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꼬여’ 일 꼬인 사람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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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 부른 ‘취중 발언’ 사례/추미애 등 곤욕…이회창 ‘폭언’은 비보도


술은 정치인에게 필요악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니 만큼 술자리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술은 먹더라도 말은 조심해야 한다. 기자들과의 술자리가 특히 그렇다. 술자리에서 무심코 뱉은 한마디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발언말고도 취중 발언이 파문을 일으킨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1994년 서석재 총무처장관이 발언한 ‘전직 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 보유설’이다. 일부 친한 기자들과 만나 술자리에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발언이었지만 워낙 파괴력이 큰 사안이어서, 이것이 보도되자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으로 이어졌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것은 2001년 7월에 있었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발언이다. 당시 추의원은 민주당 내 쇄신운동이 불붙고 있던 상황에서 기자 7명과 만나 소설가 이문열씨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문제 삼았다. 폭탄주 5∼6잔을 마신 술기운에 “이문열 같은 가당찮은 놈이 × 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 등 험한 말을 뱉은 것. 일부 언론에 이 발언이 대서 특필되어 추의원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보도자료를 내야 했다.



“발설자 누구냐 따라 보도 방향 달라져”


취중 발언 가운데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것도 많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선을 앞둔 1997년 7월, 한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일부 기자들을 겨냥해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라고 해 참석한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정치권과 언론계 내에서만 유포되다가 월간 <말> 2000년 7월호에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이씨는 2001년 10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이 실제 행해졌는지 묻자 “기억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술자리에서 한빛은행 불법 대출 사건에 관련된 이운영씨의 뒤를 봐준 것처럼 얘기했다가 구설에 올랐고, 민주당 윤철상 의원은 당 지도부가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소속 의원의 항의를 받자,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비용을)절반으로 신고하라고 교육도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가 궁지에 몰려 당직을 그만두어야 했다.



정치인 외에도 취중 발언으로 화제가 된 사람은 많다. 1999년 6월, 당시 진형구 대검찰청 공안부장은 대낮에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고 “검찰이 조폐공사의 파업을 유도했다”라고 발언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진씨의 발언 한마디에 그 자신은 물론 김태정 법무부장관과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의 목이 날아갔다. 이정빈 전 외교통상부장관은 2000년 10월 폭탄주 두 잔을 마시고 이런 실언을 했다. “의전 관계로 올브라이트(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국무장관)와 포옹했는데 가슴이 탱탱하더라.”


언론계에는 취중 발언 보도를 놓고 ‘편파성’ 논란도 있다. 뉴스 가치에 대한 판단은 둘째 치고 똑같이 뉴스가 될 만한 취중 발언을 했을 때, 왜 누구 발언은 크게 보도하고 누구 발언은 아예 보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언론이 해당 정치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보도가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이번 발언도 그에게 비판적인 일부 언론이 ‘언론 국유화’ 발언 등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의도적으로 크게 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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