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살인을 추억하랴
  • 화성·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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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91년 여성 10명이 희생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이 사건을 그린 영화<살인의 추억>은 대박을 터뜨렸지만, 지금 화성 주민들은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어떻게 살인을 추억할 수 있나? 영화 제목 참 고약하다.” 지난 5월2일 화성경찰서 방종찬 강력계장은 화성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이 흥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날 강력3반 형사 3명과 함께 화성시 송산면 변사 사건 현장 부근에서 탐문 수사를 하고 있었다.

지난 4월21일 이곳 송산면에서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 시체가 발견되었다. 또다시 화성이라는 장소에서 손발이 결박된 채 농수로에 버려진 시신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옛 연쇄 살인을 떠올렸다. 여기에 영화 흥행이 대중의 악몽을 증폭시킨다. 송산파출소에서 만난 방계장은 이 사건이 연쇄 살인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모방 사건일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겠다. 영화 흥행 성적과 비례해서 우리는 그만큼 힘들어진다. 또 연쇄 살인이 나면 누가 책임지겠나”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1986∼1991년 여자 10명이 살해된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 방종찬 강력계장은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다. 1987년부터 화성경찰서 수사계에서 일했고, 1991년에는 방범계장을 맡았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밤마다 담요 한 장을 두르고 영하의 추위 속에 오솔길 옆을 떨면서 지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도를 새로 만들다시피 하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탐문했고, 샛길마다 방범대원을 배치했다. 주민 수보다 경찰 수가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도 살인 사건은 다시 터졌고, 그 때마다 무력감을 느꼈다.”

영화에서는 형사(송강호)가 범인이 무모증 환자라며 음모(陰毛) 없는 남자를 찾는답시고 목욕탕에 죽치고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방계장은 “어디 그것뿐이었나. 범인이 성도착자라고 해서, 성기에 구슬 박은 사람을 찾느라 애쓴 일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음모 이야기는 동네에서 유명했다. 초기 살인 사건 때 현장에 별다른 증거가 없었던 것과 달리 8차 살인 사건 등에는 10cm 가량인 음모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주유소에서 일했다는 김항기씨(37)는 “어느 날 형사들이 찾아와 차로 끌고 갔다. 차 안에서 바지를 내리고 그곳 털을 뽑아갔다”라고 말했다. 안용중학교 정재흥 교감(57)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경찰이 학교를 방문해 음모를 채취해야 하니 혈액형이 B형인 남자 학생들을 다 모아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중학생밖에 안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긴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강력히 항의했다. 결국 경찰은 물러났다.” 그는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생 가운데에도 조숙한 아이들이 있기는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화성경찰서는 지금까지 연쇄 살인 사건 수사본부를 해체하지 않고 태안파출소 3층에 유지하고 있다. 아직 공소 시효가 남은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34~35쪽 딸린 기사 참조). 수사관은 반장을 포함해 4명이다. 수사본부라고는 하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전담한다기보다는 화성경찰서 강력3반에 소속되어 인근 마을의 강력 사건을 맡고 있다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올해 2월부터 수사본부에 합류한 최석헌 형사(37)는 “유족들 한을 풀어야 할 텐데 범인을 잡지 못하니 죄를 짓고 있는 심정이다.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가끔 제보 전화가 오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없다. 수사본부 형사들은 2년마다 교체된다.

영화 속에서는 연쇄 살인 범인에게 강간당하고 목숨을 건진 여인이 등장한다. 실제 화성에는 강간 직전에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을 건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게 1986년 11월19일 8시 반쯤이었다.” 화성시 용주골에 살고 있는 정 아무개씨(54)는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웃집 김장을 담가 주고 돌아오던 길에 어둠 속에서 괴한이 나타나 그녀의 목을 졸랐다. 범인은 “꼼짝 마!”라며 위협했다. 정씨는 순간 태안리에서 여자 2명이 강간당한 후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나도 죽겠구나….” 괴한은 주먹으로 정씨를 마구 때렸다. 얼굴에서 피가 나고 이가 2개 부러졌다. 범인은 정씨를 길에서 떨어진 밭으로 끌고 갔다. 때마침 밭에는 며칠 전 뿌린 쇠똥이 그득했다. 정씨의 무릎이 쇠똥 속에 빠지는 순간 목을 조르던 손이 느슨해졌다. 이때를 놓칠세라 그녀는 고함을 지르며 정신없이 도망쳤다. 정씨는 “범인이 똥 묻은 나를 강간하기 싫었겠지”라고 말했다. 쇠똥이 그녀의 목숨을 살린 셈이다. 이 사건 이후 정씨는 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현재 사건이 난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씨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인지 이야기를 꺼내는 도중 가끔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녀는 범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만약 얼굴을 봤다면 그놈이 나를 죽였겠지.” 정씨의 이 대답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인물의 말과 똑같았다. 영화 속 여인은 ‘입을 막은 범인의 손이 여자처럼 부드러웠다’고 증언한다. 정씨는 범인의 손이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면장갑을 끼고 있어서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태안읍 병점역은 연쇄 살인 사건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용의자가 기차에 치여 죽는 곳도 병점역이다. 최근 이곳에는 전철이 개통했다. 수원을 지나 서울까지 가는 열차가 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월30일 열린 병점역 개통식에는 주민들이 몰려 잔치 분위기였다. 1990년 11월 9차 살인 사건 때 희생된 김미정양 가족이 살던 집은 기와 지붕만 덩그러니 남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미정이네 부모는 보상을 받고 이사했다고 한다. 미정양이 실종된 곳으로 알려진 원바리고개. 지금 그곳은 아파트 공사로 산 자체가 아예 없어졌다. 귀를 찢는 듯한 공군 전투기 소음만 빼고는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혼자 밤거리를 걷는 여성도 간혹 보였다. 공단이 근처에 있어서인지 거리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듯한 외국인 노동자도 자주 눈에 띄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불쾌하다는 것이다. 연쇄 살인 사건 당시 마을에서 농기계 사업을 했다는 윤명길씨(37·운수업)는 영화를 볼 생각도 없고, 마음에 안 든다고 비난했다. “6년 전 서울로 차를 몰고 갔다가 교통위반 딱지를 떼인 적이 있었다. 화성에서 왔다고 말했더니 교통순경이 딱지 뗄 생각은 안하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 날 놀렸다. 그렇게 위험한 데서 어떻게 사느냐고. 화성은 안전한 도시다. 외부인들의 편견이 지겹다.”

그러나 토박이라는 이몽남씨(46)는 “잊은 채 묻어버리면 안되지. 영화라도 흥행에 성공해 사건을 파헤쳐 봐야지”라고 말했다. 연쇄살인범으로부터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정씨도 “영화를 꼭 보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니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홍정식씨는 “주민 처지에서 유쾌할 수는 없지만, 크게 보면 그 때의 아픔을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같이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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