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르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9.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은 최근 들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사회 갈등의 편차를 진단하기 위해 일반 국민과 운동권 386 세대를 대표하는 전대협 출신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두 집단은 ‘과거사
-전대협 386 무슨 일 하고 있나?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는?
-합리적 진보, 합리적 보수는 누구?
-차기 대통령감 1순위는?
-북한은 위협적인가, 아닌가?


한쪽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한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친북·좌경·반미 세력의 손아귀에서 나라가 결딴 날 지경이라는 것이다. 보수 인사들은 그 주범으로 운동권 출신 386 세대를 꼽고, 보수 언론은 이런 주장을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우경화를 우려한다.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대신 대체 입법이나 형법 개정으로 보완하려는 데는 ‘무늬만 폐지’라며 진보 진영의 불만이 가득하다. 이라크 파병이나 정부·여당이 각종 개혁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데 대해서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언제는 머리 수가 모자라서 그런다더니, 이제는 과반이 되어서도 제대로 못한다”라며 비난이 거세다.

양 극단의 협공에 치여 노무현 정부와 여당은 마치 샌드위치 신세 같다. 유시민 의원은 “좌파로부터는 신자유주의로 비난받고 우파로부터는 친북 좌파로 공격받고 있으니, 참여정부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갈라선 여론은 서로를 자극하면서 갈등만 증폭시키는 양상이다.

마치 딴세상에서 살다온 것처럼 어긋날 대로 어긋난 대한민국의 여론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두 가지 여론조사를 동시에 실시했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와 보수 진영이 친북 좌파라고 공격하는 운동권 386 세대에 대한 여론조사가 그것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보수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도 함께 실시하려 했지만, 서명을 진두지휘한 자유시민연대측이 연락처 제공에 난색을 표명해 성사되지 못했다. 운동권 386의 모집단으로는 학생운동의 상징성이 크고, 제도권에도 다양하게 진출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동우회를 선정했다. 가장 먼저 노무현 정부의 이념 성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극우를 0점, 극좌를 10점으로 한 10점 척도에서 일반 국민이 매긴 참여정부의 이념 점수는 평균 5.96점으로 나타났다. 중도(33.5%)보다 왼쪽(44.5%)이라는 답변이 더 많긴 했지만, 일반 국민은 노무현 정부를 중도 좌파로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극좌(10)라고 지목한 응답자도 9.2%에 이르는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주로 수도권과 영남에 사는 40대 이상 한나라당·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이런 응답자가 몰려 있는데,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을 계기로 극단적인 평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18일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들의 집회에서는 이런 성향을 드러내는 발언이 여과 없이 쏟아졌다. “노대통령이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것은 노무현 장인이 국보법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옥사했기 때문이다.”(노대통령 장인 고 권오석씨에게 살해되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유족대표 변재환씨), “여의도에 몰려 있는 주사파들이 대한민국을 적화하기 위해 보안법 철폐에 앞장서고 있다. 저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김병관 서울시재향군인회장) 등 ‘과격한’ 표현이 잇따랐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집회에서는 한나라당 내 진보 성향 의원들까지도 싸잡아 공격 대상에 올랐다. “이재오 김문수 고진화는 간첩이다. 북한 공작금으로 민중당을 창설한 이들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산파 역할을 했다”라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 나왔다. 박대표를 흔드는 당내 비주류에 대한 역공 심리가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평균 점수로만 따지면 전대협 386들이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일반 국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균 5.4로 역시 중도 좌파에 가깝다. 다만 내용으로 보면 전대협은 좌파 쪽인 8~10점보다 4~7점을 준 사람이 훨씬 많아, 참여정부를 좀더 ‘보수’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로 들어가면 일반 국민 대 전대협 386의 의견은 판이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일반 국민은 33.7% 대 62.1%로 비판적인 답변이 훨씬 많았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든 연령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지역 별로 보아도 호남에서만 긍정적인 평가가 다소 많을 뿐이다. 전통적으로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높았던 서울(24.8% 대 72.7%)과 인천·경기(32.7% 대 61.2%) 지역이 일제히 등을 돌린 것이나, 지난 총선 때 호남보다 더 강력하게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충청권조차 돌아선 것은 여권에 뼈아픈 대목이다.

