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파고든 한국 마약 기술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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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 밀조자 15명 암약…28명은 교도소 수감,
'처형 사건' 되풀이될 수도
중국이 한국인 마약사범 신 아무개씨를 처형한 사건을 둘러싸고 빚어진 '망신살 외교' 파장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소동의 이면에는 중국 내 한국인 마약 밀조·밀매자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도사리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필로폰 제조자들의 실상과 마약 소탕을 위한 한·중 수사기관의 합동 작전 전모를 추적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 중국이 한국인 마약사범 신 아무개씨(42)를 처형한 뒤 한국 외교부가 갈팡질팡하다가 국제 망신을 당하자 국내 마약 수사 관계자들이 내뱉은 탄식이다. 한국과 중국의 마약 수사당국은 오래 전부터 범인 명단을 교환하면서 마약 근절에 공조해 왔기 때문에 국내 마약 수사기관은 이 사건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중국의 랴오닝·지린·헤이룽장 등 동북 3성에 들어가 마약 생산기지를 만든 한국인 필로폰(속칭 히로뽕) 제조 1세대들은 그간 줄곧 양국 마약 수사기관의 표적이 되어 왔다.




지난 9월 처형된 신씨와 하얼빈 교도소에서 병사한 ㅈ씨, 그리고 같은 사건으로 10년형을 받고 복역중인 ㅂ씨는 이미 국내에서 마약 밀조 및 밀매 혐의로 1996년부터 전국에 수배되어 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측 수사당국은 이들을 포함해 중국에 건너가 필로폰을 밀제조해 한국으로 밀반입하는 마약사범 20여명의 명단을 중국 당국에 넘겨 필로폰 근절을 위한 공조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국제 범죄를 다루는 국내 수사당국은 외교부가 후속 대응을 소홀히 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대검 마약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외교부가 자국민 보호를 허술히 해 앞으로 마약 근절을 위한 한·중 수사 공조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처형할까봐 수사 협조하기도 거북"


비록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문명 국가의 불문율이다. 그러나 주중 한국대사관은 마약사범으로 처형된 신씨 등이 엄연한 자국민인데도 체포 당시부터 아무런 영사 업무 지원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또 뒤늦게 사건이 불거지자 중국으로부터 통보를 못받았다고 발뺌했다가 중국측이 증거를 제시하는 바람에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이번 소동의 이면에는 중국 내 한국인 마약 생산기지가 도사리고 있다. 지금도 중국 각지의 교도소에는 마약사범으로 중형을 받은 한국인이 28명이나 수감되어 있다. 그 가운데 2명이 사형 선고, 4명이 무기 징역형을 받았다. 나머지는 징역 5∼20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직 중국 공안에 체포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내에서 몰래 필로폰을 제조하고 있는 한국인이 15명에 달한다. 중국 마약 수사당국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필로폰 밀조 공장만도 동북 3성에 30여 개나 된다. 이들 마약 제조 사범들과 생산 기지에 대해 한국 마약 수사당국은 대체로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 범죄 업무를 다루는 국내 마약 수사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고충을 토로했다. "신병만 인수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들의 제조 공장 위치와 신상 정보를 중국 공안에 알려 주겠는데, 중국이 그들을 체포하면 대부분 처형할 것이 명백하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들이 만들어서 국내로 들여보내는 필로폰 전달책만 잡아내는 실정이다."


따라서 중국 내 한국인 마약 생산 기지에 대한 양국 정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앞으로도 중국 정부에 의해 한국인이 처형되는 일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소비되는 주된 마약류는 필로폰이다. 현재 국내에서 밀거래되는 필로폰의 90%와 일본에서 유통되는 필로폰의 70%는 중국 동북 3성에서 한국인 제조 기술자들이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1990년대부터 중국이 한국과 일본 필로폰 시장의 생산 기지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필로폰 제조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밀조된 필로폰은 대부분 일본으로 밀수출되었다.


백색 공포의 대명사인 필로폰 밀조 기술을 일부 한국인이 독점하게 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제 시대에 일본 군수·화학 공장에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 중 일부가 필로폰 제조 기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이런 이력으로 필로폰 세계에서 전설이 된 인물은 김화순씨(1976년 사망)였다. 그는 일본 군수·화학 공장에서 배운 제조 기술을 광복 후 노 아무개씨 등 4명에게 전수했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국내에서 필로폰을 대량 밀조해 일본 야쿠자에게 팔아넘겼다. 당시 국가 살림이 어려워 이들을 방치했던 국내 수사당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제조 기술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지하로 잠적한 기술자들은 때마침 한·중 수교에 따라 왕래가 가능해진 중국으로 건너갔다.


