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면 죽는다?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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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늑장 대처 따른 사고사 많아…
건강·주머니 축내는 과잉 진료도 예사


환자는 억울하다. 병이 있나 싶어 검사하러 갔더니 엉뚱한 진단과 쓸데없는 치료로 주머니와 건강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치료받으러 갔더니 도리어 병원 내 세균에 감염되어 목숨이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오진과 과잉 진료, 방치된 병원 내 감염 등 환자를 울리는 병원의 또 다른 모습들.




지난 6월29일 대구 ㄷ병원에서 생후 7개월 된 창욱이가 심장 수술을 받은 지 이틀 만에 죽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은 폐동맥협착증이지만, 수술 이틀 만에 죽은 까닭은 아무도 모른다. 담당 의사도 '환자가 죽을 확률은 3∼5%에 불과한 데다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왜 죽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면 죽는다. 창욱이처럼 수술 받은 뒤 또는 수술 중에 영문도 모른 채 죽는 의료 사고가 적지 않다. 엉뚱한 진단을 받고 안심하다가 병을 키우는가 하면, 소용 없는 검사와 처치에 휘둘리다 심신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응급실에 실려가서는 목 빼고 의사를 기다리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가 하면, 병원 곳곳에 포진한 세균에 감염되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76∼77쪽 딸린 기사 참조).


지난해 미국 국립의학연구소는 미국 병원 입원 환자 가운데 4만4천∼9만8천명이 의료 과실로 사망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교통 사고나 유방암·에이즈 같은 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보다 병원과 의료진의 과실로 죽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의료 행위가 초래한 '병'이나 사고에 관한 조사와 통계가 거의 없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접수한 의료 관련 소비자 불만 및 피해 사례는 지난 한 해에만 만여 건에 이른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소비자 피해를 구제한 의료 사건 4백59건을 분석한 결과, 의료진의 부주의로 사망·장애·악화 등을 초래한 경우가 3백57건(79.3%)으로 가장 많았다(표 참조).




환자가 화내는 까닭

















의료진의 부주의 또는 설명 의무 위반 79.3%
치료(시술) 효과에 대한 불만 7.6%
진료비에 대한 불만 6.4%
기타 6.7%

* 자료 : 한국소비자보호원


물론 모든 의료 사고가 병원이나 의료진 때문에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치료 과정에는 피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또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고 해도 의학적 한계로 인해 오진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위험이 아닌, 병원과 의료진의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오진과 사고가 적지 않게 발생하는 데 문제가 있다.


이창희씨(42·경기도 부천시 소사구)는 의사가 위 내시경 검사를 하고도 위암을 발견하지 못해 아내가 죽었다고 믿는다. 이씨는 "의사가 시간에 쫓겨 대충 검사한 탓에 오진했고, 그 결과 치료 시기를 놓쳤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초기 암을 제외하면 위 내시경 오진율은 높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송시영 교수(연대의대·내과)는 "문제는 얼마나 숙련된 전문의가 보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응급실 환자 63%가 "수술 지연"




오진 못지 않게 의료진의 늑장 대처가 화를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응급실에 실려 간 응급 환자에 대한 수술은 절반 이상(62.8%) 지연되고 있다는 조사가 최근 발표되었다. 김 윤 교수(성균관의대·의료관리학)팀이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대학 병원급 응급의료센터 4곳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급 수술 1천3백97건 가운데 8백78건이 부적절하게 지연되었다(표 참조). 복부 외상으로 쇼크에 빠진 환자는 1시간 이내에 응급 개복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이 늦어, 사망한 환자가 이 기간에 두배 이상 늘었다.


김 윤 교수는 "응급실에서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까닭은, 응급실 인력이 부족한 데다 응급 의료 교육이 전문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오진이나 늑장 대처보다 훨씬 공공연하고 만성적으로 일어나는 '의료 과실'은 과잉 진료이다. 불필요한 처치나 수술, 약 처방을 남발함으로써 환자의 주머니와 건강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핀이나 내고정으로도 치료가 가능한 골절 환자에게 값비싼 외고정 치료를 한다거나, 감기 약을 복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임신부에게 무조건 임신 중절 수술을 권유하는 것은 고의적인 과잉 진료에 가깝다. 이런 일은 대개 '돈' 때문에 일어난다. 핀이나 내고정 치료로는 몇 만원밖에 벌 수 없지만, 외고정 치료를 하면 그 몇 배를 벌 수 있다. 뼈가 으스러졌거나 골절 양상이 복잡한 경우가 아니면 외고정 치료는 불필요하다. 임신 중절 수술 비용은 20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감기 약 때문에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는 1%도 채 안 된다는 것이 의학계의 중론이다.


의료계 전체가 '침묵의 카르텔'을 지키며 행하는 과잉 진료는 적발은 물론 현황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상황마다 의학적 진단이 달라질 수 있어 의사 본인이 아니면 적정 진료인지 과잉 진료인지 판단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제왕 절개가 과잉 진료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우리나라 제왕절개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43%까지 치솟을 때까지도 모든 제왕 절개는 '적절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출산 문화 개선운동이 벌어지면서 제왕절개율은 10.2%나 떨어졌다. 지난 1년간 수술 횟수가 줄어든 것만 따져보면, 그동안 연간 2만6천명 이상이 불필요한 제왕 절개 수술을 받은 셈이다.