이에 반해 전대협 386의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맹목적인 수준이다. ‘잘하고 있다’가 82.2%로 ‘잘 못한다’ 17.8%보다 다섯 곱절 높다. 전대협 출신인 한 정치권 인사는 그 이유를 ‘시대 정신’에서 찾는다. 노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이 ‘과정’은 다소 거칠어도 ‘방향’만큼은 옳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대협 출신들이 참여정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도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후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해석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회를 중심으로 제도권에 진출하기 시작한 전대협 출신들은, 스스로를 386 세대라고 부르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40년 만에 의회 세력이 교체된 17대 총선을 계기로 당·정·청 각 분야에 다양하게 포진했다(24쪽 상자 기사 참조).

일반 국민 대 전대협 출신 간의 엇갈린 인식은 노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세부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국보법 폐지 문제에 대해 일반 국민은 여전히 ‘개정’ 쪽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특히 폐지 25.6%, 개정 72.2%라는 결과는 9월8일자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의 조사(폐지 32% 대 개정 62.1%), 9월11일자 동아일보 조사(폐지 36.9% 대 개정 57.2%)보다 더 보수적으로 나타났다.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널리 알릴수록 폐지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던 여권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있다. 반면 전대협 출신들은 93.6% 대 4.5%로 국가보안법 폐지에 ‘올인’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대협은 출범 때부터 ‘민족 공조’와 ‘남북 통일’을 기치로 내걸고 임수경 방북 같은 과감한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그 사이 국보법으로 처벌받은 회원이 부지기수다. 누구보다 국보법의 폐해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전대협이라고 말하는 한 회원은 “도대체 어떤 전대협 출신이 국보법 폐지에 반대했는지 모르겠다”라며 궁금해 했다.

국보법 폐지에 반대한 보수 인사들의 9월9일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두 집단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일반 국민은 47.2% 대 39.9%로 시국선언이 ‘적절했다’고 평가한 데 반해, 전대협 출신들은 92.6%가 ‘부적절했다’고 대답했다.

국보법 폐지만큼은 아니지만, 행정수도 이전·부동산 정책·이라크 파병 등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굵직굵직한 정책에 대해서도 두 집단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일반 국민은 찬성 41.4%, 반대 56.2%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충청권 응답자들이 유독 이 항목에서는 압도적 지지(찬성 72% 대 반대 28%)를 보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일반 국민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안정에 도움을 준 측면이 큰가,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된 측면이 더 큰가’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38.7% 대 56.6%로 부정적인 답변을 택했다. 이에 대해 여권 인사들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집값이 너무 오른다고 불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산층과 서민들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데 대해서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끼는 분위기다.

일반 국민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행정수도 이전과 부동산 정책에 대해 전대협 출신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것도 90.6%, 81.7% 라는 몰표 수준의 지지다. 하지만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파견한 것에 대해서는 75.5% 대 22.8%로 노무현 정부를 질타했다. 일반 국민이 5 대 4 비율로 잘했다고 평가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과거사 청산’에는 한목소리

이와 관련해 노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이 전하는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노대통령은 평상시 지지율이 낮은 것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30~40대가 주축이 된 개혁 세력은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느라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가도 큰 선거나 탄핵 같은 중대 사태가 벌어지면 빠르게 결집한다는 나름의 믿음에서다. 그런데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후 노대통령은 실망한 개혁 세력이 유사시에도 모이지 않을까 봐 고민이 깊어갔다. 노대통령이 국보법 폐지를 주장한 데는 지지층을 겨냥해 개혁 선명성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이 노대통령 지지 세력에 던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노대통령 정책 중에 그나마 일반 국민과 전대협 출신의 의견이 모아지는 곳이 바로 ‘과거사 청산’이다. 일반 국민은 52.2% 대 45.4%로 과거사 청산 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고, 전대협 386은 그보다 훨씬 강도가 센 95% 대 5% 비율로 과거사 청산 작업을 지지했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개혁 법안 가운데 1순위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여론의 지지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저항이 워낙 거세자 열린우리당은 결국 국정감사 이후로 이 법안 처리를 연기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여권 핵심부에서는 “모든 개혁 법안을 11월에 몽땅 처리하는 것은 무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이라도 9월에 밀어붙였어야 했다”라는 때늦은 후회가 나온다.

