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는 럭비공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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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 지지 정당 들쭉날쭉…“차라리 30대 표 모으자”
20대의 정치 성향은 분명하게 변하고 있는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서 정치권이 품은 의문이다.

한국갤럽이 92년 3·24 총선 당시 투표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전체 응답자 6백4명 가운데 민자당 투표자는 38.7%, 민주당 투표자는 29.5%였다. 그런데 20대는 23.2%가 민자당 후보, 37.3%가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응답했다. 20대의 민주당과 민자당 지지율은 14.1%나 차이가 났다. 압도적 다수가 야당(민주당)에 표를 던진 것이다. 30대는 24.3%가 민자당, 33.7%가 민주당에 투표했다고 응답했다. 20대보다 야당 지지율이 약간 낮을 뿐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야당 성향을 보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대통령 선거 직전인 92년 12월1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전체 응답자 1천8백80명의 각 후보 지지도는 김영삼(39.5%) 김대중(31.5%) 정주영(15.7%) 박찬종(12.4%) 순이었다. 그런데 20대에서는 김대중(37.3%) 김영삼(22.2%) 정주영(20.7%) 박찬종(16.8%) 순이었다. 15.1%나 더 야당 후보인 김대중씨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당인 김영삼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정주영 후보와 비슷할 정도로 낮았다. 92년 총선과 대선 당시 20대는 야당 성향이 두드러지게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조 순 후보 흰눈썹 검게 물들여야 하나”

그런데 같은 여론조사 회사인 한국갤럽이 지난 3월22~26일 5일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정치 성향은 분명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광역 단체장 투표에서 지지할 정당을 묻는 질문에 20대는 24.6%가 민자당, 23.8%가 민주당을 지적했다. ‘관계없다’나 ‘모르겠다’는 응답이 28.5%나 되긴 하지만, 근소하게나마 민자당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을 앞섰다는 것은 큰 변화로 보지 않을 수 없다. 30대는 19.2%가 민자당, 23.2%가 민주당 지지라고 답변해 92년 정도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야당 성향을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자당도 비슷한 시기에 여론조사를 했는데, 구체적인 수치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민자당에서는 “20대 표를 모을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만을 토대로 20대의 정치 성향이 여당 선호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한국갤럽이나 민자당의 조사 결과와는 상반된 조사 결과도 많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여론조사 회사인 코리아리서치가 지난 2월 여야만을 기준으로 각 정파의 지지율을 질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20대는 47.9%가 야당을 지지했으며, 여당을 지지한 응답은 24.4%에 불과했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20대의 성향이 이처럼 모호하기 때문에 이번 지방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나 후보들은 이들의 표를 모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민자당은 20대가 근소하게나마 여당을 더 지지하고 있다는 결과를 손에 쥐고서도 이를 선거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민자당 내에는 이 조사 결과 자체를 너무 크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많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인 조 순씨 진영에서도 전체 유권자의 60%에 가까운 20대와 30대의 표를 얻기 위해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총론만 확정했을 뿐이다. 각론에 들어가서는 ‘조후보의 흰눈썹을 검게 물들여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정도만 논의하는 상황이다.

각 후보를 돕는 선거 홍보 전문 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내놓고 있는 20대 유권자 공략 전략 중에는 뾰족한 것이 없다. 컴퓨터 통신망에 후보의 방을 개설해 20대와 대화한다든가, 통신망 게시판에 후보의 공약을 내건다든가, 디스켓에 후보의 삶과 정책을 담아 20대에게 배포한다는가 하는 것이 고작이다. 홍보 전문 회사가 후보들에게 가장 많이 권하는 20대 접촉 방법은 전화를 통한 지지 호소이다. 20대는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 별로 없으며, 이들은 선거 유세장에도 잘 오지 않기 때문에 후보들은 우선 20대와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그 때문에 이들 홍보 회사는 후보의 부인이나 자녀가 직접 전화를 걸어 20대에게 지지를 호소하라고 권한다.

선거 전문 홍보 회사인 A&T사의 이승민 과장은 “20대 유권자가 가장 많다고는 하나 이들을 목표로 득표 전략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우선 투표율이 낮을 것이고 탈 정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면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당장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 후보 모두 20대의 표보다는 야당 성향이 강한 30대의 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베드 타운 성격이 강한 서울 근교의 신도시에서는 30대의 인구 비율이 40~45%에 이르는 것으로 홍보 회사들은 집계하고 있기도 하다.

유권자의 30%에 이르는 20대. 후보자의 처지에서는 이들이 먹음직스러운 떡이기는 하지만 쉽게 손을 뻗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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