동북 3성에서 주로 제조해 한국·일본으로 유통


이들은 언어가 통하고 인건비가 싼 동북 3성 조선족 마을 인근에 마약 공장을 차렸다. 특히 동북 3성은 필로폰의 원료인 염산에페드린을 추출할 수 있는 중국산 황마가 대규모로 자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중국인이 이용하는 마약은 아편과 헤로인이기 때문에 이들 한국인 필로폰 밀조자들은 중국 내에서 사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도 생산물을 한국과 일본으로 밀수출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에는 한국인 마약 생산 기지와 유통망이 촘촘히 구축되었다. 중국의 한국인 마약 조직은 크게 9개 권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현재 마약 생산 비밀 공장을 차려둔 곳은 옌지·다롄·칭다오·광저우·홍콩이다. 일부 한국인 밀조자들은 국경 너머 북한으로 들어가 필로폰을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34쪽 상자 기사 참조). 밀조 사범들은 주로 시 외곽에 자리 잡은 허름한 농가 창고에 기계를 들여놓고 가구공장 등으로 위장해 필로폰을 생산한다. 이번에 처형된 신씨는 1997년 1월 하얼빈 시 교외에 집 한 채를 빌린 뒤 필로폰 완제품 10kg과 반제품 47kg를 만들다가 중국 공안에 급습당했다. 당시 중국 공안은 마약 밀매자로 위장한 한국인을 앞세워 신씨 일행을 검거했다.


올해 초에는 사상 최대의 한국인 필로폰 밀조 조직원 2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지난 3월14일 중국 내몽골 자치주와 러시아 국경이 맞닿은 치허타이에서 한국인 ㅇ씨와 ㄱ씨가 공장을 차려 필로폰을 제조하다가 적발된 것이다. ㅇ씨 일행이 체포된 현장에서는 필로폰 완제품 80kg과 원료 1t이 발견되어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 공안의 이같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밀조자들은 지하에 꼭꼭 숨어 여전히 필로폰 완제품을 한국과 일본에 유통시키고 있다. 공장 생산 가격은 kg당 중국 인민폐로 70만 위안(한화 약 8백만원) 안팎이다. 그러나 이 물건이 한국에 도착하면 도매 가격이 kg당 2천5백만원까지 뛴다. 위험 수당에 해당하는 운반비가 막대하기 때문에 밀매 조직이 꾀는 것이다. 국내 소매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1회 투약분인 0.03g에 30만∼50만 원까지 거래된다.


중국에서는 선양·베이징·홍콩·상하이가 주된 경유지이다. 이곳을 거친 필로폰은 주로 항공기와 선박을 통해 중국 밖으로 흘러나간다. 대규모 밀수품은 대개 컨테이너에 싣는다. 중국 동부 연안 항구도시인 단둥·다롄·홍콩·상하이 등을 오가는 화물선들이 주요 운반 수단이다. 밀매 조직은 주로 선원을 매수하거나 아예 필로폰을 쟁반·기계 부품 등으로 위장 가공해 수출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 들어가 불법체류 노동자로 일하는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인에게 돈을 더 벌 수 있는 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접근해 이들을 운반책으로 삼는 수법도 쓰고 있다.


국내로는 인천 부산 광양 군산 마산 항을 통해 유입된다. 지금까지 국내 마약 수사당국은 중국산 필로폰을 주로 이들 항구에서 적발했다. 일본으로는 중국 동북부 항구 도시에서 공해를 거쳐 규슈 지역으로 들여보내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 경찰이 이 루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자 지금은 홍콩 상하이 등 남부 항구 도시에서 배에 실어 오키나와에 보낸 뒤 여기서 일본 어선과 상선에 실어 본토로 들여보내는 수법을 쓰고 있다. 또 최근에는 쾌속선으로 일본과 한국 근처 공해상에 고무 부대에 담은 필로폰을 싣고가 바다에 던진 뒤 부표를 설치해 두고 국내 밀매 조직이 어선을 가장해 찾아가는 지능적인 유통 수법도 등장했다.


한·일 양국이 해상을 통한 필로폰 유입 차단에 심혈을 기울이자 밀매자들은 더 안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항공 운송이 그것이다. 항공 화물로 보낼 경우 도착지 공항에서 적발되더라도 밀조자와 밀매자를 알아낼 수 없어 최근에는 이 방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중국, 1997년부터 마약 사범 일제 소탕 나서


이처럼 한·일 양국에 중국산 필로폰이 물밀 듯이 밀려들자 양국 마약 수사기관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정부에 줄기차게 공조 수사를 요구해 왔다. 당시까지 중국 정부의 대외적인 공식 입장은 '중국에서는 빙독(필로폰의 중국어)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대검 마약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으로서는 필로폰을 자국민이 소비하지 않는 데다, 가만 놔두면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외화가 들어오는데 굳이 앞장서 단속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6년 이후 중국의 사정이 달라졌다. 한·일 양국으로부터 범인 인도 요구가 거세진 데다, 한국인 제조자들이 중국 폭력단을 밀매 조직으로 끌어들이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중국 현지 폭력 조직인 흑사회와 삼합회가 중국에 들어와 있는 한국인 밀조자들과 손잡고 마약 도매 가격을 7 대 3으로 나누는 조건으로 중국 전역을 유통 기지로 삼으려고 기도한 것이다.


