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거창고 반만 닮아도…
  • 경남 산청·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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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학교는 어떤 학교일까? 부모 처지에서는 공부를 잘 가르쳐서 명문 대학에 많이 보내는 학교가 좋은 학교이다. 학생 처지에서는 재미있고 학생을 존중해 주는 학교가 좋은 학교이다. 교사 처지에서는 교권이 보장되고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이다. 학부모·학생·교사, 교육 3주체가 바라는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사회가 원하는 바람직한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경상남도 거창군의 거창고등학교는 그런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학교로 인정받는 곳이다.




학부모들에게 거창고등학교는 인기가 좋다. 대학 진학률이 전국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4년제 대학에 못 가는 학생은 거의 없다. 졸업생의 3분의 1 정도는 서울대·고대·연대 등 세칭 명문 대학에 진학한다. 교사들의 실력이 뛰어나고 수업 내용이 충실해서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할 필요가 없는 것도 매력적이다.


눈이 오면 산으로 토끼몰이를 나가는 거창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도 즐거운 학교이다. 3일 동안 수업을 전폐하고 진행되는 4월의 종합예술제를 시작으로 6월의 야영, 9월의 가을예술제, 12월의 바자회까지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천상반점이라고 반 이름을 정한 1학년 4반은 철학산슬·독어스핀·물리완스·생물풍기·삼선체육 등으로 시간표를 적는 등 교실을 중국음식점처럼 꾸며놓고 있다. 4·19의거와 학생의 날 행사를 직접 주관하는 학생들은 어느 정도 자율권을 부여받고 있다.


교권을 보장하기 위해 실내가 보이지 않도록 창문을 설치해 놓은 거창고등학교는 교사들에게도 다닐 만한 직장이다. 교사가 자기 개발을 하도록 지원하는 학교측의 배려로 전체 교사 28명 중 12명이 석사 과정을 마쳤다. 역사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신용균 교사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기도 하다. 교사들의 연구 의욕을 부추기기 위해 학교측은 연구 과제를 제출하는 교사에게 지원금을 주고 있다.


거창고등학교 강당에는 전영창 전 교장이 작성한 '직업 선택의 십계' 액자가 걸려 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등이 그 내용이다. 이처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는 거창고등학교의 학생 수는 그러나 5백 명밖에 안된다. 선택받은 극소수 학생들에게만 이런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거창고등학교 도재원 교장은 "학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만 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들의 천국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학생들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인간적인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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