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에도 ‘무기의 그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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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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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보도 ‘밀가루 북송’도 ‘답례’일 가능성
이회창 총재의 비선 조직이 대선 직전 북한측에 총격을 요청한 이른바 총풍 사건을 계기로 96년 4·11 총선 직전에 벌어진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 시위 사건과 96년 11월에 〈시사저널〉이 보도한 ‘청와대 밀가루 북송’ 사건의 연관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청와대가 주도한 대북 밀가루 비밀 지원이 4·11 총선 전 판문점 무력 시위에 대한 대가가 아니였느냐는 의혹이다.

〈시사저널〉(96년 11월28일자)은 ‘청와대, 북한에 밀가루 5천t 제공’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하려 했다가 당시 청와대·안기부의 완강한 부인과 기사 삭제 요청으로 이를 보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시사저널〉(97년 3월6일자)은 그로부터 넉 달 만인 97년 3월 이 기사를 ‘복원’해 보도했다. 복원된 기사는 ‘미수’에 그친 기사의 골격과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청와대 비서실이 주도하고 현대그룹이 비용을 댄 밀가루 북송 사업의 목적을 ‘2002년 월드컵 공동 유치를 위한 것’으로 한정했었다.

이같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 밀가루 북송 사업의 주체를 현대그룹에 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가루 북송 사업은 당시 여권이 주도한 4·11 총선 전 판문점 무력 시위 거래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은 당시 ‘현대말고 다른 대기업도 대북 지원’이라는 기사에서 ‘현대그룹과 ㄱ그룹, ㅈ그룹, 또 다른 ㅎ그룹 등 4개 대기업이 대북 물자 지원에 자금을 댔다’라고 밝혀 청와대의 대북 커넥션 의혹의 한 자락을 내비쳤다. 이 중 ㅈ그룹이 바로 총풍 사건에 연루된 진로그룹이다.

이같은 대기업들의 대북 물자 지원이 4·11 총선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은 〈시사저널〉 취재진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물밑에서 진행된 구 여권의 대북 접촉 사실과 구 안기부의 북풍 공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심증으로 굳어졌다. 이같은 심증은 지난 3월 안기부의 대북 비밀 공작 관련 보고서를 취합한 이른바 이대성 파일이 공개됨을 계기로 확증으로 굳어졌다. 물론 구 안기부 수뇌부는 이같은 거래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안기부 일부 간부는 4·11 총선 전 무력 시위 거래에 직접 개입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난 3월 이대성 파일 공개를 계기로 안기부와 검찰은 4·11 총선 전 북풍 사건을 포함한 지난 정권의 북풍 공작 의혹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했었다. 그러나 지난 4월 검찰 수뇌부는 ‘4·11 총선 건은 이번 (대선 전) 북풍 공작 사건의 본질과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해 수사 범위에 포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4·11 총선 건을 수사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검찰로서는 감당치 못할 정치적 파문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5월22일 발표한 검찰의 북풍 사건 수사 결과에서도 4·11 총선 전 ‘거래’ 의혹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총풍 사건을 계기로 검찰은 4·11 총선 건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대선 전 총풍 유인 사건은 4·11 총선 전의 무력 시위 사건의 연장선 상에 있기 때문이다. 즉 두 사건은 구 여권의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줄기를 캐면서 뿌리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현재 4·11 총선 전 거래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기업은 진로그룹과 ㄷ·ㅅ·ㅎ그룹이다. 이중 대북 물자 지원을 가장 많이 한 그룹은 ㅅ그룹인데, 설탕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들 그룹 관계자를 조사해 4·11 총선 전 판문점 무력 시위를 대가로 하여 대북 지원 공작을 주도한 ‘이적 행위’ 가담자들을 색출한다는 방침이다. 당시 청와대 고위층 인사 2명과 신한국당 중진 의원 2명, 그리고 안기부 간부 3명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를 받았다면, 전 정권의 최고위층까지도 ‘이적 행위’를 한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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