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대평원, 몽골의 가슴이 탄다
  • 울란바토르·金芳熙 기자 ()
  • 승인 1996.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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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공항 한켠의 군용 비행장에 대기한 군용 헬리콥터는 덩지는 컸지만 아주 낡은 것이었다. ‘이게 뜨랴’ 싶을 정도였다. 통역과 안내를 위해 같이 나선 울란바토르 대학 여병무 교수(한국어과)가 한마디 거들었다. “몽골에서 폐기 처분이란 없습니다.”

같이 탄 네팔 국적의 국제통화기금(IMF) 몽골 대표 수데브 샤씨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던가 보다. 그는 헬기가 제대로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헬기에 같이 탄 군인 15명과 샤씨를 수행한 총리비서실 관계자 2명만이 이런 헬기에 익숙해 보였다.

지난 5월27일 오후 2시8분. 울란바토르 군용 비행장을 사뿐히 이륙한 헬기는 30분도 채 안돼 연기에 휩싸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쯤 되는 투브(중앙)아이막의 보고니 지역. 울란바토르에서 백㎞ 정도 떨어진 이곳 산림 지대가 연기의 진원지였다.

조종사는 지상 5백m 이하 높이로 저공 비행을 하면서 연신 불이 난 곳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서 화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초원에서 나무로 옮겨 붙은 불길로 인해 엄청난 연기가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 군인들 역시 입을 딱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 엄청난 화마와 싸우기 위해 그들이 헬기에 실은 것이라곤 AK 소총과 넓은 고무판이 달린 막대기, 얼음 알갱이 두 부대가 전부였다. 정적을 깨려는 듯 40대 후반의 운항 책임자 항갈 대령이 소리쳤다. “이런 불은 난생 처음이야.” 그러나 그 소리는 이내 헬기 엔진의 굉음에 묻히고, 20명을 태운 러시아제 헬기는 착륙할 장소를 찾아 화재 지역 상공을 서서히 벗어났다.
지난 2월23일부터 석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세기의 대화재를 취재하러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한 것은 5월24일 저녁 7시 무렵. 당시 울란바토르 시는 이상한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마중나온 대통령 외교정책자문관 갈바드라씨가 산불 연기 때문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몽골 초원의 불이 그리 실감나지 않았다. 해발 1천4백m 고원 도시인 울란바토르는 산에 둘러싸여 있어 공해가 심하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있어 스모그려니 했다. 출발하기 전 5월 중순 몽골 일부 지역에 내린 비와 눈으로 (몽골에서는 5월 말까지 눈이 내린다) 불이 대부분 꺼졌다는 소식도 들었었다.

화재 진압에 죄수들까지 동원

그 다음날 차를 빌려 타고 울란바토르 인근에서 가장 크게 불이 났었다는 테렐지 지역으로 갔다. 울란바토르에서 70㎞ 가량 떨어진 이 지역은 이름난 휴양지로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겔과 승마 시설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는데, 산등성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까뭇까뭇 타들어간 자국이 마치 산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테렐지로 오는 길 양편 산기슭 명암이 유달리 또렷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테렐지에서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 한번은 말썽을 부릴 것 같던 78년산 벤츠 230E가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타이어가 평크난 데 이어 예비 타이어까지 찢어진 것이다. 뙤약볕 밑에서 한 시간여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다 간신히 낡은 시외 버스에 올라탔다. 그 버스에서 20대 청년 서너 명을 만났다. 그들은 떠듬거리는 영어로 정부의 지시에 따라 불을 끄러 갔다 오는 길이라 했다(현재 몽골에서는 대학을 비롯해 주요 기관과 단체에 동원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인데, 교도소도 예외가 아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국가재해대책본부가 5월26일까지 피해 상황을 집계한 것에 따르면, 전체 22개 아이막(우리나라의 道에 해당) 가운데 14개에서 3백40회에 걸쳐 불이 났다. 이 가운데 2백2 군데가 꺼졌고, 백 곳은 약한 불길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 아직도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는 지역은 38 곳이었다.

건조한 초원의 나라 몽골에서는 매년 봄 수십 차례 불이 나기는 하지만, 올해 화재가 유독 빈발하고 피해가 큰 것은 날씨 탓이라는 것이 재해대책본부의 설명이었다. 라후가 부본부장은 겨우내 눈이 내리지 않아 올봄 기후가 사상 유례 없을 정도로 건조하고, 강풍도 이상하리만치 자주 분다고 설명했다.

