기하고 있는 세대교체론과는 그 의미가 판이한, 신주체론을 내세우고 있다. 세대 간의 권력 이양이 아닌 권력 주체 간의 임무 교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문민 정부를 탄생시킨 대구·경북 지역이 앞장서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한다”(5월16일 민자당 대구시장 후보 추천대회)는 말도 공공연히 했다. 또 “집권당은 무력하고 내각은 중심이 없다”는 말을 통해 우회적으로 여권 핵심부를 공격했다.

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그는 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TK 스킵론’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었다. TK 스킵론이란 김영삼 대통령을 일단 지지한 뒤 다음에는 대구·경북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자는 얘기이다.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에는 숨을 죽이고 있다가 이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당당하게 자기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영삼 대통령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자세는 아니다. 김대중 이사장이 선거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데 대해 민자당 관계자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비난 논평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는 말을 아끼고 있다. 경기도지사 경선과 관련해 민주당 이기택 총재가 탈당할 움직임을 보였을 때는 이총재를 가리켜 “당 총재가 당의 승패를 도외시하고 자신의 계파 이익만 챙기고 있다”며 김이사장 편에 서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그가 내세운 신주체론에 대해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멋도 모르는 민주화 세력이 이랬다 저랬다 하니까 과거에 죽 국정을 이끌어온 개발 세력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맞장구를 친 일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신 3김 시대의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권의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현재 민주당의 중심 세력으로부터 저만치 홀로 떨어져 나와 있는 사람은 이기택 총재이다. 경기도지사 경선과 관련해 탈당 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하고 당무에 복귀한 그는 김대중 이사장과도 다르고 당 대변인과도 다른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김이사장의 등권론에 대해 “지금은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어 대답하기 어렵다”고 딴청을 부리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지역분할 구도를 비난한다. 김이사장과 연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에 대해서도 가시돋친 말을 퍼붓는다. 그는 몸만 민주당에 있지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이다.

민자당 김덕룡 총장과 민주당 이부영 부총재도 다른 당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죽이 잘 맞는다. 본래 민주화 세력의 연대를 주장했던 두 사람은 지역분할 구도·내각제·세대교체 등에 대해 어휘만 조금씩 다를 뿐 거의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발 독재 시절의 전과와 경력은 구분돼야”(김덕룡 총장)하며, “내각제는 지역할거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커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성장할 공간을 심각하게 제약한다”(이부영 부총재)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세대 교체와 지역 등권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이사장이 흡인력을 발휘하자 여야 중진들은 각자의 이해와 명분에 따라 마음이 먼저 딸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상 정계 개편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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