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그라운드’ 펼쳐졌다
  • 수원 천안 포항·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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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했던 프로 축구장에 관중 북적… 서포터·오빠 부대 등 젊은 대중의 ‘자발적 수용자 운동’이 큰 몫
한국 축구에 불이 붙었다. 프로 축구 경기장이 ‘하루 관중 10만명 돌파’ 등 여러 신기록을 쏟아내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열기이다.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후 축구 관계자들은, 위축될 대로 위축된 국내 축구의 앞날을 걱정했었다. 거기에 차범근 파문까지 겹쳐 한국 축구의 미래는 암담하기까지 했다.

7월18일 프로 축구 정규 리그인 ‘98 현대컵 K-리그’가 열리면서 하루아침에 축구 세상이 뒤바뀌었다. 30∼40대 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구경하던 썰렁한 경기장에 낯선 이들이 밀려들었다. 오빠부대. 가수들의 공연장과 농구 경기장에서 위력을 떨치던 그들이 축구장으로 진군해 온 것이다.

8월26일 천안 오룡경기장. 4시30분 경기를 앞두고 매표구 앞에는 오후 1시부터 여중고생들의 긴 줄이 늘어섰다.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경기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동국 모르면 원시’ ‘한방에 통한다 동국’ ‘동국 내 남편’ 같은 격문이 곳곳에 나붙고, 이동국 선수 몸놀림 하나하나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축구장을 처음 찾았다는 천안여고 2년 유현정양은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동국이 오빠를 보러 처음 왔을 것이다. 동국이 오빠는 축구 잘하고, 얼굴 잘 생기고, 우리와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아서 좋다”라고 말했다. 이날 천안 오룡경기장의 관중은 평일 오후인데도 1만3천명을 넘어섰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는 주말에도 관중이 천여 명밖에 들지 않던 곳이다.

83년에 시작된 프로 축구는, 한 해 먼저 출범한 프로 야구에 밀려 그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프로 야구가 양지였다면 프로 축구는 음지였다. 양지와 음지가 순식간에 자리바꿈한 이같은 일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에 약한 우리 국민들 사이에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한국 축구를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 같다”라고 이용수 KBS 축구 해설위원(세종대 교수)은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98 프랑스 월드컵, 4년 후에는 우리가 저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스타(대표 선수)들의 국내 그라운드 복귀…. 최근에 불어닥친 축구 열기에는 이같은 점들이 물론 큰 보탬이 되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젊은 대중이 벌인 ‘자발적인 수용자 운동’이다. 일본처럼 프로축구연맹이나 구단들이 외국의 유명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고 마케팅하면서 관중을 끌어모은 것이 아니라, 젊은 대중 스스로가 축구 열기에 불을 지핀 것이다. 수용자들의 조직적인 운동이 수렁에 빠진 한국 축구를 건져낸 셈이다.

그 선두에는 ‘붉은 악마’의 모태인 각 구단의 응원 부대가 있다. 축구 발전을 지원한다는 뜻으로 ‘서포터스’(Supporters)라 불리는 이들은, 국가 대표 경기가 열릴 때는 붉은 악마로 변하지만, 평소에는 대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각 구단으로 흩어진다. 수원 삼성의 ‘사이버 윙즈’, 포항의 ‘스틸러스’, 천안 일화의 ‘일레븐 플러스’ 등 각 구단을 응원하는 서포터는 3천명이 넘는다. 회원 대부분은 10대와 20대이다.
95년 PC통신 하이텔의 축구 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95년 12월 수원 삼성이 창단된 것을 계기로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50년대 유럽에서 등장해 70년대 이탈리아에서 꽃을 피운 ‘서포터 문화’가, 한국에서는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삽시간에 번져갔다. ‘사이버 윙즈’를 시작으로, 지난해와 올해 10개 구단 전체에 서포터가 생겨났다.

‘프로 축구 올스타전 성공’ 주역은 서포터

서포터들이 내건 슬로건은 자발성. 구단을 지원하되 도움은 거의 받지 않는다.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하고 발전을 꾀한다는 ‘이념’ 때문이다. 서포터들은 경기장이 텅텅 비어도 공짜표는 받지 않는다. 입장권 할인과 어웨이 경기가 열릴 때의 차량 지원, 선수 유니폼을 만원에 살 수 있는 것 정도가 구단으로부터 받는 혜택이다.

