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개혁은 등짐 지고 뛰는 장애물 경주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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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위, 주도권 확보·이익 집단 설득 등 과제 산적…신속·공정 처리가 성공 관건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위원장은 79년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 시절 율산그룹 파동 때문에 관직을 떠났다. 그런 그가 금융기관 감독과 기업 구조 조정을 책임지는 초대 금감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복귀했다. 부도 기업 정리 파문으로 관직을 떠난 그가 현재 경제 위기의 주원인인 부실 기업 정리에 주역으로 나선 것이다. 이위원장은 지난 4월30일 “구조개혁기획단을 5월5일 발족해 16일까지 기본 계획과 실천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9월 이전에 1차 구조 조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부처마다 딴소리…“어느 장단에 춤추나”

구조 조정을 주도할 이위원장은 많은 과제를 떠안고 있다. 첫 번째는 구조 조정 작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벌을 개혁할 책무는 은행 감독권을 가진 금감위가 맡았다. 김대중 정부가 은행들이 재벌에 빌려준 돈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방법으로 재벌을 개혁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금융 정책을 맡은 곳은 금감위 외에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한국은행·예금보험공사가 있다. 또 청와대는 지난 5월14일 김태동 경제수석이 이끄는 경제구조조정기획단을 새로 출범시키고 경제 구조 조정 핵심 과제 추진 상황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구조 조정 관련 연구물을 작성해서 보내야 할 곳이 너무 많다. 금감위가 구조 조정 작업과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자 이제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구조조정기획단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가. 답답하기 그지없다”라고 말했다.

부처에 따라 처방이 제각각이어서 구조 조정 대상인 은행과 기업 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다. 금융기관 감독을 책임진 이위원장이 경제 부처를 아우르는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구조 조정 실무 작업의 기본 기획안을 마련하고 실천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구조 조정 작업이 원래 금감위 몫이고 이위원장이 총대를 메겠다고 나선 이상 최소한 구조 조정 실무 작업은 금감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주도권 문제가 미처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위원장은 노동운동권과 구조 조정 대상인 기업의 반발에 부딪혀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구조 조정 작업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곳은 노동계다. 한국노총 이정식 정책국장은 “정부와 재벌이 구조 조정에 뜻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공공 부문과 재벌의 구조 조정은 뚜렷한 성과가 없는 반면 노동 현장에서는 불법 해고와 부당 노동 행위가 자꾸 자행되고 있으니 노동자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5월16일부터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고 총파업까지 공언하고 있다.

구조 조정 대상인 재계도 부실 기업 조기 퇴출 방침에 집단 반발할 조짐을 보였다. 지난 5월14일 이위원장이 재벌들에게 구조 조정 작업을 서두르라고 재촉하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손병두 상근부회장은 “너무 재촉하지 말라. 정부가 하도 나서니 기업 가치가 떨어지고 팔리지도 않고 있다”라고 곧바로 맞받아쳤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도 “정부 역할은 기업이 구조 조정을 할 수밖에 없도록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그쳐야 한다. 지나치게 ‘감 놔라 배 놔라’하니 기업 구조 조정이 늦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구조 조정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높은 환율, 높은 금리, 높은 실업률, 높은 부도율을 감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구조 조정 성공 여부는 이익 단체의 반발을 이겨내고 얼마나 빠르고 공정하게 작업을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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