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은 쿠데타로부터 안전한가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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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예방 체계 안심 못할 수준… 조직적 반란 위험 없으나 ‘오판’ 가능성 상존
12·12로부터 16년이 흐른 올해 12월 한국을 둘러싼 화두는 또다시 ‘쿠데타’이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12·12와 5·17 쿠데타 주도 세력은 역사 청산 대상이 되어 줄줄이 단죄의 무대에 올라서고 있다. 국민도 정치권도 온통 ‘성공한 쿠데타’를 단죄하는 전대미문의 실험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 정치 상황의 급작스런 전개에 놀란 외신은 군부 동향과 새로운 쿠데타 가능성으로까지 궁금증을 넓혀 가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정국과 관련해 “집권 초기에 이미 이뤄졌어야 할 역사 청산 작업이 이렇게 늦어진 것은 군을 장악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군사 쿠데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말로 들린다.

다시는 이 땅에 헌정 질서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뜻에서 과거의 쿠데타를 단죄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쿠데타 가능성은 상상해서도 안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악몽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적 당위와 희망만 가지고 ‘이제 쿠데타는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쿠데타가 두 차례나 성공했다는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건국 후 4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걸핏하면 나돌던 쿠데타설이 잠잠해진 것도 최근 2~3년뿐이다. 따라서 관심은 당연히 현재의 쿠데타 예방 체계가 견고한가 그렇지 못한가에 쏠릴 수밖에 없다.
청와대 경내 경호 병력 연대 규모

김영삼 대통령은 이어 쿠데타 예방을 염두에 두고 자기 심복들을 주요 부대 지휘관으로 교체해 나갔다. 물론 그에게 심복이란 사조직을 중심으로 했던 군 출신 대통령과는 달리 출신 지역·학교 등 지연과 학연으로 맺은 군 인사를 말한다. 이른바 PK(부산·경남) 인맥으로 불리는 군 장성이 그들로서, 현재 육해공군 핵심 지휘관들은 이들 중심으로 짜여 있다. 윤용남 육참총장, 이재관 육참차장, 김홍래 공참총장, 임재문 기무사령관, 한승의 수방사령관, 김희상 육본 인사참모부장, 이상무 해병대사령관이 대표적인 PK 인맥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김영삼 정부가 쿠데타 방어 체제를 마련한 작업은 주요 부대로부터 하나회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PK 인맥을 채워넣는 ‘인물 교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쿠데타 예방 임무 체계와 부대 기능은 과거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가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신변 보호는 청와대 경내에서부터 수도권 외곽에 이르기까지 중층 구조로 된 경호·근위·대전복 부대가 맡고 있다. 우선 청와대 경내 경비는 경호요원 외에도 경찰 특수부대인 22특경단, 101경비단과 수방사에서 파견된 2개 대대 등을 합친 연대 규모 병력이 맡고 있다. 이들은 주로 대통령 근접 경호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쿠데타 방어 기본 임무는 청와대 담벼락 바깥에 주둔한 부대에서부터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바깥은 경복궁 주둔 30경비단이 북악산 자락까지 맡고, 그 외곽 인왕산 지역에는 33경비단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 두 경비단은 수방사 직할 부대로서 대전복 훈련과 대게릴라 전술을 연마하고, 이런 목적에 따라 탱크·장갑차·대전차 미사일 등 강력한 화력을 갖추고 있다.

비상 사태가 발발하면 수방사가 대전복 작전에 나서는데, 주력은 30·33경비단 외에 헌병단과 시내 요소에 설치된 분대 단위 발칸포대들이다. 군단 규모인 수방사는 수도 서울에 실병력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근위 부대로서 수도권 방위와 쿠데타 발생시 1차 진압 임무를 맡고 있다. 만일 1단계 진압 작전으로 진압이 안될 경우, 작전이 실패하기 전에 수도권 주위에 주둔하고 있는 특전사 휘하 4개 공수여단(1,3,5,9공수여단)이 나서고, 2단계로도 어려울 때는 수도권 4개 사단 병력이 막는다.
이같은 쿠데타 방어·예방 체계는 6공화국을 거쳐 현 정부에도 그대로 이전됐다. 그런데 김대통령은 물려받은 쿠데타 예방 체계 일부에 칼을 들이댔다. 우선 지난 30년간 역대 군 출신 대통령들이 군부 인맥을 곁에 두고 통치 안정을 꾀해온 과정에서 지나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고 판단한 근위 부대 및 대전복 부대를 축소한 것이다. 기무사 기구 축소와 청와대 외곽 경복궁에 주둔한 수방사 30단 이전이 그에 해당한다. 특히 수방사 30단은 12·12 쿠데타를 모의한 장소로서 요즘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곳인데, 김대통령은 인왕산에 있는 33경비단에 30경비단을 통합시켰다.

그러나 김대통령 집권 초 기구 축소와 계급 강등으로 된서리를 맞은 기무사는 최근 다시 원상 회복됐다. 김대통령은 지난 10월 임재문 기무사령관(학군 3기)을 중장으로 진급시키고, 각급 기무부대장도 다시 장성 반열에 올렸다. 이는 김대통령이 기무사의 쿠데타 예방 기능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실감케 한다. 특히 임재문 기무사령관은 경남 의령 출신으로 군 내에서는 YS가 가장 신임하는 PK 인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현재의 쿠데타 예방 체계에는 허점이 없는가. 79년 12·12 진압군측에 섰던 장성들은 그날밤을 교훈 삼아 현재의 쿠데타 예방 체계가 결코 안심할 수준이 못된다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수경사령관이던 장태완 재향군인회장이 가장 할 말이 많다.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쿠데타 역사를 보면 대부분 대전복 부대가 전복 부대로 돌변해 반란이 일어났다. 지금 진압 역량이 튼튼하다고 안심한다면 그것은 문제다. 쿠데타 역량은 진압 역량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와대 주변에 지나치게 편중된 대전복 부대의 편재·화력·장비 따위를 정치·군사·전술적으로 재검토해 개편할 필요가 있다.”