수원 삼성의 서포터로서 하이텔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한태일군(경기대 2년)은 “구단의 지원을 받으면 우리 목소리를 떳떳하게 낼 수 없다. 구단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기차의 선로처럼 끝까지 함께 가면서 서로 긴장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축구 붐을 주도한 서포터들의 활약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우선 축구장의 응원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프로 야구나 농구처럼 구단이 고용한 치어 리더를 따라 수동적으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포터들은 관중이 주체가 되는 응원 문화를 만들어냈다. 많게는 천명, 적게는 10여 명이 경기 내내 ‘미친 듯이’ 응원하는 모습은 썰렁하던 경기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일반 관중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는 신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은, 응원뿐 아니라 한국프로축구연맹과 구단을 상대로 축구 발전을 위한 수용자 운동을 적극 펼친다는 점이다. 서포터들은 PC 통신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관중 처지에서의 불만 사항을 연맹과 구단측에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토로한다. ‘열심히 응원했는데 왜 선수들이 인사도 안하느냐’ ‘조명탑 불은 왜 그렇게 어두운가’ ‘선수들의 플레이가 너무 거칠다’ 같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8월16일 잠실 종합운동장을 가득 메운 ‘프로 축구 올스타전’은 연맹·구단·서포터 들의 합작품이었다. 역대 축구 스타들을 불러내는 등 관중을 모으는 갖가지 신선한 아이디어는 서포터들에게서 나왔다. 전남팀의 서포터로 활동하는 문화 평론가 이동연씨(한려산업대 교수)는 “최근의 축구 열기는 서포터 신드롬에서 파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신드롬은 축구 오빠부대이다. 여중고생이 가장 많이 연호하는 ‘오빠’는 이동국(포항 스틸러스·19)과 고종수(수원 삼성·20). 두 선수의 공통점은 고교 졸업 후 서태지처럼 대학을 거부하고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으며, 나이가 어리고, 월드컵에서 활약한 국가 대표 선수라는 점이다. 프로 무대 3년차인 고종수와 올해 데뷔한 이동국은 전국 어디를 가든 수천 관중을 몰고 다닌다. 농구에서나 있었던 현상이 축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20일 월드컵 대회 한국 대 네덜란드 전에서는 신세대들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후반 12분을 남기고 서정원과 교체 투입된 어린 선수가 겁없이 경기를 펼치는 데다, 키도 크고(185cm) 탤런트 못지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벨기에전을 마치고 귀국하던 월드컵팀은 달걀 세례를 각오하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맞은 것은 비난이 아니라 환호였다. 2천여 여학생이 몰려나와 ‘새로운 오빠’ 이동국을 연호했던 것이다.
관중 늘자 골도 늘어… 공격 축구 ‘활짝’

오빠부대의 파괴력은 농구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이상민 우지원 전희철 서장훈 현주엽 등에 대한 그들의 열광적 지지는 프로 농구가 출범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가 되었다. 서장훈·현주엽 이후의 스타 공백기(물론 농구 시즌이 아니기는 하지만)를 축구 선수들이 메운 셈이다.

국내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스타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게 한(44~45쪽 딸린 기사 참조) 이동국과 고종수의 스타 효과는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안정환(부산 대우·22) 김은중(대전 시티즌·19) 같은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축구에서 생소하기만 했던 선수 팬클럽이 만들어지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각 구단이 스타 만들기 경쟁을 벌이는 것도 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백태클 금지 룰’이 생기면서 공격 축구가 살아났다고 하지만, 공격 축구도 실은 관중석의 열기가 이끌어냈다고 보아야 옳다. 포항의 박성화 감독에 따르면, 월드컵 이전이나 지금이나 각 구단의 전술에 새삼스러운 변화는 없다. 그러나 실제 경기는 공격 축구로 바뀌었다. “대관중이 운집하면 선수와 감독은 당연히 흥분한다. 흥분한 상태에서는 공격 축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경기 중에 감독들이 지르는 소리는 수비를 강화하라는 것인데, 지금은 소리를 질러 봐야 함성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다. 불안해도 그냥 놔둘 수밖에 없다.” 박감독은, 평소에 말을 잘 못하는 사람도 술을 먹으면 용기를 얻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축구 경기장에 열기가 일기 전에는, 선수들에게 실제 경기가 연습 경기나 다름없었다. 골을 넣어도 환호하는 사람이 없어 골 세레모니도 싱겁기 짝이 없었다. 경기 내용보다 결과를 앞세웠던 한국 축구는, 거친 플레이로 외국인 용병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관중이 꽉 들어찬 경기장에서 신명이 난 선수들이 벌이는 최근 경기들은, 박진감 넘치는 공격 축구와 깨끗한 매너로 팬들을 사로잡는다. 골은 늘고 파울은 줄었다. 지난해 경기당 2.62골이었던 평균 골 수가 최근에는 3.5골로 늘어났다. 선수와 감독들 사이에 관중을 몰고 다니는 ‘스타(상품)’는 잘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확연하게 달라진 그라운드의 풍경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 팀의 스트라이커는 수비수들의 표적이 되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러나 지금은 감독들이 자기 팀 수비수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밀착 마크는 하되 절대로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상대 편이지만 스타가 빠지면 관중을 잃을 뿐더러, 팬들의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바람 난 구단들, 팬 서비스 팔 걷어붙여

경기력 향상에만 신경을 쓰던 각 구단은 경기 시작 2시간 전 대형 스크린을 활용해 영화를 상영하는 등 팬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렸고, 마케팅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5천∼6천 관중만을 상대하던 각 구단 프런트가 갑자기 2만∼3만명을 맞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이같은 팬 서비스는 한국 축구 사상 처음 있는 것이다.

잠재적인 팬은 가장 많이 확보했으면서도(조기 축구 회원만 해도 2백50만명인 데다, 국가 대표 경기는 언제나 인기가 있다), 그들을 끌어들이지 못해 지지부진했던 한국 프로 축구는 젊은 수용자들의 열광을 통해 거듭나고 있다. “수십년 축구 생활을 하면서 이런 열기는 처음 경험한다. 서포터와 어린 여학생들은 한국 축구의 은인이다”라고 박성화 감독은 말했다.

젊은 수용자들이 불러일으킨 축구 열기는 국민 대다수가 고통받는 지금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30년대 경제 공황기에 미국 야구 메이저 리그가 그랬던 것처럼, 축구를 매개로 한 잔치는 국민들에게 큰 위안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수용자들은 또 2002년 월드컵이라는 세계 최대의 이벤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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