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국회’ 관객 모독 3류 호러쇼
  • 이숙이·고제규 기자 ()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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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를 펼치겠다며 출발한 17대 국회가 난장판이 되었다. 막말과 고성이 뒤덮은 난장판 국회를 만든 장본인은 다름아닌 초선 의원들이다. 과연 17대 국회에 희망은 남아 있는 것일까?
지난 11월12일 막말과 몸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국회 본회의장을 지켜보던 한 국회 직원이 국회를 63빌딩 쪽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한강) 가운데 섬(여의도)이 있으면, 섬 위쪽은 모래가 쌓이고, 아래쪽은 쓰레기가 쌓인다더라. 실제로 63빌딩 쪽에는 모래가 잔뜩 쌓여 있다.” 요컨대 여의도 아래쪽에 있는 국회는 쓰레기더미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셈이다.

그의 말마따나 이 날 국회에서는 하루 종일 악취가 진동했다. 총리의 ‘차떼기’ 발언으로 활동을 정지한 지 14일 만에 겨우 문을 연 국회가 여야 의원들의 야유와 욕설, 삿대질과 고함 등으로 최악의 꼴불견을 연출한 것이다. 구태 정치를 복원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초선 의원들이었다. 그들 말대로 ‘꼴통들의 안하무인 퍼레이드’로 얼룩진 17대 국회 최악의 이틀(11월11~12일) 모습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나홀로 독설형

대정부 질문은 원래 일괄 질문, 일괄 답변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이 면책특권을 이용한 정치 폭로의 장으로 악용되자, 2003년 1월22일 국회법을 개정해 일문일답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결과는 물거품이었다. 11월12일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질문을 시작하고 6분 동안 내리 준비된 원고만 읽어내려 갔다. “나라가 거꾸로 돌아가는 해답을 찾았다. (대통령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렇다.(중략) 요즘 유행하는 언어 습관으로 무식하다, 꼴통이다 정도만 돼도 괜찮은 편에 속할 텐데(중략).” 참다못한 김덕규 부의장이 일문일답을 하라고 최의원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의원은 다시 원고를 읽어내려 갔다.

정두언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0분 동안 질문 없이 이해찬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며 연설을 이어갔다. 김원기 의장이 일문일답을 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질문을 하겠다며 허성관 행자부장관을 불러낸 정의원은 또다시 나홀로 연설을 이어갔다. 김원기 의장이 마이크를 끄고, 한나라당이 항의 소동을 벌이는 8분 동안 허장관은 답변석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목희 의원도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판결을 사법 쿠데타라며 정치 연설을 했다. 그나마 원고에 있던 ‘헌재 재판관 7명은 탄핵받기 전에 옷을 벗어라’는 대목은 뺐지만, 그의 발언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멍석깔이 질문형

11월12일 열린우리당 조배숙 의원은 정책 질의를 하다가 느닷없이 원고에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동료 의원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원고를 미리 보았더니 이해찬 총리의 의원 시절 활동이 형편없다며 비판할 것 같더라. 13~14대 때 훌륭했는데 16대 때는 당직을 맡아 상대적으로 국회나 상임위에 출석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 인신공격성 질문에 편들기 질문으로 맞선 것이다. 인신공격성 공세도 문제지만, 총리와 여당 의원의 짜고 치기도 구태였다. 자신의 질문을 도둑맞은 정두언 의원은 ‘청탁 질의’라고 비판했다.

멍석깔이 질문은 서재관 의원(열린우리당)이 이어갔다. 서의원은 “최구식 의원이 인격을 폄하하는 질문을 했다. 이총리가 답변할 기회가 없었는데 답변해 보시죠”라고 총리에게 자락을 내주었다. “이해찬 총리가 사용한 ‘사의’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감사하다와 사과의 뜻이 있다, 어떤 뜻이냐?”라며 자상하게 묻기도 했다. 이해찬 총리는 “제 고향은 한학이 발달한 충청남도 청양인데, 사의라는 말이 오히려 격조 높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면박 주기·말꼬리 잡기형

그나마 있었던 일문일답도 말꼬리를 잡거나, 하나마나한 질문이 되풀이되었다. 한나라당 내 자유포럼을 이끌고 있는 이방호 의원은 말꼬리 잡기로 일관했다. “남북 간에 체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라는 물음에 허성관 행자부장관은 “글쎄요. 대충 끝났다고 보이는데요”라고 답했다.