외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몽골 정부는 불길을 잡기 위해 인공설 제조용 포를 쏘기도 했으나, 5월 중순 일부 지역에 내린 눈과 비가 이것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은 것 같았다. 인공설(우)은 비구름이 있을 때만 효과가 있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눈과 비가 내려도 자연 현상인지 인공 현상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당시 눈보라로 일부 지역에 인명 피해가 생기자 환경부 산하 기상청의 다보쑤렌 대변인은 오히려 이 눈이 인공설이 아니라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몽골인들은 국토의 5분의 1을 태웠다는 이 대화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마저 보였다. 대부분의 화재가 몽골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차를 끓이면서, 혹은 가축을 돌보면서 불을 소홀히 다루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 범죄수사국의 화재 원인 통계 자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올해 들어 발생한 굵직굵직한 불 2백59건 가운데 원인이 확인된 89건의 경우, 6건은 숲에서 양을 모으느라 피운 불이 원인이었고 15건은 담뱃불로 인한 것이었다. 부주의로 인한 29건과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 번진 39건에 이르기까지 화재의 대부분은 몽골인 스스로가 부른 것이었다. 범죄수사국은 화재 책임을 물어 올해 들어서만도 64명을 체포했지만, 그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들 자신도 잘 아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2백30만 인구 가운데 60만이 모여 사는 수도 울란바토르가 화재 영향권에 들지 않았다는 것도 몽골인들이 이 화재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것 같았다. 이번 불로 인한 사상자가 26명밖에 안되는 것도 대부분의 불이 초원지대에서 시작해 일부 산림지대로 옮겨 붙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8억달러(약 6천1백억원)에 약간 못미치는 국민총생산(GNP)의 5분의 1에 이른다는 피해 집계액도 초원의 쓰임새를 약간 과대 평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였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집권 몽골인민혁명당(MPRP)이 6월 말에 있을 총선을 의식해 불을 끄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집권당이 화재로 인해 외국에서 쇄도하는 원조를 자기들의 치적으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현재까지 원조액 합계는 50만달러 미만).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통역사는 불길이 울란바토르 근처까지 접근해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불길한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5월27일 오전에 찾은 곳은 몽골에서 컴퓨터가 가장 잘 갖춰져 있다는 환경부의 정보전산센터. 연구원 에르덴토야씨(여)는 매시간 전송되는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불이 난 지역은 인공위성 사진에 푸른 점으로 나타나는데, 울란바토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큰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10명이 화재 지역 12만 평 담당

헬기로 화재 지역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불이 다시 났다는 것을 확인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몽골 정부는 화재 진압 병력을 태우고 막 출발하려는 헬기에 탑승해도 좋다고 허가해 주었다. 이 급한 소식을 내게 알리려고 연세몽골친선병원의 몽골측 대표 외과의사인 라그바자브 조릭씨가 앰뷸런스를 동원해 온 시내를 뒤지던 참이었다.

오후 3시께 헬기는 보고니 지역의 한 마을에 착륙했다.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이미 연기가 그득했고, 동네 꼬마들이 연기 속을 헤집고 다니며 철없이 뛰어놀고 있었다. 헬기까지 타고 오지를 찾아준 군인들이 고마웠는지 마을 사람들은 수태차(우유를 넣고 끓인 차)를 내왔지만, 별 장비 없이 이곳에 들른 군인들로서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화재 진압 군인들이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말을 탄 마을 남정네들이 화재 지역으로 달려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딱 한 사람이 삽을 들고 있을 뿐 나머지 6∼7 명은 모두 빈손이었다. 샤씨는 전날 자신이 둘러보았던 화재 지역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10명이 40ha(약 12만 평)에 이르는 화재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꽤 먼 강가에서 느릿느릿 양동이로 물을 퍼다 불이 난 곳에 붓는 게 그들이 한 일의 전부였다.” 그는 당장 몽골에 필요한 것은 양수기와 호스 같은 현대적 장비라고 주장했다.

지원에 나섰던 병력이 올린 유일한 전과는 이 마을에서 응급 환자 1명을 실어나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얗게 질린 이 갓난아기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 등으로 보아 급성 폐렴 징후가 뚜렷했다. 읍내 병원까지 데리고 나갈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식구들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헬기 조종사에게 매달렸다.

“화재 지역 답사보다 생명이 중요하다”

헬기의 다음 목적지는 인근 군청 소재지인 바양찬드만. 환자를 그곳 병원에 입원시킨 뒤 지프를 빌려 화재 지역에 접근하자는 것이 운항 책임자의 생각이었다. 이곳에 착륙해 군수와 밀고당기는 협상이 지루하게 계속되는 동안 헬기는 또 한 사람의 응급 환자를 맞았다. 노환으로 숨져가는 한 노인이 들것에 실려온 것이다. 이 지역 여의사는 급성 폐렴을 앓고 있는 아기도 급히 울란바토르의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병력 15명은 이곳에 남기로 했다. 바양찬드만군이 이들을 불을 끄는 데 동원하는 대신 숙식을 책임진다는 조건이었다. 이제 취재진과 국제통화기금 시찰단이 현장을 둘러보는 일만 남았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가량. 지프는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와 그 식구들이었다. 그들은 헬기 안의 창을 통해 초조한 눈빛을 우리쪽에 보내고 있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드디어 결심이 섰다. 직접 이 세기의 대화재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기는 했으나 목숨보다 더 중할 정도는 아니었다(샤씨가 전날 화재 지역에서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제공하기로 한 것도 한 가지 위안이 되었다). 울란바토르로 기수를 돌린 헬기 안에서 본 화재 지역 상황은 몇 시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사방에 가득한 연기 때문에 비행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이 연기는 화재 지역 상공을 벗어나 울란바토르까지 이어졌다. 오후 6시10분 울란바토르 공항. 헬기를 빠져나오니 태양이 연기에 가려 약간 어둑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몽골인들이 급한 일에 닥쳤을 때마다 흔히 내뱉는 ‘마르가시!’(내일)라는 말도 위안이 되지 않는 상황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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