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불도저' 조 순의 승부수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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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거듭하며 ‘청와대 입성’ 위해 돌진…강릉 보선 출마·DJ와 직거래 ‘배수진’
한나라당 조 순 총재는 요즘 새벽마다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맨다. 새벽 산행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4월1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직전부터 그랬다. 95년 정치에 입문하면서 중단했으니까 3년 만에 재개한 산행이다. 조총재에게 ‘산신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사실은 6공 당시 경제 부총리로 재직할 때 매일 아침 등산길로 출근한 데서 기인했다. 눈썹이 하얀 부총리가 관악산을 넘어 과천 정부종합청사로 출근하는 광경을 보고 공무원들이 붙여 준 것이다. 요즘 조총재의 새벽 산행은 1주일에 네 번 정도.

조총재가 3년 만에 새벽 산행을 재개한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참모들은 ‘정치적 결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회창·김윤환 등 비당권파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자 자신의 정치 인생을 새롭게 설계한다는 의미에서, 강한 집념을 다지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한 핵심 측근은 “조총재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조 순을 책상물림으로 보면 큰코 다친다”

그래서일까. 조총재는 ‘학자 출신으로서 현실 정치 세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치 준비했다는 듯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을 인용해 ‘정치는 준비가 필요 없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경험해 보니까 ‘정치 9단’이라는 사람들도 개성이 제각각이더라. 자기 스타일대로 하면 된다.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이 반드시 정치 신인보다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 경험이 짧아 거대 야당 한나라당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한나라당이 ‘조 순 체제’로 재출범했다. 대선 패배 1백10여 일 만에 새로운 체제의 야당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머리도 굵고 색깔도 제각각인 계파 보스들이 정치 생명을 걸고 벌인 ‘키 싸움’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정객들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정치 초년병 조총재가 당권을 지켜낸 것이다.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한나라당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조총재의 옹고집을 비꼬는 듯한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DJ는 이기택을 못 당해서 분당을 결행했지만, 그 이기택도 꼼짝 못하는 인물이 바로 조 순이다.’ 실제로 비당권파에서는 ‘KT보다 한 수 위’인 조총재의 고집에 혀를 내두르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조총재를 책상물림으로 보았다가 큰코 다쳤다는 자조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물론 비당권파와의 싸움에서 조총재도 이미지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이른바 가필 사건. 당헌 개정안을 공고하면서 조총재가 ‘차기 총재 경선은 내년 4월10일 이내에 재적 대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소집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던 의무 규정에 ‘총재가 소집한다’를 가필해 임의 규정으로 수정하면서 발생했다. 총재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 소집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비당권파는 ‘가필은 공문서 변조 행위’라며 조총재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전당대회 불참설까지 흘리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조총재측은 이를 못 들은 척 묵살했다. 결국 전당대회를 무사히 치름으로써 가필 파문은 어정쩡하게 가라앉은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이한동·김덕룡·서청원 등 당권파 세력은 한결같이 입을 꾹 다물었지만, 사석에서는 조총재의 고집을 놓고 입방아를 찧었다. 한마디로 조총재의 고집이 무리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필 사건은 앞으로 조총재의 행보, 특히 당권을 둘러싼 이회창 명예총재측과의 대결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즉 궁극적으로 정치인 조 순의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는 항간의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라는 것이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8월 조총재가 서울시장 직을 내던지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설 때부터 ‘조심(趙心)의 실체’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왜 출마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의 연장선에서 요즘 조총재가 총재 직에 집착하는 이유를 놓고도 이런 저런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장→민주당 대선 후보→신한국당과의 합당→한나라당 총재직 고수로 이어지는 조총재의 변신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대선 때 YS와 재벌이 지원했다

지난해 6월 어느날. 조시장은 봉천동 자택에서 제자 출신인 한 측근 인사와 바둑판을 놓고 마주앉았다. 한참 바둑에 열중하던 조시장은 뜬금없이 “대선에 출마하려고 하니 당신이 준비해 주어야겠다”라고 말했다. 조시장이 처음으로 제자 그룹에 대선 출마 결심을 털어놓는 순간이었다. 깜짝 놀란 이 인사는 전후 사정을 알아보았다.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시장의 대선 출마 결심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다. 바로 YS의 내밀한 지원과 아무개 재벌 그룹 회장의 자금 지원 약속, 그리고 당시 언론을 도배질하던 ‘신한국당 9룡’들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자신감이 작용했다.

