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바람' 태풍인가 회오리인가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7.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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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와 여성층이 ‘이인제 바람’의 진원…표로 연결될지는 미지수
‘그는 케네디를 연상시킨다’. 이인제 경기도지사의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뒤 PC통신에 오른 글이다. 이 글을 쓴 이는 몇 년 전 이른바 ‘창녀론’으로 PC통신 안팎에 화제를 불러모았던 신세대 논객 김완섭씨. 김씨는 이지사가 텔레비전 토론의 힘으로 미국 대통령이 된 케네디를 연상시킨다며, ‘강하고 과묵하며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비치는 이미지 또한 케네디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정가를 강타한 ‘이인제 돌풍’은 젊은 유권자들까지 서서히 그 세력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세 차례의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직후(6월13일) 여론 조사를 한 <중앙일보> 김 행 전문 기자는 ‘당시만 해도 여성(16.6%)보다는 남성(20.7%), 젊은층보다는 중장년층의 이인제 지지가 더 높았다’며, 이 때문에 ‘박정희 증후군’을 인기의 주된 요인으로 분석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40, 50대 유권자의 이인제 지지율이 각각 17.2%·20.5%였던 데 반해 20대의 지지율은 14.8%에 머물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열흘 뒤(6월23일∼25일) 다시 여론 조사를 실시한 <중앙일보>는 ‘이인제 인기의 주역은 주부들’이라고 못박았다(6월28일자). 다른 대선 주자들이 남녀별 평가 수치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 이지사는 남성(31.4%)보다 여성(37.8%), 특히 주부(39.6%)들로부터 이미지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가장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20대의 지지율도 20%대를 넘어섰다(23.0%).

“서울시장 선거 때 박찬종씨 같은 결과 나올 수도”

젊은 세대와 여성들의 반응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지사 선거 사무실에는 여성 지지자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가 점차 늘고 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이지사와 통화하게 해 달라’‘내 주소록을 제공할 테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지사를 홍보해 달라’는 등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PC통신에서는 신세대들이 이지사에게 갖는 호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읽을 수 있다. ‘야무진 눈매가 신선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똑똑 떨어진다’(SG1208), ‘숏목(‘짧은 목’을 가리키는 은어)이 당당해 보인다’(K8368)와 같은 인상 비평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괄호 안은 통신 ID). 그러나 이들이 이지사에게 기대를 거는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낡은 정치를 극복할 ‘가장 참신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의 지지는 이지사에게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 준다. 이들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희망적이다(20·30대 유권자 비율은 전체의 54%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가 ‘A가 좋아서라기보다 B나 C가 싫어서 A를 선택하는’ 요소를 갖고 있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여론 조사 전문 기관인 코리아리서치 이흥철 이사는, 이지사 개인에 대한 선호 못지 않게 사회적 의사 결정 구조라는 측면에서 ‘이인제 돌풍’의 배경을 따져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정적 태도, 곧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지지라면 그것이 계속 유지될지 좀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적인 경우 지지도 변화 폭이 5%를 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지사가 누리는 ‘이례적’인 인기 급상승은 정치 무관심·혐오를 일시적으로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거품 인기에 대한 지적과도 통한다. 이지사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박찬종 고문이 비교거리로 A등장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실제로 이지사와 박고문의 지지율이 ‘(한쪽은 올라가고 한쪽은 내려가는) 교차 곡선’을 그리면서 박고문의 지지 기반이 이지사 쪽으로 옮겨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들어 영남쪽 지역 기반이 탄탄해지기 전까지 박고문이 누려온 높은 인기는 주로 ‘반사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되곤 했다. 주된 지지 기반이 기성 정치에 싫증을 느낀 여성·20대 유권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지사가 느낄 불안의 정체는 좀더 명확해진다. 92년 대선과 6·27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고문은 선거 운동 기간 누렸던 지지를 표로 연결하는 데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여성·20대 유권자의 투표율과 지지 충성도(한 후보를 계속 지지하려는 경향)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분석했다. 이에 대해 이지사 선거 참모진은 ‘우리는 지역·계층 별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지사에 대한 지지율이 수직으로 상승한 데는 여성과 20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참모진 또한 인정하고 있다. 결국 이지사의 앞날은 이들의 ‘순정’을 어떻게 얻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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