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 별거냐 이혼이냐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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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해임안 통과로 사실상 공조 파기…
갈길 가기 험난, "재결합 불가피" 관측도
DJP 공조는 진짜로 붕괴되는가. 여소야대를 타개할 DJ의
대안은 무엇일까. JP는 홀로 서기에 성공할까.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이 통과된 이후, 정치권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혼미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DJP 공조에 대한 국민들의 눈길은 차갑기만 하다. 마치 이런 여론을 반영하듯, 현실 정치권도 폭풍에 휩싸여 있다. 임동원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 건의안이 표결 통과되었고, 민주당과 자민련 '공동 정권'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과연 DJ와 JP는 완전히 결별할 것인가.




사건은 한나라당의 단순한 정치 공세로부터 비롯되었다. 8·15 방북단의 돌출 행동이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보도되면서, 방북을 허용한 주무 부처 장이던 임동원 통일부장관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된 것이 계기였다. 그러나 현정권의 처지에서만 본다면, 한나라당이 임장관 해임 건의안을 거론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별다른 충격 거리가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3년간 열다섯 번이나 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에 냈고, 임동원 장관 해임 건의도 지난 6월23일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때마다 민주당-자민련 공동 정권은 장관들을 사수해 냈다.


총선 전 일시 결별과는 상황 판이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최근 들어 보수 색채를 강화하던 자민련이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에 덜컥 편승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정책과 이념에 대한 공유가 애초부터 없었던 '공동 여당'은 쉽게 흔들렸고, 결국 여권의 내부 모순이 폭발하고 말았다.


DJP는 과연 공조를 깨기로 작심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단정적인 관측은 아직 이르다. 우선 DJP 공조의 파기가 양측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추진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JP가 정서적인 충동에 이끌린 감이 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현재 상황이 일시 결별을 단행했던 지난해 총선 전과 다르다는 점에서도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당시 자민련은 정체성 위기에 시달렸고, 총선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 개월째 공조 밀월을 계속해오고 있는 상태다. JP는 최근까지도 DJP 연대의 유종지미(有終之美)를 언급했고, 3당 정책연합을 이끈 동력 구실을 했다. 이른바 'JP 대망론'도 공조의 틀을 바탕으로 한 틈새 전략 성격이 강했다. 공조와 표결은 별개라는 논리를 개발한 것도 JP 자신이었다. JP는 표결 직전까지 끝내 임장관 자진 사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DJ 당·정 개편 앞당기고, JP 독자 노선 걸을 듯


그러나 '정치 9단' JP도 김대통령의 의중을 충분히 간파하지는 못했다. JP에게는 '일개 장관 한 사람'인 임장관이 DJ에게는 햇볕정책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DJ는 표결 이틀 전 민주당 고문단과 최고위원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그리고 직접 말을 꺼내는 대신, 그들의 강경 발언을 묵묵히 듣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


"9월에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고, 10월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만난다. 앞으로 2∼3개월이 한반도 정세를 결정할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장관이 물러난다면 남북 관계는 수개월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더구나 햇볕정책은 DJ에게 '역사에서 평가받아야 하는 치적'인 동시에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이기도 하다. 임장관 사퇴가 햇볕정책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DJ가 JP 대신 임장관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DJP의 서로 다른 상황 인식은 결과적으로 공동 정권을 중대 위기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럼 이제 DJP 공동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DJ는, 또한 JP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상황은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거의 일치된 전망이다. 그만큼 상황은 유동적이다. 조그만 변수 하나가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전제 아래 몇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현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는 상당히 단호해 보인다. 언론 개혁에 이어, 햇볕정책에서도 원칙을 지킴으로써 역사에서 평가받겠다는 자세다.


국내 정치에서도 정면 돌파 카드는 나올 수 있다. DJ는 우선 정기국회 이후로 예정했던 당·정 개편을 앞당길 공산이 크다. 또한 개혁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을 되돌릴 방안이 강구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언급한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정치'라는 슬로건이 이런 전망을 담고 있다.


여야의 의석 수 역전이 정계 개편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민주당 의석은 1백14석. 자민련으로 갔던 의원 4명이 복귀한다 해도 과반수(1백32석)에는 한참 모자란다. 정치권의 지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후반기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김덕룡 의원 등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은 이미 오래 전에 민주세력 연대론을 주장한 바 있다. 개혁 색깔이 훨씬 강화될 민주당으로서는 자민련과 공조할 때보다 정체성 갈등을 덜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사라진 듯했던 이 카드가 새롭게 정계 개편의 동력으로 떠오를 개연성은 열려 있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한 낙관론이 우세하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김성호 의원은 "국민 지지를 기반으로 삼아 정국을 운영하자고 하지만, 국회 내에서 소수당이라는 어려움보다 국민 여론 안에서 소수파라는 현실이 더 심각하다"라고 우려했다. 소수 정권이 국민 여론까지 업지 못한다면 치명적인 레임 덕이 올 수도 있다. 지역적·이념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더구나 언론 환경까지 민주당으로서는 최악이다.


변형된 형태로 공조 체제 재구축할 수도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도 고민에 빠져 있다. 자민련은 당장 민주당과 한나라당 어디에도 유착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선언할 듯하다. 충청권 입지를 강화하고, 보수 정치인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데 당력을 집중할 것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JP와 자민련을 받쳐준 힘은 각료 임명권과 충청 지역에 대한 배타적 공천권에서 나왔다. 이는 공동 정부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어느 당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의석 분포는 자민련으로 하여금 절묘한 캐스팅 보트를 휘두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DJP 공조가 무너진 지금 JP와 자민련이 이런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충청권은 이미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잠식되고 있다. 각료 임명권도, 배타적인 공천권도 없어졌다. 더구나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면서, 당의 위상 저하는 물론 극심한 정치자금 부족 사태에 빠질 수도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자민련이 앞으로 정당 구실도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과연 '부도옹' JP의 신화는 유지될 수 있을까.


DJP의 미래에 대한 또 다른 그림은 이런 양자의 비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한다. DJ나JP 모두 한동안은 독자적인 활로를 개척하겠지만, 결국 다시 합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물론 예전 같은 공조 수위를 복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반이회창 연대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고자 하는 DJ나, 대망론이라는 마지막 꿈을 다듬고 있는 JP나, 'DJP 연대'라는 안정적인 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3당 정책연합을 통한 대선 공조가 변형된 형태로 다시 시도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같은 상황을 예측하면서 뭉치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것을 DJ나 JP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둘이 다시 손잡을 날이 올까. 이는 물론 DJ와 JP의 홀로 서기 능력에 따라 유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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