이처럼 일반 국민과 전대협 출신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 너무 큰 차이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같은 시대를 경험한 일반 386과 전대협 386 사이에는 동질감이 더 강할까, 이질성이 더 강할까?

이를 알기 위해 일반인 응답자 가운데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만 따로 뽑아 분석했다. 그 결과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청산같이 이념이 개입되는 항목에서는 일반 386도 전대협 386을 따라 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국보법의 경우 다른 세대는 폐지 대 개정이 23.6% 대 73.9%로 50.3% 포인트나 차이가 났지만, 일반 386은 폐지 39.3%, 개정 60.7%로 그 차이가 절반 이상 줄었다. 보수 인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평가나 과거사 청산에서도 일반 386과 전대협 386 사이에 동화 현상이 발견된다. 민주화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절에 대학을 함께 다닌 공통의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밖에 대다수 항목에서는 일반 386이 전대협 386보다 일반인과 비슷한 응답 경향을 보였다. 노대통령 지지도에서 38.7% 대 59.2%로 부정적인 응답이 더 많았고, 행정수도 이전에는 반대, 이라크 파병에는 찬성하는 응답이 더 많은 식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일반 386과 전대협 386 사이에 인식의 괴리가 나타나는 핵심 이유로 일반 386의 절반을 차지하는 40대의 카멜레온 같은 성향을 꼽는다. 지난 대선 당일 KBS의 출구조사를 분석해보면 40대는 노무현 47.4%, 이회창 48.7%로 백중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동안 친노·반노 진영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온 40대가 최근 들어 보수 세대인 ‘50대 이상’과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노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하는 핵심 변수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도 40대는 반노무현, 보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조사에서 20~30대는 찬반이 엇비슷하게 나타나지만, 40대부터는 26% 대 71% 식으로 반대 비율이 훌쩍 높았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보수 인사의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20~30대와 40대 이상의 평가가 정반대로 갈린다.

40대의 반노무현 성향은 잔뜩 움츠러든 경제 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밀집되어 있는 40대의 경우 경제 상황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부쩍 나빠진 최근의 경제 심리가 40대 응답자들을 반노무현, 반여당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정책’을 묻는 질문에, 일반 국민은 ‘경제 정책’을 가장 많이 꼽았다(54.1%). 정치 개혁(10.3%), 외교 정책(8.5%), 과거 청산(5.3%)이 뒤를 이었지만, 1위와의 차이는 현격했다.전대협 386도 ‘경제 정책’이 가장 문제라는 데는 동의했다(31.7%). 하지만 ‘외교’가 문제라는 응답도 28.7%나 나왔고, 중복 응답률로 따지면 경제(50%)보다 외교(55%)가 더 잘못되었다고 지목했다. 그만큼 일반 국민과 전대협 386 사이에 경제에 대한 감수성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서민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는 노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반응을 보면 경제에 대한 두 집단의 인식 차이가 더욱 도드라진다. 일반 국민은 73.7%가 ‘위기’라고 대답한 반면, 전대협 출신은 61.9%가 ‘위기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경제’를 살려서 ‘40대’를 다시 우군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한, 노무현 정부 지지도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조짐이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나 세력을 꼽으라는 질문에, 일반 국민은 열린우리당(34.8%) 노사모(12.3%) 386 측근(8.2%) 청와대 비서진(8.0%) 한나라당(7.4%) 순으로 대답했고, 전대협 출신은 일반 국민(32.7%) 열린우리당(18.3%) 청와대 비서진(18.3%) 386 측근(8.4%) 시민단체(7.4%)라고 답했다.

정당 지지도는 일반 국민에서 한나라당(32.9%) 열린우리당(28.4%) 민노당(13.8%) 민주당(3.0%) 순으로 나온 데 반해, 전대협 출신들은 열린우리당(54.5%)과 민노당(27.7%)을 주로 지목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각각 1.5%, 1.0% 지지율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들과 운동권 386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