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불시착한 ‘아름다운 비행’
  • 삼척·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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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정찰하다가 순직한 삼척농업기술센터 고 김진소 소장
재앙은 별똥별처럼 불시에 찾아온다. 삼척농업기술센터 김진소 소장(55)에게도 그랬다. 지난 4월5일 오후 1시33분, 그는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인근에서 자신의 경비행기(호주산 자비루 2200㏄급) SamCheok Air S2112기를 이륙시켰다.

1996년·2000년 그는 동해안에서 일어난 초대형 산불 진화에 직접 나섰다. 그리고 산불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했고, 산사(山寺)를 지키려다가 불길에 갇혀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산불은 그에게 ‘앙갚음해야 할 적’이었다. 그는 적을 감시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비행기 정찰을 생각했다.

골이 깊고 산이 겹겹이 이어진 우리 나라 산악 현실에서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2002년 3월, 그는 급식비·교통비·명절 휴가비 등을 모은 돈 5천4백만원을 들여 비행기를 샀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행동은 무모해 보였다. 35년간 농업 지도만 하고 운항 경력이 단 1초도 없는 공무원이 비행기라니?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있었다. 손재주가 있는 데다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비행기 엔진을 만져보아서 2200㏄급 경비행기는 비행 기술만 익히면 누구나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휴일마다 제천과 안산의 항공학교를 오가며 조종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2002년 9월28일 마침내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맹방해수욕장 근처 격납고 안에 있던 비행기를 끌어내 처녀 비행에 나선 것은 3월 말. 그는 혼자서 비행기를 이륙시킨 뒤 삼척시 경계를 한 바퀴 돌았다. 비행 시간은 90분. 이후 비행기에 방송 시설을 설치한 그는 여섯 차례 더 비행하며 산불 예방에 나섰다. 산 근처에서 불을 지피는 주민이 있으면 어김없이 저공 비행하며 ‘불을 끄라’고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단축 다이얼을 통해 근처 면사무소 산불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위험 신호를 전달했다.

4월5일, 그 날에는 원래 비행 계획이 없었다. 결혼식 주례를 선 뒤 아내와 함께 춘천에 있는 딸에게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집으로 가자마자 비행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전에 없이 삼척→미로→도계→가곡→근덕→삼척 코스를 거꾸로 비행했다. 2시15분, 도계 근처 미인폭포에서 그의 비행기가 목격되었다. 그리고 2,3분 뒤 도계읍 상공에 나타났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는 공설운동장에 두어 차례 착륙을 시도했다(주민들의 증언). 그러나 축구를 하던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자 비행기는 다시 고도를 높였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김소장이 탄 비행기는 2분 뒤 소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황량한 야산 중턱에 곤두박질했다. 그 순간 머리가 계기판에 부딪혔고 피가 솟구쳤다. 주민들의 신고로 급히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7m 앞에 있는 소나무숲에만 떨어졌어도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유가족은 ‘도계 공설운동장에 불시착했다면 목숨을 구했을 텐데’라며 애통해 했다. 사고 원인은 현재 건설교통부 항공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 중이다.

사람이 세상을 뜨면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남는 법. 아내 권씨는 “작년에 강원도청에 근무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억지로라도 끌고 갈 걸 그랬다”라며 후회했다(김소장은 삼척에서 나고 자랐다). 농업기술센터 김경환 과장은 “김소장은 우리하고 많이 달랐다. 5∼10년을 내다보고 일을 추진했다”라고 돌이켰다. 농촌지도사 임진규씨는 “36년간 왕마늘과 백합을 보급하는 등 수없이 많은 일을 하셨다. 그런데 유품을 정리해보니 종이 상자 2개 분량도 안되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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