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대망론, 어림도 없다"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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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폴앤폴 공동, 유권자 여론조사/
'대선 출마 안 된다' 76%, '출마해도 안 찍는다' 75%


자민련에서는 연일 JP 대망론이 흘러나오고, JP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하지만 민심은 더 이상 JP의 줄타기 정치를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시사저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JP에게 '아름다운 은퇴'를 권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공개한다.


경륜과 의지를 지닌 큰 보물' '이 시대의 영웅'…. 요즘 자민련 인사들 사이에서는 연일 JP 대망론이 흘러나온다.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JP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대안부재론이 민심 한가운데서 크게 요동 칠 것이다"라고 불을 댕겼다. 김현욱 지도위원·한영수 부총재·이원범 당무위원도 JP대망론과 대안부재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5월18일에는 민주당과 공조를 청산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불거졌다. 자민련 서울시 지구당위원장 30여명은 "특정 정당의 전횡에 끌려 다니는 현재의 기형적인 양당 공조는 국민의 이름으로 청산되어야 한다"라면서, 내년 지방 선거와 대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도부에서부터 중·하위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JP대망론을 합창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한 JP의 반응도 야릇하다. 그는 5·16 민족상 시상식에서 다음 대선에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고 말했다. 킹메이커 구실을 하겠다고 공언했던 종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에 앞서 그는 내각제 카드도 다시 꺼내 들었다. 5월14일 중앙위 운영위원 연수에서 정치 권력 구조를 내각제로 바꾸는 것이 자민련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 것이다. JP가 공개석상에서 내각제 추진에 관해 언급한 것은 지난해 4·13 총선 이후 처음이다.


"출마해도 당선 가능성 낮다" 75%


자민련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국민적 열망'을 검증하기 위해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폴앤폴'과 공동으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JP대망론은 국민 여론에 기반을 두지 않은 망상임이 드러났다(24쪽 표 참조). JP가 다음 대선에 직접 후보로 출마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76.4%가 반대했으며, 출마하더라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74.9%나 되었다. 또 응답자의 75.1%는 JP가 당선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요컨대 JP는 다음 대선에 출마해서도 안 되고, 출마했자 찍지도 않을 것이며, 따라서 당선될 리 만무하다는 '3불가론'이 밑바닥 민심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JP대망론을 JP의 활동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 전술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JP의 '쇼당' 정치가 또다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몸집을 최대한 불렸다가 비싼 값에 팔아먹겠다는 심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민련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의 '공조 청산' 발언 역시 JP의 협상력을 높여주고 자신들에게도 뭔가 떡고물이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양수겸장식 발언이라고 풀이했다.


국민들의 판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JP대망론이 나오는 배경으로 '차기 대선에서 JP의 입지 강화 차원'을 첫째 이유로 꼽았다(33.2%). 응답자들은 또 차기 대선에서 JP가 어떤 행보를 취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통령 후보로 직접 출마하기보다 킹 메이커 역할을 하리라고 더 많이 응답했다(24% 대 55.2 %).


큰 선거를 앞두고 JP의 어깃장 행보가 다시 발동하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불만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사실 DJ 정권 지지도가 이렇게 추락한 데는 JP의 공(?)이 크다. 국회 파행·개혁 부진·나눠먹기 인사 등 민심 이반을 가져온 실정의 뒤켠에 늘 JP가 있었기 때문이다.


DJP 공조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무리한 국회 운영이 속출했다. DJ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JP 총리 인준 문제로 6개월 가까이 고생했다. 재투표라는 파행을 겪어 겨우 원 구성은 했지만 이는 국회 파행의 서곡에 불과했다.


2000년 7월 자민련을 원내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운영위에서의 국회법 날치기 처리는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당시 민주당 수석부총무로서 날치기에 앞장섰다가 이미지를 구긴 천정배 의원은 '후회 막급'이라며 가슴을 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민련의 몽니에 시달리다 못한 민주당은 결국 '의원 꿔주기'를 단행했고, 이는 꼼수 정치의 백미로 비난받았다.