제왕 절개 외에도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과잉 진료 차원의 수술이나 처치는 많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멜빈 코너는 저서 〈현대 의학의 위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제왕 절개 수술·심장 박동 조절 장치 이식 수술·관상동맥 우회 수술·자궁 절제 수술·전립선 절제 수술을 포함한 수만 건의 불필요한 수술이 돈을 벌기 위해서든 아니든 간에 선진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같은 일은 비단 선진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의학을 답습하고 있는 한국도 멜빈 코너의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궁적출술을 예로 들어보자. 자궁에 혹이 생겨 산부인과에 가는 환자들은 대개 의사로부터 자궁적출술을 권유받는다. 그러나 그 가운데 상당수는 자궁을 드러내는 대신 혹만 제거하면 된다. 권혁찬 교수(을지의대·산부인과)는 "출혈과 통증이 있고 혹의 모양이나 크기가 갑작스럽게 변화하거나 지나치게 큰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궁적출술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뒤탈을 걱정해서(혹이 커지거나 암세포가 자란 뒤 환자가 항의할까 봐) 미리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이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발생률이나 수술률이 급작스럽게 증가한 질병들은 과잉 진료를 의심해 볼 만하다. 예컨대, 10년 전 유병률이 20위권 밖이다가 올해 갑자기 유병률 1위로 뛰어오른 치질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김창엽 교수(서울의대·의료관리학)는 "치질의 질병 유형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도 유병률이 크게 높아진 것은 치질 전문 의사가 늘어난 탓도 있다"라고 말했다.


3, 4년 전 만 명 정도에 그치던 인공 관절 수술 역시 마찬가지. 지난해에는 3만 명이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았고, 올해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이수찬 원장(동인천 길병원·정형외과) 말대로 그동안 기술이 발전해서 환자의 불편이 크게 줄어 이 수술을 선호하는 환자가 는 탓도 있다. 그러나 김성곤 교수(고대의대·정형외과)는 "인공 관절 수술이 병원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경쟁 상품으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도 수술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과잉 처치나 수술뿐 아니라 불필요한 검사로 환자를 괴롭히고 주머니를 터는 경우는 허다하다. 환자의 질병 종류나 상태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시행되는 검사가 적지 않은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홍월란 부장(이의신청부)은 "보험 심사 평가 중에 외래 환자에게 12∼13종의 검사를 할 수 있는 자동검사기기를 이용해 간 기능이나 전해질 검사 등 해당 질병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검사를 일률적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종종 적발된다"라고 말했다.


남발되는 소화제·항생제 처방




또 컴퓨터 단층 촬영이나 자기공명 영상(MRI) 촬영 역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한국이 이 장비들을 보유한 비율이 세계 3위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엄청난 돈을 들여 기기를 들여놓은 병원으로서는 환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찍어야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중소 병원에서는 MRI 리스 비용으로 매월 1천5백만원을 지불한다. 이 병원이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매달 60건 이상을 찍어야 한다. 얼마 전 호주의 한 병원에서 연수한 한 레지던트는 "내가 있던 호주 병원에서 6개월 동안 무릎 MRI를 찍은 환자가 총 3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10명 이상 찍는다"라고 말했다.


약 처방은 어떤가. 대부분의 병·의원은 감기 환자 10 명 중 9 명에게 항생제를 투여하고, 반드시 소화제를 끼워 처방한다. 감기는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투여해도 효과가 없는데, 목이 붓는 따위 합병증이 없는 환자에게까지 항생제를 처방한다. 지난해 우준희 교수(울산의대·감염내과)팀이 발표한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병원에서 수술 뒤 항생제가 95% 이상 잘못 사용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수술한 뒤에 항생제를 사용 권고치의 2배 이상 투여하고, 환자 열의 아홉에게는 필요 기간 외에도 계속 투여한다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항생제를 처방한 대가는 병원 내 감염 또는 각종 감염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가 치러야 한다.


소화제 또한 만성 췌장염 환자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필요없다. 김경환 교수(연세대 의대·약리학)는 "소화 효소가 5%만 나와도 소화제는 필요 없다. 다만, 소화제를 밥 먹듯 하는 한국인에겐 플래시보 효과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의원급 병원들이 환자를 매일 병원에 오게 만들거나, 주사제를 처방하는 것도 과잉 진료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의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매일 병원에 가야 하거나, 주사제 처방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열의 한 사람 정도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실장은 "주사제 처방을 받고, 병원에 매일 가야 할 정도면 입원해야 할 환자이다"라고 말했다.




응급 수술, 얼마나 지연되나 (총 지연율 : 62.8%)













응급 개두술 66.2%
개복술 56.7%
혈전용해제 투여 및 관상동맥 개통 시술 68.3%

자료 : 보건산업진흥원


과잉 진료는 방어 진료 성격이 짙다. 치료 받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의료진에게 뒤집어씌우려는 환자들 때문에, 의사들은 과잉 진료라는 말을 들어도 '방어할 수 있는' 치료를 선택한다. 무엇보다 병·의원에서 피할 수 있는 오진이나 과잉 진료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불합리한 의료 시스템에 있다(74쪽 딸린 기사 참조). 낮은 보험 급여와 행위별 수가제로 인해 병·의원은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통해 재정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검사와 약 종류가 많으면 '훌륭한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의 의식이 한몫 거든다. 보험 급여가 턱없이 낮게 산정되어 의료계의 탈법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한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내시경 검사 세트의 경우 환자 몸으로 들어가지 않는 부위만 빼고 전부 1회용이다. 그러나 병·의원들은 1회용 제품을 재활용한다. 1회용 제품을 재활용하면 감염될 위험성이 높지만, 병원측은 '보험 급여가 원가 이하인 것은 적당히 재활용하는 것을 눈감아 주겠다는 의도가 아니냐'고 항변한다.


의료 시스템 개선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은 비윤리적인 의사들의 행태를 제재하는 일이다. 정부나 의사 사회 내부에서 감시하고 강제해 고의적인 오진이나 과잉 진료가 시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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