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여 쿠데타를 두려워하라
  • 지만원 (군사 평론가) ()
  • 승인 199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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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대권 이전투구 계속 땐 ‘위기로 판단’ 돌발 행동할 수도
12·12 쿠데타 세력이 응징을 받고 있다. 이를 보고 어느 군인이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것인가. 그러나 ‘남북이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한’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정서가 확산되면 군대식 사명감에서 ‘살신 구국’을 하겠다는 군인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군대식 사명감이 언제나 일반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적에게 잡혀도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군인이 적에게 잡히면 엄청난 고문을 당하고, 가족은 몰살된다. 따라서 군이 느끼는 위기 의식은 매우 민감하다. 위기 의식이 예민할수록 군대식 사명감이 발동할 수 있다.

둘째는, 어떤 특정 시국을 ‘위기’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대한 시각이 군과 민 사이에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군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시각은 비전문가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군사적 현상에 대해 민이 내리는 결론과 군이 내리는 결론이 다를 수 있다. 이에 대해 군은 민을 무책임한 집단이라고 치부한다. 이는 선진국처럼 사설 연구 인력이라는 ‘통역 집단’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수도 방위군도 군사 반역 못 막아

쿠데타는 어떻게 해서 일어날 수 있는가. 이것을 알려면 군을 알아야 한다. 공군과 해군은 군 구조가 단조로워 참모총장 한 사람만 심복을 임명해 놓으면 쿠데타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육군은 군 조직이 방대하고 복잡하며 생각도 다양하다. 육군 장교들은 각자 소신과 의리에 따라 폭넓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관계 때문에 비뚤어진 직속 상관에게 도전할 용기와 소신도 갖게 되는 것이다.

더러는 하나회라는 사조직 때문에 전두환씨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름조차 없던 박정희 소장은 사조직 없이도 쿠데타를 주도하지 않았는가. 위기 의식을 공감하는 ‘애국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과 사고 방식으로 그 때를 평가하면 사람마다 다른 결론을 내리겠지만, 당시 그들은 그 때를 ‘위기’라고 느꼈을 것이며, ‘애국적 동기’에서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감행했을지 모른다.

군인들의 눈에는 광주 사태가 분명 위기였다. 장갑차 2백대가 군중의 손에 들어가고 있을 때 어느 군인이 그것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과 사조직을 동원했다는 사실 때문에 5·18을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교는 많아도 5·16을 욕하는 장교는 많지 않다.

북한 정권은 지금 남침을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처지이다. 이러한 시기에 사회가 어지러워져 많은 사람이 일손을 놓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가 경영을 팽개친 채 다음 대권에만 눈이 어두워 이전투구하고 있다. 이것을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이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할 것인가. 이러한 국민 정서가 깊어지면 의협심 있는 장교 집단이 또다시 등장할 수 있다.

지금 수도 방위군도 쿠데타군을 막을 수는 없다. 대통령은 수방사령관과 수도군단장을 심복으로 심어놓고, 기무사령관으로 하여금 감시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밑에 있는 연대장과 사단장들이 구국의 결심에 동조한다면, 지금의 사령관들도 마치 12·12 당시 진압군 사령관들처럼 ‘어어’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말 것이다.

‘반란은 심복으로부터’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대령들이 지휘하는 경비단들을 수방사령관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수방사를 해체하고, 2개 경비단을 3개 독립 대대로 축소하고, 이 3 개 대대를 대통령실이 직접 통제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상호 견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예방책은 못된다. 박대통령도 심복에게 사살되지 않았던가. 가장 확실한 예방 방법은 쿠데타를 무서워하는 것이다. 쿠데타를 무서워해야 정치인이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 사회가 혼미하면 반란이 일어나 자기들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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