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 뺨치는 ‘모바일 중독’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12.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고등학생의 ‘휴대전화 24시’/하루에 문자 메시지 100여 통 주고받아
호프집을 경영하던 강용희씨(35)는 얼마 전 서울 천호역 근처에 휴대전화 튜닝 가게를 열었다. 휴대전화 튜닝이란 휴대전화에 새로운 색을 입히거나, 키패드·안테나 등에 불이 들어오도록 광섬유를 넣거나, 혹은 벨 소리를 증폭시키는 등 휴대전화를 개조하는 일을 말한다. 휴대전화 튜닝은 원래 일본에서 시작되었는데, 한국에서 더욱 발달했다.

휴대전화 성형수술이 요즘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붐이다. 튜닝을 위해서는 보통 2만~3만 원, 풀 옵션으로 하려면 20만원 이상이 든다. 그러나 휴대전화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신세대는 기꺼이 이 비용을 지불한다.

고등학교 1학년인 김동규군은 휴대전화 튜닝 마니아다. 강씨의 가게 단골 손님인 김군은 스스로를 ‘모바일 중독자’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1학년인 김군의 일상은 휴대전화를 어떻게 꾸미고 어떤 휴대전화로 바꾸느냐 하는 것과, 문자를 어떻게 답하고 어떤 무선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할까에 집중되어 있다. 휴대전화 때문에 부모에게 여러 번 혼이 났지만, 김군의 모바일 중독은 개선되기는커녕 더 깊어지고 있다. 모바일 중독자인 김군의 일상을 한번 들여다보고 지난 11월 실시된 YWCA의 청소년 휴대전화 이용 실태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았다.

김군은 하루를 휴대전화 모닝콜로 시작한다. 알람 시계와 달리 휴대전화 모닝콜은 여러 가지를 설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다양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는 휴대전화 모닝콜을 선호한다. 밤새 잠들지 않고 주인을 지킨 휴대전화는 하루 종일 그와 함께한다. YWCA 조사에서 학생들은 무인도에 가게 될 때 가져가고 싶은 것으로 식량 다음으로 휴대전화를 꼽았다. 부산의 한 교사는 “등교할 때 휴대전화를 안 들고 나오면 요즘 학생들은 지각을 각오하고서라도 다시 집에 가서 휴대전화를 가지고 나온다”라고 말했다.

학교 가는 길에는 휴대전화가 말벗이 되어 준다. 무선 데이터 요금이 정액제로 바뀌면서 그는 무선 인터넷 이용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데,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버스가 올 때까지 무선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보면서 기다린다. 버스가 오면 휴대전화를 요금 단말기에 대고 계산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사실 그의 휴대전화에는 버스 요금을 결제하는 모네타 기능이 없다. 모네타 기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는 교통카드 칩을 분해해 휴대전화에 오려 붙였다.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좋은 휴대전화를 가진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이다.

김군은 수업 시간에도 휴대전화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쉼 없이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무료함을 달랜다. 문자를 보내고 답하는 것은 친구들 간의 우정을 확인하는 일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하루에 이용하는 문자 서비스 횟수는 100여 통으로, 웬만한 어른들이 한 달 동안 보내는 문자를 그는 하루에 다 보낸다. 무제한 문자 요금이 도입되면서부터 이런 문자 중독증은 더욱 심해졌다. YWCA 조사 결과 중고등학생들은 하루 평균 53통씩 문자를 발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압수는 ‘최악의 형벌’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이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걸리면 최고의 형벌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바로 휴대전화를 압수당하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압수당하면 친구의 문자에 답할 수 없고 게임 등급도 처지기 때문에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압수당할 때에 대비해 사용하지 않는 구형 휴대전화를 여분으로 지니고 다닌다.

종종 휴대전화는 교실에서 사제 갈등의 원흉이 되곤 한다. 학생들은 휴대전화가 없는 상태를 못견디기 때문이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감과 초조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들은 휴대전화를 빼앗아 가려는 교사에게 격렬하게 저항한다. 통영의 한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남혜수 학생은 휴대전화 이용자 사이트에 ‘매 수업 시간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걸리는 학생이 2~3명씩 있다. 그때마다 수업의 맥이 뚝뚝 끊긴다.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글을 올려놓았다. YWCA 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학생이 아무 때나 전화를 받고, 문자를 보낸다고 답했다.

쉬는 시간에는 본격적인 휴대전화 놀이가 시작된다.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아직 성능이 조금 떨어지지만 편리해서 폰카메라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특히 폰카메라는 몰래 카메라로 쓰는 데 유용하다. 요즘은 MP3 대신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것이 유행이다. 멜론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이용료가 싸졌기 때문이다. 이런 휴대전화 중독 현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 상계동 신상중학교 박장환 교사는 “모바일 중독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 고학년일수록 중독이 심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점심 시간에는 휴대전화에게도 밥을 주어야 한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다. 휴대전화의 기능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어른들은 배터리를 2~3일 쓸 수 있지만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10대들은 배터리가 한나절을 넘기지 못한다. 점심 시간이면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아이들 때문에 교실 안의 콘센트는 빈 곳이 없다.

오후 수업 역시 휴대전화와 함께 한다. 간혹 과제물이나 시험 범위 등을 메모하는 데 휴대전화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는 데 이용한다. 휴대전화는 간혹 친구들 사이에 분란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휴대전화를 정액제로 이용하고 있는데, 약정한 사용 시간을 다 쓰면 친구 것을 뺏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김군은 “준서비스(SK텔레콤)를 쓰는 아이들은 15일이 넘어서면, 핌서비스(KT)를 쓰는 아이들은 월초가 되면 약정 시간을 다 써버려 휴대전화를 빌리느라 혈안이 된다”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휴대전화 바꿔

교사가 교실을 비우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휴대전화 이용의 황금시간이다. 이때는 주로 모바일 게임을 이용한다. 인터넷 게임과 달리 모바일 게임은 여럿이 함께 즐기는 롤플레잉 게임보다 혼자 즐기는 아케이드 게임이 인기다. 친구들 중에는 인터넷 게임 중독처럼 모바일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친구도 있다. 인터넷 미니홈피를 관리하고 e메일을 확인하는 것도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주로 하는 일이다. YWCA 조사 결과,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학생 중 79.7%가 무선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김군이 한 달에 내는 휴대전화 요금은 10만원 안팎이다. 용돈의 대부분을 휴대전화요금에 쏟아 붓는 셈이다. 그나마 10만원도 정액요금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할인된 가격이다. 문자 서비스나 무선 인터넷 요금이 20만원 가까이 할인되는데도 10만원이나 내는 것이다. YWCA가 조사한 학생의 18.2%가 매월 휴대전화 요금으로 5만원 이상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교체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김군은 휴대전화를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바꾸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인터넷 중고폰 매매 사이트를 통해 바꾼다. YWCA 조사 결과, 휴대전화를 가진 중고등학생의 38.6%가 1년 이내에 휴대전화를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