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들추는 7년 만의 '稅風'
  • 특별취재반 ()
  • 승인 200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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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세무조사, 영업 일반·사주 탈세 동시 조준…
결과 공개 여부 주목


9시 출근, 5시 칼 퇴근,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은 반드시 쉰다. 지난 2월8일부터 23개 언론사에 파견된 국세청 산하 서울지방청 조사 1국 직원 4백6명은 세무 조사를 위해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지 않는다. 강제로 조사하는 세무 감찰이 아닌 법인세 조사이므로 세무 조사 대상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국세청은 부담감을 안 주겠다고 하지만 언론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겉으로는 국민 여론을 좇아 ‘언론사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내심은 그렇지 않다. 언론계는 ‘경제 안기부’라고 불리는 국세청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다. 또 오랫동안 세무 조사의 치외법권이던 언론사는 켕기는 부분이 많다. 이미 극도로 부실한 몇몇 신문사가 세무 조사로 무너질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언론계는 특히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대한 세무 조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족벌 언론인 조·중·동은 매출이 신문사 가운데 가장 많은 데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비판해 세무 조사의 1차 타깃이 되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조선> <동아>가 주 타깃 될 것"


그런데 이들 3사가 처한 처지는 약간씩 다르다. 정가에서는 이미 세무 조사를 받은 <중앙일보>를 제외한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타깃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이미 <중앙일보>는 정부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얼마 전 민주당 고위 관계자가 친분이 있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중·동과 다 싸울 수는 없고 하나와는 같이 가고 싶은데 그게 중앙이다’라고 말했다가 이를 주워 담느라고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중앙일보>와 달리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고민이 많다. 사주에 대한 조사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한 대 더 맞을 수 있는데, 이 한 대가 바로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는 깨끗하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마음먹고 칼을 뽑아든 국세청 조사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일보> <국민일보> SBS도 마찬가지다.

이런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지난 2월5일 안정남 국세청장은 국회 재경위에서 법인세뿐만 아니라 사주와 대주주의 주식 변동 상황을 조사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한마디로 국세청이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사주와 친인척 사이에 부당 상속과 변칙 증여가 있었는지를 샅샅이 밝힐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족벌 언론사들은 대부분 이미 2~3세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상태다(18~19쪽 상자 기사 참조). 이와 관련해 2월9일 YS는 일본에서 “1994년 세무 조사 결과 언론사 사주측의 재산, 사생활 비리 등 도덕적 문제를 포함한 많은 문제를 포착해 도저히 발표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해 세무 조사가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던 일부 신문과 한나라당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1999년 9월에 실시했던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일가에 대한 세무 조사 결과는 ‘털면 나온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한다’ ‘안한다’ 말이 많았던 보광그룹 세무 조사 결과 홍사장은 6백85억원을 탈루한 혐의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홍사장의 혐의는 탈세에서부터 금융실명제법 위반, 변칙 증여, 리베이트 유용 등 다양했다. 특히 국세청은 홍사장의 탈루 내역을 이례적으로 상세하게 발표했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지난번 세무 조사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결국 영업 일반과 사주 친인척의 탈세를 함께 뒤질 것이다. 그리고 양쪽 뺨을 동시에 때리고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무 조사 전에 국세청은 일단 법인의 납세 실적과 현황을 정밀 분석하고, 중점 조사할 사항을 사전에 결정한다. 국세청은 국세통합전산망(TIS)을 갖추고 있어 기업의 납세 성실도를 속속들이 감지하고 있다. 따라서 국세청이 사전에 작전을 세우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세무 조사는 1994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인원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1994년에는 80여명이 동원되었지만 올해 세무 조사에는 무려 4백명이 투입되었다. 국세청 역사상 단일 업종에 가장 많은 인력을 투입한 것이다. SBS에 가장 많은 인력(51명)이 투입되었고, 다음이 <조선일보>(50명) <동아일보>(35명) <중앙일보>(32명) 문화방송(29명) 한국방송공사(28명) 순이다. 투입 인원은 자회사 수에 비례한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국세청은 비자금이나 리베이트 조사에도 적극적이다. 국세청은 신문 제조 원가의 25~30%를 차지하고 있는 제지업체인 한솔제지·팬아시아페이퍼·대한제지·보워터한라·세풍 등에 대한 세무 조사도 실시했다. 신문사는 제지업계와 1년 단위로 용지 공급 계약을 맺는데, 여기에 리베이트가 오간다는 것이 통설이다. 1994년 세무 조사에서도 관련 사실 일부가 확인되었고, 1998년 내부자 제보로 국세청이 일부 신문사의 관련 자료를 확보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국세청은 윤전기나 방송 장비 등 전적으로 외국에서 수입하는 덩지 큰 기자재를 도입할 때에도 리베이트가 오갔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결국 이번 조사는 사주와 관련된 한쪽 뺨만큼은 확실하게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법인 카드 사용 내역까지 조사


