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노무현보다 윤도현이 반가워”
  • 도쿄·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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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방일 기간에 열린 윤도현 밴드의 일본 공연이 대성황을 이루었다. 조총련이 초청한 이번 공연은 ‘그들과 우리’가 뜨겁게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국빈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국민과의 대화’를 갖는다는 소식을 들은 조총련의 한 간부는 6월7일 이렇게 말했다. “고이즈미도 만나고 보아도 만나고 일본 국민도 만나지만 같은 동포인 우리는 만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분단 조국의 현실이다.” 그의 말은 조총련 소속 재일 교포들의 요즘 심경을 그대로 대변한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방일 기간에 조총련 교포들은 외롭지 않았다. 조총련 교포 사회를 들썩들썩하게 만든 특별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윤도현 밴드였다. 윤도현 밴드는 6·15 남북 정상회담 3주년 기념 ‘오 통일 코리아’ 콘서트에 조총련 산하 조선청년동맹의 초청을 받고 참가했다. ‘짜작 짜작 작 조~국통일, 짜작 짜작 작 조~국통일.’ 지난 6월6일 거북선 모양을 본떠 만든 도쿄조선문화회관 구내는 윤도현 밴드의 열창으로 달아올랐다. 월드컵 응원 구호를 바꾸어 만든 통일 구호를 외치는 관객들에게 윤도현 밴드는 <오 필승 코리아>를 개사해 만든 <오 통일 코리아>를 열창하며 화답했다. 이 날 윤도현 밴드는 남한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조총련 무대에 섰다. 2천여 좌석은 빈 자리 없이 꽉 채워졌다.

<가을 우체국> <사랑 2> <너를 보내고> 등 자신들의 히트곡으로 시작해 분위기를 띄운 윤도현 밴드는 <하노이의 별>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철망 앞에서> 등 사회 참여적인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조총련 소속 예술인들로 구성된 금강산가극단과 통일의 열망을 담은 <우리는 하나>를 합창한 윤도현 밴드는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지었다. 조총련 교포 사회에서는 이번 윤도현 밴드의 공연이 큰 활력소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핵 개발 문제와 일본인 납치 사건 때문에 북·일 관계가 첨예해지면서 조총련 사회가 크게 침체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 사회에 반조총련 정서가 퍼져 매년 만 명이 넘게 이탈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공연 외의 시간에 윤도현 밴드 멤버들은 도쿄조선대학교·금강산가극단·도쿄조선중고급학교 등 ‘평양 냄새가 물씬 나는’ 조총련 산하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조총련 시설 중에 처음 들른 곳은 도쿄조선대학교였다. 평양 시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도쿄조선대학은 1956년에 설립된 유일한 재외 동포 대학인데, 2년제 3년제 4년제 과정을 모두 두고 있다. 8개 학부 학생 천여 명은 대부분 교포 3세들로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 안내를 맡은 외국어학부 3학년 장혜주씨는 밴드 멤버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조총련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안 쓰는 일본인이 많다. 우리같이 민족 차별을 받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남한에 가서 꼭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학교 구경을 마친 멤버들에게 조선대학교 학생위원회는 통일 염원을 담은 가사를 전달하며 꼭 곡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윤도현 밴드가 다음으로 간 곳은 금강산가극단이었다. 조총련 산하 예술단으로 1955년에 창설된 금강산가극단은 기악부·성악부·무용부 등 총 7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강산가극단은 매년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전일본을 순회하며 재일 교포들을 대상으로 위문 공연을 연다. 이번에 윤도현 밴드와 공연한 ‘향’은 금강산가극단의 프로젝트 그룹인데, 태평소를 개량한 장세납과 대금을 개량한 젓대 등을 이용해 국악에 재즈와 뉴에이지 음악을 접목한 ‘퓨전 국악 밴드’이다.

공연장에 가기 전에 밴드 멤버들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최초의 조총련 민족 학교인 도쿄조선중고급학교였다. 학교 현관에는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희생된 효순이와 미선이를 영원히 잊지 말자’는 대형 선전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밴드 멤버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구대석 교장은 “일본 사회에서 학생들이 뼈에 사무치게 차별을 느끼고 살고 있다. 좋은 공연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다.

1955년 처음 도쿄조선중고급학교가 개교한 이래 일본에는 초·중·고 민족학교가 총 82개 개설되어 현재 만여명이 일본 학교의 정규 교육 과정에 준하는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과 똑같은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민족학교는 일본 정부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는다. 제대로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범대학에 진학한 졸업생이 교생 실습을 마쳐도 학점 인정을 받지 못한다.

올해 초 일본 정부는 민족학교 졸업생의 대학 입학 자격을 제한하는 조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족학교를 졸업해도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따로 보아야 대학 입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조총련은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고, 학생들도 차별 철폐 서명운동에 나섰다. 공연 중간에 짬을 내 서명운동에 동참한 윤도현 밴드는 학교 인근의 조주역에서 일본인들을 향해 ‘어째서 우리에게는 일본 대학의 시험 자격을 주지 않는가’라고 쓰인 피켓을 높이 치켜들었다.

민족학교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차별뿐만이 아니다. 일본인들의 이지메(집단 괴롭힘)도 큰 문제다. 북·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치마 저고리를 입은 민족학교 여학생들이 등하교길에 일본 우익단체 사람들로부터 해코지를 당하는 일이 빈발했다. 학교측은 고육지책으로 학생들이 등하교길에 입을 수 있도록 일본 학교의 교복을 닮은 제2 교복을 두었다.

민족 교육을 중시하고, 여전히 한국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능력을 중요시하지만, <아리랑>보다 일본 그룹 이그자일의 <투게더>를 더 좋아하는 신세대 아이들을 위해 민족 학교들은 교칙을 유연하게 바꾸고 있다. 학교 안에서는 치마 저고리를 입게 하되 머리 모양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염색을 하든 삐침머리를 하든 제멋대로 할 수 있게 놓아두는 것이다.

최근까지 민족학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문제였다. 3세, 4세로 내려오면서 민족 정체성이 약해지자 자신들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혼란을 겪는 학생이 많아진 것이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차별과 일본인들의 괴롭힘까지 더해지면서 민족학교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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