당시 YS와 자주 청와대에서 회동한 조시장은, YS로부터 대선에 출마하라는 암시를 강하게 받았고, 한 재벌 그룹 회장으로부터는 자금 지원 약속까지 받아 놓고 있었다. 당시 조시장의 대선 출마를 준비했던 이 측근 인사는 “선생님은 정말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이는 당시 조시장이, 자신의 출마를 막기 위해 국민회의측이 제안한 서울시장 재공천 제의를 정중히 거절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조시장의 대권 야망은 출마 선언 직후 지지도가 급상승할 때까지는 유지되었지만, 막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서부터는 조직과 자금의 열세로 순식간에 꺾였다. 이처럼 한번 하강 곡선을 긋자 재벌의 자금 지원 약속도 없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회창 후보와의 결합. 일단 대권 꿈을 접은 조총재로서는 차선의 선택이었다. 11월7일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전격적인 합당 선언이 발표되기 직전까지 조총재는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를 놓고 저울질했다. 실제로 10월 말 ‘이인제-조 순 연대’를 추진하던 실무급 라인에서는 합의 각서까지 작성해 놓고 있었다. 합의 각서에 담긴 내용은 후보를 미정으로 둔 채 양측이 전격 통합하고, 종국적으로는 반DJP 연대를 끌어내자는 것. 당시 국민신당측은 조총재와의 연대를 철석같이 믿었다. 국민신당에서는 지금도 조총재의 연막 작전에 감쪽같이 속았다고 얘기할 정도다.
조 순·이회창 관계,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

그러나 조총재측의 말은 다르다. 이회창·이인제와의 연대 가능성을 다 열어 놓은 상태에서, 조총재가 두 후보를 직접 만나 본 뒤 혼자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조총재의 한 측근 인사는 “이인제 후보가 조금만 더 겸손하게 접근했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라고 말한다. 당시 조총재는 이인제 후보와 만난 이후, 이후보가 자신을 ‘선배님’이라고 부른 사실을 매우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정치인 조 순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정치 철학 또는 정책을 대하는 태도는 서구적이지만,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는 철저하게 동양적 정서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 조 순 총재가 이회창 명예총재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데에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즉 조총재는 지난해 대선 당시 합당 선언문에 명시한 총재 임기 2년 보장 약속을 ‘당 대 당 합의’ 이전에, 이회창 대통령 후보와의 ‘인간 대 인간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총재와 이명예총재의 관계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총재를 잘 아는 인사의 얘기다.

그러나 조총재와 이명예총재와의 관계에서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대목은, 조총재 스스로 설정한 정치적 목표가 무엇이고, 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총재의 구상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조총재는 특유의 ‘산행론’을 폈다. “정치도 산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한참 오르다 보면 산봉우리가 보이고, 그 산봉우리에 오르면 (발 아래의) 넓고 낮은 산들이 보인다. 산을 오르면 다음 산이 나타나는 법이다.”

자신의 행로가 한나라당 총재에서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는 어디까지 갈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끝까지 간다는 말도 했다. 내친걸음이라는 것이다. 조총재측은 승부수도 준비하고 있다. 바로 강릉 보선이다. 조총재측은 이미 내부적으로는 강릉 보선에 출마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오랜 지기인 최각규 강원도지사와의 대결도 불사한다는 각오다. 오히려 최지사와 격돌하는 것을 바라는 눈치이다. 강원도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동시에 보선 승리를 지렛대로 삼아 한나라당 총재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총재 직을 유지하는 동안 대권 주자로서의 결격 사유를 하나씩 보완해 가겠다는 발상이다.

정치에 대한 조총재의 무서운 집념을 볼 수 있는 대목 한 가지. 학자로서 조 순은 경제학자와 한학자의 양면을 갖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조선 중기 성리학의 거두였던 율곡 선생을 사표로 삼고 있다. 조총재는 고향 강릉에서는 ‘이율곡 이후 강릉이 낳은 최고 학자’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여하튼 율곡이 사림으로서 학문을 닦다가 나라를 바꾸겠다며 정치에 뛰어들었듯이, 조총재도 평소 ‘학자로서 지식을 나라를 바꾸는 데 쓰겠다’고 강조했다.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자신의 배움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권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전형적인 유학자의 사고 방식이다.

또한 조총재는 제자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는 “생애에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어 왔다”라며, 자신의 집념을 감추지 않는다. 30세에 처자식을 남겨 놓고 미국 유학에 오른 일부터 서울대 교수·경제 부총리·한은 총재·서울시장·대선 후보·한나라당 총재 등 일련의 변신이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얘기이다. 그는 아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 조총재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그가 제1당 총재 자리를 최대한 활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조총재는 김대통령과 ‘직거래’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려는 듯하다. 조총재가 단독 영수 회담을 끝까지 관철하고, 또 김종필 총리 인준 절대 불가를 굽히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DJP 연대의 균열과 그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이다. 청와대를 향한 조총재의 일관된 사인은 ‘DJ가 나와 맞상대하면 얼마든지 돕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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