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대화' 다음 과제는 '南南 대화'
  • 金鍾民 기자 ()
  • 승인 2000.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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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폭풍이 한반도에 일대 회오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6월13일 발표한 성명에서 “DJ의 평양 첫발은 우리에게 인류의 달 착륙을 뛰어넘는 의미를 지닌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북 문제에서 보수적인 논조를 유지하던 국내 언론들도 연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를 내보내며 ‘국가보안법 위반’을 서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좀더 차분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백진현 교수(서울대·정치학)는 “지금 우리는 엄청난 흥분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남북 문제는 성역이 되어버려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이 주는 충격과 의미가 큰 만큼 차분한 자세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더욱 무거워지고 많아졌다.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되는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국론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수 국민들이 지금은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대북관과 통일 문제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앞으로 이를 극복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전통적인 보수층의 경우 남북 관계 개선 과정에서 짊어져야 할 현실적 부담과 이념적 충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지 불만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이 이런 기류를 대변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지난 6월17일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김대통령으로부터 정상회담 결과를 듣고 난 후에도 19일 기자 회견에서 여전히 우려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거두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지적하는 문제는 우선 이념적으로 불안하다는 점이다. 이총재의 새로운 정책 브레인으로 자리를 잡은 이한구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 사상적으로 문제 삼을 만한 수준이다”라고 우려하면서 여기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의 반외세 자주 원칙이나 연방제 통일 방안을 수용한 것은 한·미 동맹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 외에도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없었던 점,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통일 방안에 합의한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남북 경제 협력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통일 비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통일 방안 국민 투표에 부쳐야”

물론 이러한 한나라당의 비판적 입장은 현재로서는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당내의 젊은 의원과 당직자들 가운데는 이총재가 비판 쪽에 너무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을 불안해 하는 인사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보수층의 반발과 영남의 뿌리 깊은 반DJ 정서가 결합하면 한나라당의 비판적 입장이 현실적인 소구력을 갖게 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이견이 국론 분열로 치닫는 상황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남북 문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철저하게 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다. 황성돈 교수(외국어대·행정학)는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이 정상회담의 성과에 만족해 대통령 독주 체제로 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와 여야 정당, 언론, 시민단체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범국민적인 통일 논의의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황교수는 특히 국민들이 남북 관계 개선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놓아야 국민적 합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연구원 김근식 박사(정치학)는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국론 분열을 막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국민의 동의를 충실하게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69년 사민당이 집권해서 신동방 정책을 펴자 야당인 기민당이 거세게 반발했는데, 사민당이 1972년 총선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은 후에야 그 반대가 수그러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의견 접근을 본 통일 방안의 경우 이념적으로 민감하고 현실적으로 중차대해서 하루빨리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한나라당은 통일 방안에 대한 합의가 국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국민 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통령 특별 수행원으로 동행한 문정인 교수(연세대·국제정치학)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를 통해 이제 남북 관계는 사실상 남북 연합 준비 단계로 들어섰다”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남북 정상회담·남북 각료회의·남북 국회회담 등이 정례화한다면 남북 연합 단계로 진입하는 것은 그리 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김대통령은 자신의 3단계 통일 방안에서 1단계인 남북 연합 단계에 언제 들어갈 것이냐 하는 것은 양측 당국의 판단과 결단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의 임기 내에 남북 연합 단계에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통일 방안이 가장 시급하게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사안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사회 전반의 뿌리 깊은 냉전 의식도 변화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을 주적으로 놓고 김정일을 비정상적인 독재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상태에서 남북 문제 개선 과정이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6월12일 남북 정상회담에 즈음해 성명을 내고 통일에 무관심하거나 통일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의 의식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하면서 범사회적인 통일 교육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교조는 이와 함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개정 문제도 언급했다.
한반도 정치 위해서는 대권 집착 벗어나야

한편 국민적 합의와 의식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주도해야 할 정치권의 변화가 필수이다. 1985년부터 7년 동안 남북 비밀 접촉에 관여했던 박철언 전 의원은 “통일 시대에 정치권이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권에 대한 소아적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앞으로 가장 우려되는 상황 가운데 하나는 정부·여당이 남북 문제를 정국 주도권 확보나 정권 재창출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경우이다. 보수 본당을 자처하던 자민련이 국가보안법 개정 등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자신의 이념적 색채를 누그러뜨리는 것에 대해서도 정상회담 분위기를 타고 DJP 공조를 복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이 결국 자민련과 민국당을 묶고 한나라당 내의 YS계와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여권이 이런 방향으로 가고 여기에 한나라당이 결사 항전하는 양상을 띠게 되면 정치권은 또 한 차례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야당이 차기 집권에 집착해 남북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심각한 문제다. 야당이 영남 정서를 바탕으로 DJ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자는 유혹에 빠진다면 정치권은 소아적 정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튼 그동안 여의도 정치에 안주해 온 정치권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 관계의 변화라는 ‘광폭(廣幅) 정치’와 당리당략에 집착한 ‘대권 정쟁’이 끊임없이 비교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는 점은 앞으로 여의도 정치에 적지 않은 압박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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