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진 20대들의 `재테크 라이프`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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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공짜 상품·할인 서비스 철저히 활용…미래 준비하고 계획적으로 지출
부모에게 의존한 채 미래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충동 구매나 일삼는 소비 지향적 족속, 돈독이 올라서 고수익을 낼 수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골치 아픈 집단.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사회 문제가 되고 젊은층의 소비 문화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면서 20대가 뒤집어쓴 사회적 누명이다.

그러나 취재 중에 만난 많은 20대가 이런 편견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고, 그렇게 번 돈의 일부는 비자금 통장에 꼬박꼬박 적립했다. 물론 적은 시간을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선호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쇼핑센터나 백화점의 판매원, 아이스크림 가게나 식당에서 서빙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보미씨(21·성신여대 중문과)는 “대학 입학 후부터는 부모님께 용돈을 전혀 받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금은 지난해 식당 종업원 하며 벌어놓았던 돈으로 먹고 산다. 돈이 바닥 나기 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을 것이다. 부모님께 손 벌릴 생각은 전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결혼 2년차 주부이자 직장인인 박별샘씨(28)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부자가 되기 위한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수많은 20대의 전형이다. 돈에 대한 박씨의 생각은 한마디로 압축된다. ‘쓸 때는 꼭 쓰되, 포인트와 쿠폰을 최대한 활용한다.’ 돈 모으는 것 못지 않게 현재의 삶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저, 공짜 무지 좋아해요. 요즘 같은 세상에는 공짜만 잘 찾아 먹어도 돈 많이 모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박씨는 은행·극장·슈퍼마켓·주유소·식당 등을 이용할 때 할인 서비스가 되지 않는 곳은 아예 가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도 할인 쿠폰이 붙어 있는 것만 고른다. 박씨의 웬만한 살림살이는 공짜로 얻은 것들이다. 선풍기·오디오·조리세트·화장품 등 박씨가 공짜로 받은 물건을 한자리에 모았더니 식탁이 차고 넘쳤다.

수입의 50%는 무조건 저축하고, 재테크에도 관심이 많아서 하루에 두 시간씩은 꼬박꼬박 인터넷과 신문을 보며 경제 공부를 한다. 부동산 업종에서 일하다 보니 정보가 많은 편인데도, 한탕주의식 재테크는 오히려 화를 부른다는 생각에 주식이나 부동산에는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절약과 적금, 보험이 박씨의 재테크 수단이다. 박씨의 꿈은 10년 안에 테니스 코트가 있는 집을 짓는 것. 유난스런 짠순이로 살지 않아도, 투기식 재테크로 한탕 노리지 않아도 지금처럼만 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박씨는 생각한다. 티모시 올센이라는 열세 살짜리 미국 꼬마는 <젊은 부자 되기 프로젝트>라는 책에서 ‘20대에 재테크를 시작하면 큰 부자 되기는 글렀다’고 말했지만, 박씨는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준비하면 풍족하게 살 만한 부는 축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 20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시사저널> 설문 조사를 보면 적어도 20대의 절반 이상은 김보미씨나 박별샘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아래 표 참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절반 이상(55.3%)은 현재를 즐기기보다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저축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소비는 항상 내 월급이나 용돈 범위 내에서 계획적으로 지출(63.3%)하고, 당장 갚는 것이 문제가 되더라도 쓰고 싶을 때는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72.5%). 20대가 충동 구매에 약하다는 것이 사회적 편견이지만, 같은 것을 갖고 있더라도 항상 새것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10명 가운데 3명 정도였다(31.6%).

일하지 않고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그렇지 않은 젊은이보다 훨씬 많았고(72.3%), 대출을 받아서 고수익이 나는 방면으로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인 자산 운용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지 않았다(26.2%). 그리고 2명 중 1명(49.7%)은 5년 후 혹은 30대가 되었을 때를 대비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저축률보다는 소비율이 높고, 남을 위해 돈을 쓰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을 선호했다. 대학생 10명 중 8명은 60만원 미만의 용돈을 받거나 벌고 직장인은 90만원 이상의 월 소득을 얻는데, 저축액은 30.9%에 불과했다. 또 예기치 않은 100만원이 생기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낸다고 답한 이는 0.6%에 불과했다. 서울 YMCA 신용사회운동사무국 서영경 팀장은 “선진국의 20대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적어도 10% 이상은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나왔을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젊은이들은 사회 기부보다는 자기를 위해 돈을 쓰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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