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에서 흐느끼는 '청소년 인권'/'한스밴드'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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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자매 그룹 '한스밴드'의 사례/
"성대 탈 났는데도 약 먹이고 노래 강요"


지난해 청소년들을 위한 공연을 기획하던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김칠준 변호사는 연예인들의 전속 계약이 너무나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김변호사는 강제 조항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된 전속 계약서 때문에 나이 어린 가수들이 혹사당하고 있다고 보고 즉시 법적 구제에 나섰다. 다음은 김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한 3인조 여성그룹 한스밴드에 대한 준비 서면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11가구밖에 살지 않는 충청북도 영동군의 한 산골 마을에서 개척 교회를 일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한나(18) 김한별(17) 김한샘(16) 세 자매는 신앙심이 유난히 깊었다. 음악에 소질이 남달랐던 세 자매는 한 동네에 사는 김중기씨(29)로부터 음악을 배우며 가스펠 가수의 꿈을 키웠다.


밤샘 녹음 작업으로 '파김치' 되기 예사


세 자매의 음악적 재능을 확신한 김씨는 교회 행사에서 이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촬영해 서울의 음반기획사에 보냈다.
얼마 후 ㅇ음반사가 음반을 내자며 세 자매의 집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어머니 이난섭씨는 공부 때문에 안 된다며 음반사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자 음반사 관계자가 직접 찾아와서 "가수 활동은 주로 방학 기간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믿고 맡겨주면 자식처럼 데리고 있겠다"라고 이씨를 설득했다.


ㅇ음반사는 세 자매에게 '한스밴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1998년 7월부터 음반 녹음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세 자매의 고된 연예계 생활은 시작되었다. 저녁 5시부터 시작한 녹음은 다음날 새벽 5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9월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되면서 일정은 더욱 빡빡해졌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선 세 자매는 오전 한두 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고, 늦는 경우 새벽 4시나 5시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방으로 공연을 가는 경우 다음날 아침에서야 집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힘든 생활이 계속 반복되자, 아이들의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위장병으로 약을 복용하기도 했는데, 특히 한나양은 계속 목의 통증을 호소했다. 처음 가수 활동을 허락했을 때 어머니 이씨는 음반사로부터 목이 좋지 않은 한나양에게 노래를 시키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음반사 관계자는 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한나양에게 "이 약을 먹으면 목도 안 쉬고 음정도 잘 올라간다"라며 약을 먹이고 노래를 계속 부르게 했다.


결국 한나양은 성대가 나빠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담당 의사는 한나양이 성대결절이어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며 무리할 경우 가수 활동을 계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2집 음반을 녹음하면서 음반사측은 다시 한나양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한나양은 또다시 성대결절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세 자매가 연예 활동을 더 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어머니 이씨는 계약해지 통보서를 음반사에 발송했다. 이로써 세 자매가 체험한 16개월 동안의 '연예계 악몽'은 끝이 났다.


한스밴드 사건에 대해 김변호사는 "기획사가 나이 어린 청소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교육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해한 노동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경제적으로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음반사측은 "전속사와 전속 가수의 관계는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도 같다. 전속 가수의 발전이 곧 전속사를 발전시키는 것이며, 전속 가수가 잘못되는 경우에는 결국 전속사도 망하는 것이 명백하다. 어떻게 전속사만이 일방적으로 전속 가수를 착취하면서 운영할 수 있겠는가"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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