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7백억 구매'가 한 사람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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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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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본부내 전문 인력 부족도 '예산 낭비' 요인
정유업체가 원가를 산정하는 근거는 산업자원부가 제시한 ‘석유제품 손실 보전 기준’이다. 이 기준은 여러 가지 요건을 나열해 개별 정유업체들이 그 가운데 몇 가지 요건을 골라 그에 맞게 원가를 산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 때문에 원가를 산정하는 업체마다 원가가 다르게 나온다. SK주식회사 김동원 직매팀장이 “백 사람이 원가를 산정하면 백 가지 원가가 나온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유류 제품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정유업체 영업팀도 원가 산정 방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유류 구매자가 전문 지식을 갖추고 정유업체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계약 조건을 유리하게 맺을 수 있다. 또 정유업체마다 담당 직원이 있어야 한다. 국방부 조달본부가 민간 항공사보다 항공유를 비싸게 구입한 것은 조달본부에 전문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조달본부는 지난해 11월 항공유 고가 구입 의혹이 불거지자 뒤늦게 정유사 별로 담당자를 배정해 원가산정팀을 운영했다. 하지만 정유회사가 제시한 복잡한 원가 산정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일회계법인에 원가 분석과 산정 방식을 마련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정유업체 직원은 “조달본부 관계자에게 수 차례 정유회사가 원가를 산정하는 방식을 보고했으나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정유회사가 업무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조달본부 안에서 군용 항공유 구입을 맡고 있는 부서는 물자부 산하 물자원가1과이다. 이 부서는 각 군에서 소비되는 의류·음식·유류를 구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국회가 책정한 예산 범위 안에서 납품 업체·도입 물량·가격을 결정한다. 부서 직원은 22명. 이 가운데 유류 구입을 담당하는 직원은 5급 군무원 김정곤씨이다.

김정곤씨가 1년 동안 유류 구입에 사용하는 예산은 2천7백25억 원이다. 군이 국내 5개 정유회사로부터 연료를 구입하는 업무를 단 한 사람이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몇 년간 조달본부가 국내 정유회사로부터 항공유를 고가로 도입하는 것을 알아내지 못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 업무를 시험을 거쳐 공개 채용하는 공무원이나 현역 군인 중에서 특채한 군무원이 맡고 있어, 애초에 전문 지식을 갖고 일을 처리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 자리는 3∼5년마다 바뀐다. 석유화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고 정유업체 생리를 이해할 만하면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인력을 운영하면 국방 예산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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