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인은 어떻게 탄생하나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0.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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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선 대부분 '아버지 · 남편 후광' 업고 정계 진출 ··· 서구 지도자는 '자수성가형'
동양에선 대부분 ‘아버지·남편 후광’ 업고 정계 진출… 서구 지도자는 ‘자수성가형’

2000년 들어 지구촌 정치권에서 여성 지도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지난 3월 핀란드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인도네시아 메가와티 부통령은 최근 실질적인 국정 책임자로 떠올랐다. 현재 전세계 1백90개 국가 가운데 핀란드 방글라데시 아일랜드 라트비아 뉴질랜드 스리랑카 파나마 스위스에서 여성이 국가 수반을 맡고 있으며, 그 밖에 소냐 간디 인도 국민당 총재, 아지자 말레이시아 야당 지도자, 아로요 필리핀 부통령 등이 각국의 정계를 장악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 정치인의 배경을 따져보면 지역에 따라 독특한 특성이 나타난다. 아시아 지역 여성 정치인들이 주로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을 업고 정계에 진출한 ‘유훈 승계형’이라면, 서구 출신 여성 정치인들은 어려서부터 정치판에서 뼈가 굵은 ‘자수 성가형’이라는 것.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인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로, 세 아이의 어머니에서 갑자기 야당 총재로 추대되었으며, 소냐 간디는 남편인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반대파에 암살된 뒤 국민회의당 당수로 정계에 진출했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는 버마 영웅의 딸이고, 아지자 역시 부패 혐의로 투옥된 남편을 대신해 안과 의사에서 정치 투사로 전격 변신했다.

반면 핀란드의 할로넨 대통령은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원과 법무·보건·외무 장관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 아무런 정치적 배경이 없는 시골 잡화상의 딸로 태어나 영국 총리에 오른 마거릿 대처나, 전공 분야인 환경장관에서 출발해 총리에 오른 노르웨이의 그로 헬렘 브룬틀란트가 겪은 정치 행로와 비슷하다. 이들은 모두 청소년 시절부터 각종 정당의 토론 모임에 참여해 정치 감각을 익힌 뒤, 시의원이나 각료에서부터 차근차근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서구와 달리 아시아에 유독 유훈 승계형 여성 정치인이 많은 이유는 개인의 능력보다 감성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하는 아시아적 정서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여성 정치인들은 대체로 한계를 쉽게 드러내곤 했다. 정치력과 군부 장악력이 부족한 데다 국내 인권 문제에도 별 관심이 없어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나 파키스탄의 부토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박근혜 부총재 역시 아시아 여성에 공통적인 유훈 승계형 정치인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독재자였던 주피카르 부토의 맏딸로, 선거 부정을 저지른 아버지가 군부에 처형당한 뒤 그 후광으로 정계에 진출한 베나지르 부토와 정계 입문 배경이 닮아 있다. 부토는 이슬람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으나,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해 실각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 정치인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는 박부총재에게 어쩌면 부토가 반면 교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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