결국 중국은 1996년부터 한·일 양국과 마약 퇴치 정보 교류에 나서면서 비로소 중국에서 외국인이 필로폰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은 1997년 이후 중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은 당·정·군 통합 대책기구인 국가마약통제위원회를 설치해 전국적으로 마약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군대까지 동원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일찍이 아편 때문에 나라를 잃을 뻔한 쓰라린 경험을 했다. 따라서 마약 제조 사범을 공개 총살해 마약과 국민을 분리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1997년 3월 형법을 개정해 마약 밀조·판매·운반 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사범에게는 최고 사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중국 공안부 공공안전연구소 우카이징 소장은 지난해 마약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러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정부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수 차례 염산에페드린 관련 통제 규정을 발표하고 이 기간에 필로폰 밀조·운반·밀매를 엄중 단속했다. 국경과 입출항을 끼고 있는 동북 지역 각 성에서 밀조와 밀반출에 대한 양방향 수사를 전개해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에페드린 물질(필로폰) 밀조·밀매를 총 5백48건 적발했고, 원료 물질 천여t을 압수했다."


최근 중국에서 처형된 한국인 필로폰 밀조자 신씨 일행은 바로 이 기간에 중국 공안에 적발되었다. 또 현재 중국 각지 교도소에 수감된 한국인 마약사범 28명이 체포된 것도 이 기간이었다. 한국 마약 수사기관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필로폰 밀조자 명단을 중국 공안에 넘겨주고 범죄인 인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들을 체포하면 넘겨주지 않고 자국법으로 엄벌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공조를 기대해온 한국 수사기관의 딜레마도 여기서 생겼다.


아직까지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양국 마약 수사기관은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필로폰 밀조·밀매 조직 소탕을 위해 정보 교류와 부분적인 수사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고자세이다.


지금까지 중국 내에서 필로폰을 밀매하던 한국인 마약 사범을 한국 수사기관이 넘겨받은 예는 딱 한 번 있었다. 지난 3월5일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7월9일 한국 검찰에 인계된 김동화씨(37)가 주인공이다. 김씨는 최근 3년 동안 중국에서 서해를 통해 한국으로 밀반입된 필로폰의 절반 가량을 공급한 거물급 마약 밀매자로서, 한국 검찰의 요구에 따라 중국 공안이 전국에 수배령을 내린 인물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재판을 받았더라면 가차없이 처형당했을 텐데 한국 수사기관의 노력으로 최소한 목숨은 건진 셈이다.


그러나 이런 거물급 마약 사범을 중국이 선선히 한국에 넘겨준 데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비화가 있다. 이에 대해 지난 수년 동안 중국 현지를 오가며 정보를 수집했던 국내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공안이 김동화를 체포해 추궁하다 보니 그를 비호했던 공안부 간부 이름이 나왔다. 김씨가 선양을 무대로 삼아 마약 장사를 하면서 그곳 공안부 수뇌급 인사에게 주기적으로 뇌물을 먹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중국 공안은 중국에서 재판하면 껄끄러운 일이 생길 게 뻔하자 한국 검찰에 신병을 넘긴 것이다."


한·중, 마약사범 처리 문제 본격 협의해야


결국 김동화씨와 같은 특수한 사례를 빼면 중국이 체포한 한국인 마약 사범을 넘겨주는 일은 앞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국내 마약 밀매 조직에 대한 수사를 통해 중국 현지의 한국인 밀조 조직과 공장 위치까지 파악해둔 한국 수사당국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일반적인 외교 관례대로라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한국에서 적발된 중국인 마약 사범도 우리 법대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보았자 중국 범죄자의 인권만 보호해 주게 되는 셈이다. 또 지금까지 국내에서 적발된 중국 국적 마약 사범은 주로 조선족 동포여서 중국에 큰소리를 칠 처지도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처형 사건을 계기로 중국에서 암약하는 한국인 마약 사범 처리 문제에 대해 마약 근절과 인도주의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중국 정부와 본격 협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준대로 처리하도록 방치한다면 앞으로 중국내 한국인 마약사범 수십 명이 한국인 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한 채 처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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