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도는 노무현, 경 쟁력은 정몽준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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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회창 진영의 후보 ‘결승전’ 막이 올랐다. 단일화에 전격 합의한 노무현·정몽준 후보에 대해 유권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사저널>이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제야 좀 선거다운 선거를 보겠군!”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의 단일화 합의 소식이 알려진 후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 반응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깔려 있다. 하나는 그리 쉽게 결판 나지 않으리라 여겼던 노-정 단일화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데 대한 놀라움이고, 다른 하나는 단일 후보 등장에 따라 대선 구도가 급변하게 된 데 대한 흥미진진함이다.




11월15일 밤 10시30분, 두 후보가 경직된 표정으로 회담장에 마주 앉았을 때만 해도 회담 결과를 낙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 노후보측에 비관론이 우세했다. 정대철 선대위원장은 “노후보에게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먼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지만 말라는 주문을 했다”라고 귀띔했다. 정후보와 나란히 앉은 노후보 역시 “오늘 당장 합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또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한 자락을 깔았다. 몇몇 참모진은 배석자 없이 단둘이서만 회담장에 들어가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박상천 최고위원과 정후보가 만난 후 두 사람의 얘기가 달랐던 것처럼, 두 후보가 서로 딴소리를 하면 낭패 아니냐는 걱정에서다. 이 때문에 녹음기라도 들여놓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나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기자 회견 도중 두 후보가 앉은 탁자에서 ‘삐삐’거리는 소리가 나 국회 경위들이 도청 장치가 아니냐며 수색에 나섰다가 결국 방송사 마이크 때문이었음이 밝혀지는 등 회담장 안팎에는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회담이 시작되고 한 시간. 국회 로비에 흩어져 있던 취재진이 회담장 문 앞으로 서서히 몰려들었다. 대충 끝날 시간이 되었다는 어림짐작에서다. 대다수 기자들은 이미 ‘단일화 의지만 확인하고 다시 만나기로…’라는 식의 예비 기사를 작성해 놓은 터였다. 그런데 자정을 넘기고 방송사의 마감 뉴스, 신문사의 최종 마감 시간이 다 되도록 회담장 문이 열리지 않자 뭔가 수상하다는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회담장 안으로 양당 대변인이 들어간 지 30분이 넘어섰기 때문이다.


11월16일 0시40분. 드디어 회담장 문이 열리고 두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양측의 이낙연·김 행 대변인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국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합의’를 전격 발표했다. 합의문 발표 후 두 후보는 뜨겁게 포옹했고, 배석했던 양당 참모들은 박수치고 환호했다. 허를 찔린 내·외신 기자들은 휴대폰으로 기사를 부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일화 합의는 정후보가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선출 방식’을 전격 수용해 성사된 것이다. 그동안 양측은 후보 선출 방식을 놓고 ‘대의원 여론조사’(정후보) 대 ‘일반 국민 여론조사’(노후보)로 대립해 왔기 때문이다. 정후보가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수용하기로 한 데 대해 국민통합21측은 구국의 결단이라며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나 국민 여론조사는 당초 ‘국민 경선’을 주장했던 노후보측에 대응하기 위해 정후보측이 먼저 제안했던 방안이다. 따라서 정후보 처지에서 보면 원래 자기가 주장했던 방안을 자기가 양보해서 수용한 것처럼 만드는 일거양득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최대 관심거리는 정후보가 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노-정 단일화에 합의했느냐는 점이다.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후보가 승산이 없을 경우 독자 출마나 노-정 단일화보다 이회창 후보 쪽으로 기울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후보의 한 측근은 “이후보와는 결코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판단의 근거로 거론되는 것이 ‘이익치 기자회견’과 ‘정후보 한나라당 투항설’ 등이다. 정후보는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에 정후보가 연루되었다고 폭로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기자회견이나, 정후보가 머지 않아 후보를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투항하리라는 음모론이 모두 이후보측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이후보는 상종 못할 사람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후보측이 ‘이익치 같은 놈들’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연일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것이나, 이씨의 기자회견 후부터 정후보가 “이회창 후보는 아름다운 승자가 될 수 없다”라고 공개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회창에 노무현 10.6%P, 정몽준은 7.1%P 뒤져


아무튼 양측이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2002년 대선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일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겨룰 경우 지지율 차이가 그리 많지 않았던 데다, 노-정 단일화 과정에서 제2의 노풍(盧風) 또는 정풍(鄭風)이 불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노-정 단일화를 강력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36쪽 기사 참조).