이의원은 곧장 “장관, 지금 무슨 이야기입니까. 북한과 우리와 체제 경쟁이 끝나다니요”라고 몰아붙였다. 총리에게 해야 할 질문이 허장관에게 집중되면서, 허장관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북한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자세히 모릅니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글쎄요.” 허장관은 이 날 답변으로 이튿날 또 곤욕을 치렀다. 최구식 의원이 허장관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은 후 노동당 규약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한선교 의원은 이해찬 총리의 “~라니까요”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말투를 문제 삼았다. 이 말투를 ‘불경스럽고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말투’라고 단정한 그는 이총리에게 질문한다며 불러냈다. 그러나 한의원은 총리가 단상에 서자마자 질문을 할 수 없다며 다시 들어가게 했다. 열린우리당 의석에서 “장난 치냐?” “시장판이냐”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면 말고형

아니면 말고식 질의는 색깔론 공세 때 단골로 등장했다. 11월11일 한나라당 박성범 의원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상대로 특유의 색깔론을 펼쳤다. “북한의 권력 구조 속에는 남조선의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중략) 그렇다면 이 정부는 북한과 공조해서 대한민국의 국보법을 폐지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남북 공조로 몰아간 것이다.

박의원이 근거로 든 북한의 대책기구란 ‘남조선의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대책위원회’(문재철 위원장)를 말한다. 그런데 이 위원회는 1994년 12월21일에 만들어졌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위원회를 근거로 친북적이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같은 날 김문수 의원도 정동영 장관을 상대로 아니면 말고식 질문을 쏟아냈다. “최근 북한 사단장급 현역 장성이 휴전선을 통해 귀순해왔다고 합니다. 남북 분단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실입니까?” 정장관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답했고, 김의원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지난 달 동해로 내려온 잠수함이 동해안 근처 모 사찰을 통해 간첩을 국내에 잠입시켰다는데 사실이냐?”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정장관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답했고, 이번에도 김의원은 그냥 넘어갔다.

관중석에서 부채질하기

17대 국회 들어 관중석에서 활약하는 정치 훌리건이 부쩍 늘었는데, 대표 주자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다. 사단이 나면 기자들이 주의원의 입부터 쳐다볼 정도다. 11월11일 주의원은 이방호 의원 질문에 허장관이 답변을 못하자 “너무 어려운 거 묻지 말아요. 노정권 수준에 맞춰 물어요”라고 말했다. 이방호 의원이 질문을 끝내자 “잘했어, 본회의장 한번 돌아요”라고 소리쳤다. 주의원은 다음날에는 자리를 박차고 단상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이목희 의원이 사법 쿠데타라는 발언을 마치자, 단상까지 올라가 항의했다.

이에 맞서는 열린우리당의 입은 단연 유시민 의원. 정형근 의원이 “열린우리당이 50% 이상 차지한 국회는 해산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자, 유의원은 “웃기고 있어요”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이방호 의원이 허성관 행자부장관에게 북한 노동당 규약을 읽어보았냐고 질문하자, 답변은 유시민 의원이 했다 “그거 읽으면 국가보안법에 걸려요.”

대변인간 장외 열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대변인단 사이의 공식 논쟁도 막말로 품위를 잃고 있다. 대체로 도발은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먼저 한다. 11월12일 전대변인은 에이펙 회의 참석차 출국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탄핵 때, 휴가 갔을 때, 해외 순방 때 공통점은 그래도 나라가 조용했다는 뼈 있는 농담이 있다. 되도록 (외국에) 오래 머무르시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저주는 저주를 퍼붓는 한나라당의 이성과 인간성을 피폐시킬 뿐이다. 그분(전여옥)도 자식을 키우지 않느냐. 최소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해야 하지 않느냐”라며 되받아쳤다. 대변인단 간에 오가는 논평은 갈수록 감정적이고 흠집 내기 일색이다.