지난 4월30일 이한동 총리 해임안 처리 과정에서 자행된 변칙 투표 역시 자민련의 내부 사정 탓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자유 투표를 결정했다. 경찰의 대우 노동자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요구가 억지인 만큼, 자유 투표를 해도 이탈표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자민련이 '공조 파기'를 협박하면서까지 민주당에 투표 불참을 요구했다. 이는 차기 총리를 노린 자민련 내부의 이탈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민련 탓에 민주당은 또다시 의회농락죄를 뒤집어썼다.


또한 JP와 공조하기 위해 민주당은 개혁 후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당장 각종 개혁법이 JP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DJ가 평생 숙원으로 여겨온 국가보안법은 아직 법안조차 제출하지 못했고, 사립학교법 역시 비슷한 처지이다. 재계가 반대한 모성보호법은 '반쪽' 개혁법으로 전락했다.


과반수가 "JP 때문에 국정 운영 차질"




정가에서는 DJ 정권 들어 정치권 사정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이유를 자민련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사정 당국의 내사 결과 구 여권 출신인 자민련 인사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있어 선뜻 칼을 빼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예로 검찰은 1998년 말 공천헌금 수수 의혹을 받은 이원범 의원(대전 서 갑)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가 '내각제 주장의 힘을 빼려는 표적 수사'라는 반발에 직면해 그냥 덮었다.


이런 어영부영식 개혁으로 서민이나 노동자·지식인 등 개혁 지지자들이 DJ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 정체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회 파행·개혁 부진과 함께 JP는 DJ 정권으로부터 민심이 떠나도록 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우선 정가에서는 DJ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은 '옷 로비 사건'이 확산된 배경에 JP가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장집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과 〈조선일보〉가 사상 논쟁을 벌이고 있던 1998년, JP는 '분홍빛 사람들이 문제'라며 〈조선일보〉를 거들었다. 이 때부터 〈조선일보〉와 JP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JP는 1999년 5·24 개각 내용을 이 신문에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당시 공보수석에서 문화부장관으로 옮긴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을 정보 제공자로 오인한 〈한겨레〉 신문이 이미 1월에 끝난 옷 로비 사건을 다시 물고늘어지면서 논란이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DJ 정권에 치명타를 입힌 것은 DJP '나눠먹기 인사'와 그에 따른 정책 실패다(26쪽 딸린 기사 참조). 특히 자민련 출신 장관이 줄줄이 들어선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약 분업·기초생활보장제 등 DJ 정권의 실정을 집중 양산했다.


국민들은 이런 JP의 해악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DJP 공조가 국정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답변(53%)이 긍정적이라는 답변(19.9%)보다 두 배가 넘었다.


DJ에게 상처 주고 챙길 것은 다 챙긴 JP


JP는 이렇듯 DJ 정권에 상처를 주면서도 챙길 것은 다 챙겼다. 장관 자리는 물론이고 정부투자기관 등 정부 산하 단체에 '자민련 몫'이라는 이름으로 JP의 사람 심기가 계속되었다. 공직뿐 아니라 선거직에서도 자민련 몫은 어김없었다. 4·26 재·보선 당시 논산시장 공천을 놓고 JP가 보인 몽니가 대표적이다.


돈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4·13 총선에서 참패한 후 자민련은 극심한 돈 가뭄에 시달렸다. 하지만 의원 꿔주기로 원내 교섭단체가 되면서 자민련은 한 해에 국고보조금 30여억원을 더 받게 되었다. DJP 공조 복원 직후 열린 자민련 후원회에서는 후원금이 수십억원 몰렸다. 당초 'DJP 공조는 다시 안 한다'고 천명했던 JP가 '실사구시'를 내세워 태도를 바꾼 것은 이처럼 돈과 낙선한 인사들의 자리 만들기가 이유였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가 JP를 '개평 정치의 대가'라고 비난했을까.


