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넘어 경계를 허물며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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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삼보일배의 주역들/“말문 닫았지만 가슴은 탑니다”
이미 말문을 닫아버린 이들은 그저 표정과 손짓으로 말할 뿐이었다. 며칠 동안 낯을 익혔는데도 그저 웃으며 인사하고, 손을 흔들며 잘가라 한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왜 이런 고행을 자청했는지 더 이상 그들의 입을 통해서는 들을 수 없었다. 필담으로 겨우겨우 얻어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일찍이 수경 스님(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 상임 대표)과 문규현 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는 함께 여러 차례 ‘일을 낸’ 전력이 있는 이른바 ‘스타급’ 성직자들. 2001년 5월에도 두 사람은 명동성당에서 청와대까지 새만금 공사 중단을 염원하며 삼보일배를 진행했다. 불교와 천주교, 기독교와 원불교 4대 종교가 손을 맞잡은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지휘한 주역들이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는 이희운 목사(기독생명연대 공동 대표·42)와 김경일 교무(새만금 생명살리는 원불교 사람들 대표·50)는 낯설다. 수소문 끝에 들을 수 있었던 이들의 이력은 몸고생뿐 아니라 마음고생 또한 적지 않으리라는 짐작을 갖게 했다.

이희운 목사(전주 나실교회 주임목사)와 김경일 교무(전북 익산 문화교당 주임 교무)는 새만금 개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전라북도에 터전을 갖고 있다. 그만큼 운신할 폭이 넓지 못하다. 이목사와 김교무는 풀뿌리 성직자들답게 삼보일보 행렬 때도 ‘전북 민심을 돌려보겠다’며 수경 스님·문규현 신부와는 따로 길을 잡아 달포 가까이 전북 곳곳을 누빈 다음 합류했다.

특히 전라북도 개신교도들은 새만금 간척 찬성률이 높다. ‘균형 개발’을 부르짖은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가 기독교도였고, 개신교 목사들이 이미 지역 유지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삼보일배가 불교 수행 방식의 변형이라는 점도 이목사를 난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목사의 핸드폰을 관리하는 진행팀 장지영씨는 “목사가 왜 절을 하느냐, 일요일에도 절하는 걸 보았다, 이단이다 등등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 가득하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는 일요일에는 참가하지 않으며, 십자가를 들고 기도를 하고 있다.

이목사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2년 동안 막노동판과 공장을 전전하며 이른바 ‘산업 선교’에 뜻을 두었고, 지금은 외국인 근로자를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정작 이목사는 “주위의 우려가 과장되었다. 젊은 목회자들은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이 많다. 민심은 변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8일 뒤늦게 새만금 갯벌에 포교당 ‘보은의 집’을 차린 김경일 교무는 전북 익산 문화교당 주임 교무다. 전북이 성지인 원불교의 특성상 영광 핵폐기장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환경 문제에 눈을 떴고, 그 관심을 폭넓게 확장하는 중이다. ‘저는 인터뷰할 것이 없어요.’ 필담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이 단 한마디를 써주었다. 묵언 중이어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옆에서 이희운 목사가 웃으며 ‘노사모’라고 써넣는다. 열혈 노사모였던 김교무는 ‘환경 지력이 낮은 대통령’이라고 비난받는 노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지만 끝내 말문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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