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필사 방어 전략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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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빼가기’ 물밑 공방 치열…각개격파는 DJ에게 오히려 불리
국회 의원회관 지하에 의원 전용 사우나탕이 있다. 만든 지 2년쯤 되었다. 여기서는 때때로 여야 정적들이‘알몸으로’ 맞닥뜨리기도 한다. 최근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도 욕탕에서 남궁진 의원 등 DJ 가신들과 마주쳤다. 대선 때 당 대변인을 맡았던 이의원은 국민회의로부터‘손 볼 사람’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런데 욕탕에서 주고받았다는 정적들 간의 농 섞인 대화가 흥미롭다. 먼저 남궁의원의 말. “이의원도 그쯤 했으면 우리 당으로 오지 그래.” 이의원의 대답. “저야 반DJ 강경파인데, 거기 간다면 선배님들 입장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남궁의원의 말. “무슨 소리야, 이의원 같은 강경파가 와야 우리 당이 잘 되지.”

여당, 한나라당 공략할 ‘약점’ 분석 완료

물론 여야 의원들 간에 흔하게 오가는 농담이다. 그러나 이제 국회 주변에서 ‘의원 빼가기’는 정치인들이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농담에도 등장할만큼 ‘현실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JP 총리 인준 파동은 앞으로 정치권 대격변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겼다. 우선 JP 총리 인준 표대결을 이틀 앞둔 시점에 여당의 ‘한나라당 의원 성향 분석표’가 언론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문건은 한나라당의 ‘약한 고리’를 각개격파하겠다는 일종의 전투 지침서 성격을 띠고 있다. 개별 의원들에 대한 분석도 곁들여졌다. 이를테면 △김현철 관련 △비리 연루 △사업체 때문에 여당의 보호막이 필요한 경우 등 특정인의 정치적 약점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었다.

여권이 한나라당 개별 의원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인 성향 분석을 끝낸 이유는 물론 JP 총리 인준을 위한 조처였다. 그러나 조금만 각도를 달리해 보면, 이는 한나라당의 운명을 틀어쥐는 ‘무기’일 수도 있다.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야당을 공략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이기 때문이다.

요즘 국회 의원회관에는 정계 개편의 전주곡 같은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의 아무개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에게 개별 입당을 종용하고 있다느니, 특정 지역 야당 의원들이 여권의 실력자를 은밀하게 찾아가 입당 의사를 표시했다느니 하는 얘기들이다. 실제로 이러한 소문이 나돌고 있는 의원들에게 슬쩍 진상을 확인하면 ‘접촉은 했다’는 대답이 나오기 일쑤이다. 현재 이탈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야당 의원은 서울, 경기·인천, 충청 출신 등 20명 선이다.

이 때문에 대여 강경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총무단이 방어 차원에서 여당의 다양한‘야당 의원 공략 사례’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여당이 지금 당장 ‘의원 빼가기’같은 강공 전략을 구사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월27일 DJ는 한나라당 조 순 총재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우리는 빼낼 생각이 없다. 사람 빼내가기는 추호도 없을 것이다”라고 공식 언급했다.

사실 DJ로서는 개별 입당을 통한 다수 의석 확보가 썩 내키는 전략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JP 총리 인준 파동을 거치면서 소수 여당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무리수를 두지 않고도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쥘 기회는 많다. 요컨대 한나라당의 취약한 내부 구조가 자연스럽게 DJ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3대 여소야대 국회는 3당 합당이라는 정계 개편을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또 다르다. 즉 여소야대와 동시에 거대 단일 야당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이는 헌정사에서 전혀 낯선 환경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자금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계파 간의 화학적 융합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를 보완할 강력한 구심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정계 개편은 여권의 공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자체 분열로 촉발될 것 같다.

물론 여권이 먼저 무리수를 두면 오히려 한나라당의 단결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번 JP 총리 인준 파동에서 한나라당이 보여준 단결력은 자체 동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다수당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한 여권의‘자극적인’ 태도가 야기한 측면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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