상생은커녕 도무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17대 국회의 삭막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야 모두 상대방에 대한 불인정 심리와 적대감을 첫 번째로 꼽는다.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솔직히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감’이 안되는 사람들이 어영부영 대통령과 국회의원 자리를 꿰어차고 있다는 심리가 한나라당에 팽배하다는 것이다. 이런 불복종 심리는 두 번씩이나 대권을 놓친 데서 오는 상실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열린우리당에도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 하면 민정당 잔당 세력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거기에 탄핵 사태까지 거치면서, 한나라당 사람들은 정말 상종 못할 사람들이라는 적개심까지 보태졌다”라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이를 열린우리당의 ‘비뚤어진 우월 의식’이라고 자아 비판했다. “개혁 세력이 대선·총선에서 다 이기다 보니 수구 세력을 역사에서 밀어낼 수 있다는 역사적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각 당에서 강경론자들의 목소리만 키우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 공격만이 각광받고, 이른바 유화론자들은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강경론이 워낙 우세하다 보니 상대 당 의원들과 말을 섞거나 밥자리·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최근 한나라당 파트너에게 식사나 함께 하자고 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이들은 또 어쩌다 술자리를 가져도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지극히 꺼린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정감사 끝나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폭탄주 한잔 하셨다면서요?”라는 기자의 ‘지나가는’ 질문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예전에는 낮에 싸우던 의원들이 밤이면 너무 쉽게 의기투합해 문제가 되곤 했는데, 지금은 여야간 대화 통로가 너무 막혀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가 ‘품위 있는 말싸움’에 익숙하지 않아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정치인들이 아무리 화가 나도 표현을 걸러서 말을 했는데, 지금은 금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은 이를 ‘칼 대 말’의 대결에서, ‘말 대 말’의 대결로 바뀐 권력 지형의 변화 때문이라고 독특하게 해석한다.

“국민의 정부 이전까지는 국회가 ‘칼 대 말’의 대결 구도였다. ‘칼’로 권력을 잡고 운용하는 여권에 대항해 야당은 말로 싸웠는데, 칼과 말이 싸우면 국민은 ‘말’ 편을 들어주곤 한다. 그런데 ‘말’로 권력을 잡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본격적인 ‘말 대 말’의 시대가 열렸는데, 여야 모두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말’을 이기겠다며 ‘막말’을 동원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토론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외국의 경우 품위 있는 말싸움이 결국 수사학으로 발전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문의원은 싸우다 밀리면 ‘너 몇 살이냐’고 고함치는 우리 현실에서 막말 정치가 정화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권에 ‘어른 대접’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11월1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보인 행태가 대표적이다. 남경필 의원은 김원기 의장이 자기 당 정두언 의원의 발언을 제지하자 달려나가 5분 넘게 항의했다. 김의장이 장내 정리를 위해 들어가라며 ‘안 들어가면 퇴장 시키겠다’고까지 했지만, 그는 ‘퇴장시킬 테면 시키라’며 버텼다.

13대 국회부터 국회에 몸 담아온 한 고위 인사는 “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장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만 해도 아무리 격렬하게 설전을 벌이다가도 의장이 ‘order(질서)’라고 하면 일순 장내가 정리되는데, 우리는 갈수록 의장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추락하는 의장 권위, 말발 안서는 당 지도부

여야 지도부 역시 당 안에서 ‘말발’이 안 서기는 매한가지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지도부를 ‘무능하다’며 불신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차기 권력을 둘러싼 선명성 경쟁으로 지도부 흔들기가 예사롭지 않다. 당 안의 지도부 푸대접은 여야간 협상력 약화, 의원들의 단독 플레이로 귀결된다.

한 중진 의원은 이같은 ‘리더십 붕괴’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예전에는 당 지도부가 공천권과 정치자금을 다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의원들이 지도부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윤활유’ 부재를 거론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야당에 ‘떡값’도 돌리고, 또 검찰이 누구를 빼달라는 식의 청탁을 들어주기도 했기 때문에 일종의 공범 의식이 작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일까? 17대 국회가 출범 5개월 만에 기대주에서 깡통주로 급전직하하자, 정치권에서도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도화선이 된 대정부 질문부터 손보자는 논의가 무성하다.

하지만 아무리 제도를 뜯어고쳐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한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이 우선 서로를 인정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가치관이 달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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