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대세 갈랐다
  • 워싱턴·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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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보수층 ‘표 쏠림’ 뚜렷…높은 투표율도 부시에 유리
국내 경제는 엉망이요, 전후 이라크 정책도 표류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죽을 쑤던 부시가 이번 선거에서 거뜬히 재선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의 베테랑 정치 평론가인 데이비드 브로더는 “이번 선거에서도 2000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유권자별 선호 경향이 뚜렷했다. 남성과 백인, 농촌 거주자, 총기 소유 지지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부시를 지지한 반면 여성과 소수 민족, 도시 거주자, 비종교적인 사람들은 케리를 찍었다”라고 진단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들 부시 지지층은 중부와 남부 그리고 북부에 사는 주민들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브로더의 지적대로 이들 대부분은 농촌 지역에 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데다 백인이 주류를 이루며, 이념적으로는 ‘중도 우파’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다른 무엇보다 후보의 도덕적 가치와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지도력을 최우선 고려 사항으로 여겼다. 이들은 케리가 최대 공격 목표로 삼은 부시의 잘못된 ‘정책’보다는 전시 지도자 ‘부시’에게 더 비중을 두고 투표했다.

중부와 남부 ‘보통 시민’들이 주류로 떠올라

이런 현상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일자리를 잃어 최대의 ‘피해 주’로 알려진 오하이오 주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여론조사 결과, 오하이오 주 유권자들은 경제보다는 후보의 도덕적 가치를 더 중시해 부시를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는 일자리 부족 문제도 대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역적으로도 이번 대선에서 표심의 ‘주류’는 진보적 성향의 동부나 서부가 아닌 나머지 지역에 사는 ‘중도 우파’ 유권자들이었다. 지난 대선 때 고어를 찍었다가 이번에 부시로 바꿨다는 한 전문직 여성 유권자는 색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즉 “케리가 독식한 동부와 서부 주민들은 밥술이나 먹고 고등 교육을 받은 리버럴이지만 미국 땅덩어리 태반을 차지하는 나머지 지역의 미국인은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과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바로 이들이 이번에 부시에게 몰표를 던졌다”라는 것이 그녀의 해석이다.

이번 대선의 또 다른 특징인 ‘높은 투표율’도 결과적으로는 부시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 다른 누구보다 부시의 최대 지지층인 기독교 보수층이 대거 투표소로 나오는 ‘보수 대결집’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골수 우파라 할 이들에게는 부시의 경제 실정도, 전후 이라크의 난맥상도 처음부터 시비 대상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줄기 세포 연구 제한과 낙태 금지를 신봉하며, 연방 정부 차원의 종교 학교 지원을 다짐한 부시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다.

선거 과정에서 이들을 특히 자극한 것은 지난해 메사추세츠 주를 시발로 불붙었던 게이(동성연애자)의 결혼 합법화 문제였다. 대선 투표가 있던 지난 11월2일 투표 용지에는 대선 후보 외에 11개 주에서 게이의 결혼을 금지시키자는 주민 발의안에 대한 찬반 여부도 올라있었다. 보수 기독교도 유권자들은 예외 없이 투표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졌다.

부시가 이번 대선에서 추가로 얻은 표는 3백60만 표. 그런데 이처럼 추가로 얻은 표 가운데 상당수는 바로 이런 기독교 보수층으로부터 나왔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4년 전에 이어 이번 선거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백악관 선임 자문관 칼 로브가 얼마 전 “지난 대선 때 투표하지 않은 기독교 보수층 유권자 수백만명을 투표장에 나오게 한다면 부시의 재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라고 호언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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