12·12 당시 수경사 작전참모이던 박동원 장군(육사14기)은 이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인 견해를 내놓는다. “청와대 부근에 부대가 많으면 그만큼 위험하다. 나는 78년 박대통령이 30단과 33단을 강화하는 것을 보고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탱크·야포·대전차 미사일을 이 때 잔뜩 들여놨는데 서울 시내에서 이걸 어디다 쏘겠는가. 가로수·고층 빌딩·전깃줄 투성이인 서울에서는 이런 장비가 쓸모없다. 청와대 경호는 경호실 병력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현재 대전복 부대 위치를 청와대와 서울로부터 좀더 멀리 두고, 부대 지휘부도 임관 출신·학연·지연에 따라 고루 섞어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현 정부의 쿠데타 예방 조처가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나온다. 김대통령 집권 후 된서리를 맞은 하나회의 존재와 관련된 우려이다. 지난해 군 당국은 화나회 출신 장성급을 대폭 정리하면서 ‘이제 군 내에 더 이상 사조직은 없고 오직 대한민국 육군 장교단만 있을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육사 출신인 한 현역 대령은 “보직과 진급에서 특별 관리를 받아 당장 힘을 못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기수만 보아도 하나회 출신은 자기들 내부적으로 피해 의식 속에 연대 심리를 강화하며 절치부심하고 있는 분위기다”라고 전한다.

그는 더 나아가 윤필용 사건을 예로 들며, 군 당국의 ‘사조직은 없다’는 선언이 안일한 사태 인식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윤필용 사건 때 하나회는 된서리를 맞아 회원 2백명 중 10명이 군사 재판에 회부됐다. 31명은 예편했고 나머지 1백40명은 보직 변경 및 특별 관리 조처를 받았다. 당시에도 군 수사당국은 하나회 조직을 완전히 와해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절치부심하며 비밀리에 조직을 유지해온 끝에 12·12 쿠데타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소규모 병력으로 쿠데타 가능

물론 쿠데타는 군의 예방 체계가 허술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사회적 조건과 그로 인한 명분도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볼 때 현재 누군가가 쿠데타를 일으킬 만한 시기인가에 대해서는 군 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경제 규모나 국제 사회에서의 국가 위상, 성숙된 국민 의식으로 볼 때 지금 상황은 5·16 때나 80년 당시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 여부를 떠나 누군가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대해서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박동원 장군은 “흔히들 조직화한 군이 엄청난 병력·화력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으로만 아는데, 사실은 마음만 먹으면 소규모 병력으로도 간단히 일으킬 수 있다. 성공과는 별개로 상황을 오판하고 주관적 신념 아래 며칠이건 버티는 사람이 나올 경우 나라 기능은 엉망이 되고, 그로 인해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전·현직 군 장성들은 대부분 김대통령이 군부의 조직적 쿠데타 위험을 제거한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군의 특수성을 더 이해하고 통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문도 빠뜨리지 않는다(22~23쪽 상자 기사 참조). 쿠데타 가능성은 많이 제거됐지만, 안정을 되찾아야 할 군심이 오히려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현역 육군 대령은 이렇게 호소한다.

“쿠데타를 생각하는 단계의 군인은 사회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소명 의식과 신념을 따라간다. 그런 것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정치·사회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사조직을 이끌고 권력욕에 눈이 멀어 시작하는 쿠데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군이 잘못된 의협심을 가지고 오판할 수 있는 조건을 없애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93년 2월 집권하고 맨 처음 손을 쓴 일은 쿠데타 방지였다. 이에 따라 첫 번째 개혁 사정의 대상으로 군부를 택했다. 그중에서도 하나회 주요 장성과 과거 쿠데타를 일으킨 부대·기구를 주요 개혁 대상으로 삼았다. 집권 첫해에 육참총장·기무사령관·수방사령관 등 6공 하나회 출신 주요 장성들을 선별적으로 내보낸 김대통령은 지난해 봄 여세를 몰아 군에 남아 있던 하나회 중장 13명을 전격 보직 해임했다. 뿐만 아니라 병력을 지휘하는 사단장 중에서도 하나회 출신은 전원 보직 해임해 일선 부대 부지휘관이나 보조 업무 분야로 돌렸다. 이에 앞서 기무사 힘빼기에 나선 김대통령은 기무사령관을 중장에서 소장(김도윤·육사 22기)으로 낮추면서 사령부 각 처장(대공·보안·정보처 등)과 각군 사령부 파견 기무부대장들의 계급도 준장에서 대령으로 낮추었다. 아울러 김도윤 체제의 기무사에는 군내 사조직 적발을 주요 과제로 주었다. 93년 12월 김도윤 당시 기무사령관은 새 정부 출범 후 지연·학연·근무지 연고 관계로 얽힌 군내 사조직 42개를 적발해 해체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일련의 군부 사정은 쿠데타 방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특히 하나회에 내린 철퇴는 가장 의미가 컸다. 5,6공 정권 창출의 요람이자 군부 실세였던 하나회 회원들이 잠재적인 쿠데타 세력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일련의 사정에서 표적이 된 하나회 회원 중 장성 23명이 군을 떠났고 지금은 1백30여 명(육사 20~36기)이 병력 동원이 불가능한 분야에서 복무하고 있다. 이들은 진급하거나 보직 이동 때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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