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밀리면 내년 대선도 없다"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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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치 공작'에 초점 맞춰 총공세…
"조·중·동 카르텔 붕괴하면 낭패"


이미 전쟁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언론사 세무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한나라당은 내심 당황했다. 세금 추징 액수가 예상 외로 많았고 여권의 의지가 워낙 단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3∼4일 간 상황을 분석한 끝에 강경 대응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언론 전쟁'이 차기 대선 구도를 결정짓는 '준결승'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서 밀리면 내년 대선은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서다.


한나라당이 보는 여권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우선 언론사 세무 조사와 비리 사주 구속 등으로 언론을 제압한 후 그 여세를 몰아 8월 이후에는 야당 의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에 들어가리라는 것이다. 선거법 항소심 선고 공판이 7월3일에 몰려 있고, 올해 초 안기부 자금 사건 수사 때 한나라당의 거의 모든 의원들이 계좌 추적을 당한 것도 사정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언론 제압 후 8월 대사정' 시나리오 예상




맹형규 의원은 "언제든지 야당 의원들을 잡아넣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믿을 만한 언질을 받았다"라고 사정설을 뒷받침했다. 이렇게 해서 언론과 야당에 대한 정지 작업이 끝나면 가을 이후에는 김정일 위원장 답방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한 후 올 연말께 세대 교체 바람을 일으켜 이회창 대세론을 제압하리라는 것이 한나라당의 관측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공세의 초점을 '정치 공작'에 맞추고 있다. 이번 언론 전쟁은 여권 고위 인사들이 관여하고 있는 '배후 공작팀'의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세무 조사 발표 직후 여의도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언론사 세무 조사가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43.9%로, 순수한 언론 개혁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35.0%)보다 높았던 점도 이러한 전략을 세우는 데 근거가 되었다.


언론 탄압과 김정일 위원장 답방을 연결하는 논리도 여권의 정치적 의도성을 부각하는 재료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23일 언론장악저지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언론 탄압은 김정일 답방 정지 작업용'이라는 논리를 개발해 이를 중점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김위원장 답방에 사활을 걸고 있는 DJ 정권이 이를 방해하는 일부 언론을 제압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대북 구걸 협상'에 여론의 불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대중 정서에 호소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렇듯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강공 전략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내심 걱정도 많다. 정가에서는 이번 언론 전쟁의 대결 구도를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동아일보〉가 한 팀을 이루고, 여권과 방송·일부 신문·시민단체가 한 팀을 이룬 싸움으로 보고 있다. 승패의 관건은 두 진영의 여론 장악력이다.


여론의 향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사안은 사주 비리 문제. 일부 언론 사주의 비리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되면 이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비리 사주를 비호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 한나라당의 고민거리다.




특히 한나라당이 우려하는 것은 방송의 공세이다. 한나라당 정세분석실의 한 인사는 "사주 비리 공개 시점에 맞춰 방송의 조선·동아 때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다"라면서, 이렇게 되면 방송의 여론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얼마 전 정치인 골프 파동 때 한나라당이 MBC와 한판 싸움을 벌인 것도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미리 방송의 예봉을 무디게 하려는 의도였다. 한나라당은 유사시를 대비해 KBS 시청료 분리 납부, MBC 소유구조 개편 등 국회 차원에서 빼어들 '창'도 준비하고 있다.


조·중·동 카르텔 붕괴도 한나라당이 우려하는 상황이다. 정가에서는 〈중앙일보〉가 조만간 공동 전선에서 이탈하리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신문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 카르텔이 굳건하게 유지되는 한 여론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권이 분리 정책을 쓰리라는 것이다. 그동안 한목소리로 반DJ 여론을 주도해 온 조·중·동 카르텔이 붕괴하면 한나라당에 치명적으로 불리하다.


유례 없는 정보난(情報難)도 한나라당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언론사별 세금 추징 액수나 비리 사주 혐의 등 관련 정보를 입수해 미리 김빼기를 해야 한다고 보고 당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소득은 별로 없다. 철통 보안으로 유명한 국세청을 대상으로 정보를 빼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한나라당에 위로가 되는 것은 장기 전망이다. 한동안 폭풍이 몰아칠 테지만 조·중·동의 간판까지 뗄 수 없는 이상 내년 대선 국면에서는 여권이 거세게 반격당할 것이라는 셈법이다. 그 때까지만 이회창 대세론의 싹을 잘 살려 가면 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DJ의 언론 전쟁을 YS가 집권 초기에 하나회를 척결한 것과 비교하면서 "DJ 지지율이 바닥이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 실패 요인이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DJ 정권의 '골 결정력 부족'에 대한 기대도 있다. 그동안 총풍·세풍·병풍·안풍 등 찬스는 많았으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마무리한 것이 없었다며, 이번 '언풍'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리라는 것이다. 특히 지역 편중으로 검찰 인사를 해 수사 능력이 있는 베테랑 검사들을 한직으로 쫓아 버려 DJ 검찰의 실력이 변변치 않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총재 '3한3온' 징크스 지속되는가


장기적 낙관론에 기대고는 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근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그동안 이회창 대세론의 유력한 지원부대 역할을 해 온 조·중·동 카르텔이 무너지고 이들이 한동안이나마 여권과 타협해 이총재를 '왕따'시키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DJ나 YS처럼 확고한 자기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이총재에게는 그 '몇 개월' 동안 받을 상처가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6월28일 열리는 중앙당 후원회에 후원 의사를 밝혔던 기업들이 발을 빼고 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총재와 한나라당에는 '3한3온(三寒三溫)' 징크스가 있다. 석달 잘 나가고 석달은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해 가을부터 연말까지는 '7년 대통령' 얘기까지 나왔다. 올해 초 안기부 자금 수사 이후 3개월 동안은 수세에 몰렸으나 4월 이후에는 4·26 보선 승리 등으로 다시 이회창 대세론을 굳혀 왔다. 이번 언론 전쟁은 이총재에게 앞으로 석달이 다시 힘겨운 나날이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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