또 일부 언론사의 경우 부장급 이상의 계좌 추적과 법인 카드 사용 내역까지 조사하고 있어 해당 회사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계좌 추적과 법인 카드 조사는 일상적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당하는 처지에서 상당히 불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세청이 언론사 간부들의 취재원을 캐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언론사 영업 부문도 주된 타깃이다. 언론사 영업은 크게 판매와 광고로 나뉜다. 국세청은 판매 부문을 공정거래위와 함께 뒤진다(20쪽 딸린 기사 참조). 일반인들은 언론 개혁 하면 이 부분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여서 정부가 국세청-공정위의 투톱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공정위는 앞으로 50일간 이들 언론사를 상대로 IMF 전후 갈라져 나온 계열사에 대한 부당 내부거래와 1996년 이후 5년간 무가지 배포·경품 제공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집중 조사한다.

광고 영업 내역은 판매와 달리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므로 비교적 투명하다는 것이 언론사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광고 리베이트를 챙기고 허위 영수증을 발급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수 있다. 특히 세무 조사를 받지 않는 출판사 광고가 이런 데 악용되어 왔다고 알려진다. 또 광고지국과 본사와의 거래나 대기업과 협찬 광고 처리에서 탈세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세청은 언론사의 치부인 적자 경영 문제도 이번 세무 조사에서 확실히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매년 적자가 누적되어온 <한국일보> <국민일보>가 그 많은 적자를 견딘 비결도 함께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들은 적자 경영을 만회하기 위해 사채를 포함한 차입금이나 외부 지원금에 의존해 왔는데, 과연 이런 것들을 회계 장부에 제대로 기장했는지가 관심 사항이다. 이들뿐 아니라 자본 잠식을 경험했거나 부채 비율이 높은 신문사도 국세청의 칼날을 맞을까 가슴 졸이고 있다. 국세청이 시장 법칙을 비웃는 '언론 불사' 비법을 공개해 신문사 이미지에 타격을 줄까봐서이다.

이처럼 그동안 성역으로 존재하던 언론사의 주먹구구식 경영과 세습 경영의 폐단이 이번 언론사 세무 조사로 폭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무 조사는 언론사의 관행적 탈법 행위에 제동을 걸고 언론의 시장 기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청와대의 의중이 중요하다. 국세청이 세무 조사 내용을 언제 어떤 식으로 밝힐 것이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학계는 이번 세무 조사가 수십 년 간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해온 언론을 법과 시장의 질서 안으로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애초 청와대도 이번 세무 조사를 통해 언론사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국회 언론발전위원회 설립이나 정기간행물법 개정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민단체, 결과 발표 정략에 이용할까 우려


조·중·동 관계자들은 이번 언론사 세무 조사가 국민 여론이 아니라 정권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입각해 시작된 것이므로 현정부가 공개 시기와 발표 내용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우려를 씻어줄 수 있도록 정부가 세무 조사 결과 가운데 회사 기밀이 아닌 상당 부분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중·동 편을 들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한나라당도 언론사 세무 조사 결과는 밝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81조 8항을 들어 고발되지 않는 한 결과를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개인 사주 비리보다는 광고나 판매에서 언론사 공통으로 저지르고 있는 비리를 공개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세무 조사의 공익성을 획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와 여야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언론사 세무 조사 결과 공개와 정간법 개정 등을 함께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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