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윤리 없는 복제는 '재앙'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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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윤리·소비자 주권 침해 등 위험성 심각…조화 이룬 발전 길 찾아야
미국의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츠가 한 말 중에 ‘메가 트렌드(mega trend)’가 있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21세기로 넘어가며 인류는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국민 경제 시대에서 국경 없는 세계 경제 시대로, 중앙 집권화한 권력에서 지방 분권화한 권력 구조로 대이동하는 메가 트렌드의 물결 속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메가 트렌드 중 하나가 생명공학의 발전이다. 80년대 한국에서 생명공학은 미래의 식량난과 의료 난제를 해결할 분야로 각광받았으나, 경희대 팀이 인간 복제 성공을 발표하고 유전자 변형 콩을 수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돌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의료 윤리와 소비자 주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림’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탄력을 얻은 ‘창조에 대한 욕구’는 막을 수 없는 메가 트렌드이다. 그러나 창조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못생긴 천재 아인슈타인과 머리 나쁜 미녀 마릴린 먼로를 혼인시켜, 머리 좋고 잘생긴 자녀를 얻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돌 머리에 인물도 못난 자녀를 낳을 확률도 50%이다. 이러한 후과(後果) 때문에 ‘윤리’의 관점에서 창조를 제한해야 한다는 또 다른 흐름이 등장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사회가 생명공학이라는 메가 트렌드 속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규제할 것은 규제하는 실사 구시(實事求是)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정반합의 지혜가 필요하다”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 제출한 이상희 의원(한나라당)은 이를 변증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리 좋고 잘 생긴 자녀를 얻을 수 있다는 신기술이 발명되면, 사회는 이를 정(正)으로 반기게 된다. 그러나 곧 머리 나쁘고 못 생긴 자녀를 낳을 수도 있다는 ‘충격’이 고려되어 반(反)의 논리가 힘을 얻는다. 우둔한 민족은 반의 단계에서 멈추는데, 세계 열강이 뜀박질을 시작하던 19세기 후반 쇄국 정책을 펼친 조선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명한 민족은 정과 반을 결합시켜, ‘합(合)’을 탄생시킨다.”
자민련 이완구 의원이 밝혀낸 유전자 변형 콩 수입 사건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콩은 한반도와 만주가 원산지이다. 그런데도 품종 개발을 등한히 해 한국의 콩 자급률은 8.6%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콩 농사에서 세계를 제패한 미국은 제초제를 덜 쓰고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유전자 변형 콩’까지 개발했다. 이러한 콩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유전자 변형 콩은 미국내 콩 유통량의 40%에 이를 만큼 급속히 보급되었다. 몇 해 전 유럽 농민들은 ‘먼 훗날 인간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미국산 유전자 변형 콩 수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위 이면에는 미국산 유전자 변형 콩을 수입하면 유럽의 콩 농사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무해한 농산물의 자유 무역을 막을 수 없다는 대세와 유럽의 콩 농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탄생한 것이, 유전자 변형 사실을 표시하는 ‘레이블링(labeling)’ 제도였다. 레이블링 제도가 채택되면 미국 농민들은 유전자 변형 콩을 수확 단계에서부터 ‘따로’ 포장해야 하므로, 값이 약간 올라 유럽의 콩 농가들은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유럽 농민들은 이를 소비자들에게 판단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소비자 주권’이라는 말로 멋지게 포장했다.

이러한 싸움 덕분에 한국은 지난해 농수산물품질관리법을 개정해 레이블링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된장·간장·식용유·두부 제조 업체가 미국산 콩을 원료로 사용하는 한, 이 ‘합’은 무용지물이 된다. 레이블링 제도를 통해 미국산 콩 수입을 견제하고 ‘우리 콩 살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성공시켜야, 비로소 한국화한 ‘소비자 주권’을 정착시키게 된다. 여기에 유전자 변형 농수산물의 안전성 평가 능력과 미국 것보다 더 좋은 한국산 유전자 변형 농수산물을 완성시켜야 한국산 ‘합’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인간 복제는 유전자 변형 농수산물보다 더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남자 쪽에 문제가 있는 불임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런 부부는 입양을 하지 않는 한 ‘정자 은행’에서 다른 남자의 정자를 가져 와 부인의 난자와 결합시켜야만 아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남편의 자식이 아니라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핵을 제거한 부인의 난자에 남편 체세포의 핵을 이식해 탄생한 아이는 확실한 남편의 아이이다. 그러나 현행 가족법 상으로는 복제로 태어난 이 아이를, 아버지의 아들로도, 형제로도, 아버지와 동일인으로도 정의할 수가 없다.

중세 유럽 사회는 정신과 몸이 하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때 유럽의 의술은 보잘것없었다. 그러다 17세기 데카르트가 ‘정신은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물심(物心) 이원론을 발표하자 비로소 의학자들이 신체에 부담 없이 ‘칼’을 댈 수 있었다. 신체를 해부하고 수술하는 것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식이 퍼지면서, 서양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인간 복제는 윤리와 철학이 먼저 세워져야 발전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윤리와 철학은 의학에 우선하는 메가 트렌드이다. 인간 복제는 왜 철학과 윤리학이 모든 학문의 으뜸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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