그렇다면 이렇듯 '손 안대고 코 푸는' 데에 능한 JP에 대해 민주당 사람들은 어떤 감수성을 지니고 있을까? 한마디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원죄'니 '업보'니 하는 자괴감 섞인 표현도 동원된다. 민주당의 한 개혁파 의원은 "곰보 마누라 데리고 산다고 동네방네 떠들었는데, 이제 와서 왜 곰보냐고 따지면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 저변에는 JP와 헤어지면 죽는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우선 비난 여론에 대한 우려다. 지금은 국민들이 JP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더라도 막상 JP가 팽당할 경우 결국 비난의 화살은 DJ에게 쏟아지리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YS의 최대 실정은 JP를 내친 것이다. DJ 정권은 이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JP가 한나라당 쪽으로 합류할 경우 야기될 난맥상도 걱정거리다. 그래서 "JP가 만년 2인자라는 말은 JP를 잡는 사람이 곧 1인자라는 의미 아니냐. JP를 놓칠 경우 다음 대선은 고사하고 당장 정권을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라고 우려하는 여권 인사도 있다.


김대통령이 고비 때마다 결국 JP에게 손을 내민 것도 바로 이런 파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 여권 고위 인사들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 들어 DJ가 홀로서기를 시도할 수 있었던 기회가 적어도 두 번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정권 교체 직후인 1998년 초다. 당시 여권 일각에서는 'JP와 헤어지고 개혁 세력이 뭉쳐야 한다'는 건의가 올라갔다. 하지만 DJ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두 번째는 지난 4·13 총선 직후다. JP는 총선 직전 DJ의 합당 요구를 저버리고 독자 노선을 택했다. 선명 야당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에서다. 이번에는 JP가 먼저 공조를 깼기 때문에 DJ가 여론의 비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DJ는 다시 JP를 택했다. 이에 대해 DJ의 한 측근은 "김대통령은 신뢰성 없는 인물로 보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나마 의회 다수파가 된 것도 DJP 공조 덕분이라는 것이 DJ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민주당 개혁파는 이런 JP 효과를 '마약'에 비유한다. 잠깐 동안 고통을 멈추게는 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결국 몸을 망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DJP 공조가 다음 대선에까지 이어지리라는 데 회의적이다. 양지만을 쫓아온 JP의 갈지자 행보로 볼 때 다음 대선에서도 끝까지 JP의 줄타기가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은 DJP 공조가 다음 대선에까지 이어질까라는 질문에 근소한 차이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그럴 것 35.5%, 아닐 것 40%).


여권 핵심부에서 민주·자민·민국 3당 합당론이 흘러나오는 데는 이런 JP의 '줄타기 정치'를 일찌감치 차단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3당 합당이 이루어지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끌어들이기도 훨씬 수월해지리라는 것이 이들의 계산이다. 그러나 3김 연합 후보론에 대해 국민들은 비관적으로 내다보았다. '3김 연합 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이 51.6%로, 가능성이 높다는 20.1%를 압도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젠 결별하자"


이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과감하게 JP와 결별하고 민주당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분위기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DJP 공조가 유지되는 한 사사건건 JP에게 휘둘릴 것이 뻔하므로, 차라리 당당한 소수파가 되어 새 진로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소수 여당을 인정하고 거대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정상적인 게임을 하자'에서부터 '야당으로 돌아가면 어떠냐. 준비된 개혁이나 제대로 펼쳐보자'는 극단론까지 나온다. 정대철 최고위원이 "자민련 같은 수구 세력의 눈치만 보지 말고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정치권 밖에서는 JP에게 '아름다운 은퇴'를 권유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총선시민연대가 JP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고 총선에서 국민이 JP를 심판했을 때 이미 JP의 정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구 시대 정치인의 상징인 JP는 이제라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21일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이 공주고 선배인 JP에게 '무욕으로 돌아가라'고 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정치권에 부담을 주기 싫다며 대거 은퇴를 선언해 화제다. 51년 동안 보수당을 지켜온 에드워드 히스 전 총리와 존 메이저 전 총리가 포함되어 있다.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는 것보다 더 국민을 감동시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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