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정략, 한반도 평화 잡는다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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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임동원 해임' 공세, 시대착오적…
여당도 '김정일 답방'에 욕심 버려야


한나라당이 이번 파문을 임장관 해임으로 성급하게 몰아간 배경을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의 보수 기류에 편승해 현정부의 대북 정책 성과를 무력화함으로써 대선 고지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겠다는 정략적 판단이 숨어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통일 문제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이해 관계에 따라 남북 관계가 춤추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한나라당, 믿는 부시 행정부에 뒤통수 맞을 수도




우선 부시 행정부가 표방한 보수 기조가 과연 앞으로도 계속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도 의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나 그 이후 북·미 접촉에서 겉으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현재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국방 전략 대전환은 바로 탈냉전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틀을 짜겠다는 발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윈윈 전략과 전방 전개 전략(해외 기지 의존)에 의존해온 냉전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 미사일 방어(MD) 등 첨단 무기 체계와 장거리 신속 전개 병력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세계 전략도, 중국과 손을 잡고 소련을 견제했던 냉전 시대의 반소 연대에서 이제는 거꾸로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반중 연대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대북 관계에서는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한반도 정책 및 대북 정책에 뛰어들기에 앞서 먼저 큰 틀을 새로 짜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사실 6·15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직후부터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국제 분쟁 지역 명단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타이완 해협 외에 새로운 분쟁 예상 지역으로 인도·파키스탄·네팔·티베트를 잇는 서남아시아 벨트가 떠오르게 된 배경도 이 점과 관련이 있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재래식 전력 삭감과 주한미군 지상군의 연계 철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 한반도에 다가올 가장 큰 변화는 주한미군 지상군과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둘러싼 한·미, 북·미, 남북 간의 삼각 협상과 직결되어 있고,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바로 이 삼각 협상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이었다면, 미국까지 가세한 2차 정상회담은 이 프로세스의 중간 기착점을 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야당이 좀더 신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대전환을 앞둔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야당에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한국의 보수 세력을 적당히 활용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곤 했다. 자칫하면 야당은 김영삼 정부 시절 남한의 보수 세력이 미국의 강경한 태도를 믿고 북한을 몰아치다가 갑자기 미국이 북한과 제네바 회담을 타결하는 바람에 공황 상태에 빠졌던 우를 똑같이 범할 수 있다.


앞으로 이루어질 김위원장 답방은 한반도가 동북아에서 평화의 땅으로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냉전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인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요한 시기에 야당이 주무 장관을 해임시켜 현정부를 무력화한다면, 훗날 집권하더라도 남북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풀기 힘들 수 있다. 여당 역시 답방을 차기 정권 창출과 연계하겠다는 '좁은 소견'을 버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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