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유전자 대재앙'
  • 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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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조작 식품 등 새로운 '오염' 양산…
유전자 패권주의, 이미 막 올려


자동차가 그랬고 컴퓨터가 그랬다. 새로운 상품이 등장할 때, 그 상품이 안고 있는 단점을 알려주는 '정보'는 왜 함께 나오지 않는 것일까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그는 바보 취급을 당할 것이다. 거의 모든 소비자는 신상품(더 정확하게는 세련된 광고 전략) 앞에서 환호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신상품은 시간의 저항을 견디지 못한다. 모든 상품은 신상품의 연속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소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 유전자 지도와 유전자 치료는 신상품 이전, 그러니까 '컨셉트 카'나 개인용 컴퓨터의 미래상쯤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명공학 시대의 반인간성을 비판하는 환경운동가들은, 포스트 게놈 시대를 대비하는 선진국 정부나 거대 생명공학 기업, 그리고 그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의 보도 자료를 광고 카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포스트 게놈 시대를 이끌어 가는 국가·기업·과학자 들은 인간 유전자 연구가 인류의 유토피아를 앞당기는 쾌거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유전자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명공학 시대가 인류를 디스토피아로 밀어넣는, '돈으로 가는 엔진' 혹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라고 비판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몇 살까지 살고, 질병은 언제 발생하게 될지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처럼 난감한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유전자 연구가 드리우는 그늘은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전자 치료는 미래이지만, 유전자 조작 식품은 지금·여기의 문제인 것이다. 생명공학 비판론은 벌써부터 생명공학 연구가 진전하는 데 따른 '유전자 오염(교란)'이 인류의 마지막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간의 오염은 중금속이나 방사능에 의한 오염이었다. 이 오염 역시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 오염은 국지적이고,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즉 돌연변이에 따른 유전자 오염은 지역을 불문하고 시간의 공격도 무력화한다. 스스로 복제하고, 먹이사슬을 통해 전파된다. 이같은 생태계 전반의 유전자 오염 문제에 견주면, 포스트 게놈 시대가 드리우게 될 그늘에 대한 '내부의 공식적 우려'는 오히려 시야가 좁아 보인다.

포스트 게놈 디스토피아에 대한 '내부의 공식적인 우려'는 게놈 연구와 관련된 윤리적·법적·사회적 이슈(ELSI)를 사전에 논의해, 역기능을 차단하자는 또 다른 연구로 나타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인간적인' 연구는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국가와 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들었듯이, 인간이 자기 수명이나 질병 발생 시기를 미리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만일 유전자 판독 결과가 불치병으로 나타난다면 언제 어떻게 당사자에게 알려야 하는가, 개인의 유전 정보는 누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개인의 유전 정보는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 만일 개인의 유전 정보를 제한적으로나마 제공해야 할 때 그 결정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따위 문제들이다. 중차대한 문제들이지만, 모두 포스트 게놈 시대를 전제로 한, 인간의 논의들이다.


유전자 정보 둘러싼 인종·계급 갈등 불가피


이 가운데에는 이미 발생하고 있는 이슈들도 있다. 유전자 차별이다. 2년 전 미국의 한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 희망자가 유전적으로 간암에 걸릴 확률이 많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유전자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취업은 물론 결혼이나 계약 등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유전자로 인해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특허권 선점을 둘러싼 유전자 패권주의도 이미 막이 올라 있다. '인간 유전자를 사유화해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공격적 질문이 나오고 있지만, 생명공학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와 거대 기업 들은 벌써부터 경쟁적으로 국제 특허권을 따내려 혈안이다. 인간 게놈이라는 신대륙에는 현재 미국 국기가 가장 많이 꽂혀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미국 생명공학 기업인 인사이트 지노믹스 사는 게놈 관련 특허를 5백13개나 따냈으며, 출원한 것만 해도 5만여 건이다. 대학과 공공기관의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은 2백19개, 미국 보건부는 1백83개의 특허권을 따냈다.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지금까지의 식민지는 제3 세계 영토였지만, 앞으로의 식민지는 인간과 각종 생물의 유전 정보에 세워질 것이라며, 선진국의 유전자 패권주의는 생명에 대한 해적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전자 정보는 새로운 인종·계급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게놈 연구는 본질적으로 경제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유전자 치료는 구매력이 큰 지역이나 계층을 대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유한 백인종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인들에게는 전립선 암 발생률이 높고 한국인들에게는 위암이 많은데, 생명공학 연구를 주도하는 미국 회사들이 어떤 치료제를 먼저 개발할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

이밖에도 예상되는 부작용은 얼마든지 있다. 높은 지능과 수려한 외모, 강인한 체력을 한몸에 가진 '슈퍼 베이비'(맞춤 아기)가 가능해진다면, 인종주의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인종 사이에서도 경제력에 의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선진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생명공학 연구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쿠데타'라고 질타했다.

빛이 강하면 그 빛이 만들어내는 그늘도 선명한 법이다. 인간 게놈 지도 완성과 포스트 게놈 시대를 선언하는 생명공학 예찬론이 연일 질병의 원인을 퇴치하는 퇴마사를 자처하고 있지만, 거기에 깃든 경제 논리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환경운동가들에 따르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전세계 농민을 몇몇 거대 생명공학 기업에 종속시킨다고 지적한다. 또한 유전자를 조작한, 다시 말해 돌연변이를 상품화한 식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유전자 폭탄'이라는 경코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최근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광우병 공포증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유전자 조작에 따른 생태계 파괴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또 그것을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환자들에게 국한할 때, 유전자 치료는 구세주일 수 있다. 오래 살고 싶은 사람에게 포스트 게놈 시대는 유토피아일 수 있다. 그러나 암세포를 치료하고 노화 유전자를 제거해 1백50세 생일을 넘겼는데, 막상 먹고 마실 것이 없고 들이마실 공기가 없다면 그것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생명공학 시대의 위험성을 파헤친 <파우스트의 선택 designtimesp=30077>을 지은 박병상 박사(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 사무국장)는 이렇게 강조한다. "생명공학은 대안일 수없다. 대안은 생태 사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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