<시사저널>은 노-정 단일화 합의 이후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는 단일화 합의가 발표되고 반나절이 지난 11월16일 저녁에 실시했다. 비록 노-정 두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 결과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단일화 합의 이후의 흐름을 제시하는 지표로서 의미가 크다.




우선 이회창·노무현·정몽준 세 후보가 모두 출마할 경우 지지율은 38.2% 대 22.3% 대 20.9%로 나왔다. 오차 범위 안이지만 노후보가 지난 8월 이후 처음으로 정후보를 앞선 것이 눈에 띈다. 군소 후보들은 민노당 권영길(2.5%), 무소속 장세동(2.2%),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0.4%) 순으로 이어졌다.


단일 후보로 노무현 후보가 나설 경우, 이회창 대 노무현의 지지율은 46% 대 35.4%로 나타났다. 남자 유권자에서는 두 후보 지지율이 40.5%(이) 대 40.7%(노)로 비슷했지만, 여자 유권자 사이에서는 51.4%(이) 대 30.2%(노)로 이후보가 월등하게 앞섰다.



단일 후보로 정몽준 후보가 나설 경우에는 이회창 대 정몽준 지지율이 43% 대 35.9%로 나타났다. 단일 후보 노무현이 이후보에게 10.6% 포인트 뒤지는 데 비해 단일 후보 정몽준은 이후보에게 7.1% 포인트 뒤져 경쟁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런 추세는 11월17일과 18일 공개된 MBC·<조선일보>·<한국일보>·<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단순 지지도 조사에서는 일제히 노후보가 정후보를 앞지른 반면,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한 양자 대결에서는 정후보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두 후보간 협상 과정에서 노후보측이 단순 지지도를, 정후보측이 이후보에 대한 경쟁력을 후보 선출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단일 후보로 누가 적합한지를 묻는 항목에서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노후보가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도 48.3% 대 40.1%로 노후보가 단일 후보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는 특히 ‘두 후보 중 누가 이회창 후보와 맞서 더 경쟁력이 있느냐’는 질문을 직접 던졌는데, 41.4% 대 40.1%로 노후보가 1.3% 앞섰다. 양자 대결에서의 지지율 차이로 보면 정후보가 더 경쟁력이 있고, 직접적인 질문에서는 노후보가 더 경쟁력이 있다는 답변이 나온 것이다. 국민 여론이 아직 심하게 출렁거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양측 협상단은 어떤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로 했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선정 방식도 공개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양측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절충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 문항에 노·정 후보는 물론 이후보까지 넣어 단순 지지도를 물어본 후 이후보 지지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단일 후보로 적임자를 물어보는 방식이다.



의원 탈당에는 77.8%가 “공감 못해”


단일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제3 세력의 입지는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여론 역시 부정적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탈당한 데 대해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77.8%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인제 의원이 중부권 신당을 창당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이 87.5%나 되었다. 자민련과 김종필 총재에 대해서는 이한동·이인제 의원 등과 신당을 만들라는 주문이 27.3%, 한나라당에 합류해 이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16.7%였으나, 그대로 있어야 한다가 6.4%, 아예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가 22.8%나 되는 등 부정적인 견해가 만만치 않았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 열에 아홉(88.6%)은 대선 때 투표를 하겠다고 한다. 노-정 단일화 합의로 선거의 역동성이 높아지면서 대선에 대한 열기도 점차 달아오르는 추세다.
하지만 일단 첫 단추를 꿴 노-정 단일화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단일화 합의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가 불리한 것으로 나타나자 정후보측에서는 벌써 “여론조사 방식이 노출되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후보에게 유리한 상대를 찍는 역선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내부 파열음이 거듭될 경우 노-정 단일화는 그 효력을 잃고 오히려 양측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길 수도 있다. 그 결과는 11월26일을 전후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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