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일자리 만들어라
  •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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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복지 정책, 취업난 해결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일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대(二代) 실업’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고 있다. 2003년 6월 청년 실업률은 7.4%(36만6천명)로 2002년 말 6.0%(30만5천명)에서 크게 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45세 정년을 의미하는 ‘사오정’이라는 용어가 회자되는 가운데, 젊은이 못지 않은 활력과 오랜 경험을 자랑하는 고령자들이 일자리를 요구하고 있다.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계층 별로 경쟁하는 형국이다.

가장 쉽고 당연한 해법은 경기를 진작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지원을 확대하는 성장 지향 정책을 펴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자리와 고용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과거 개발성장 시대처럼 성장이 고용과 복지를 저절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기술 혁신으로 인해 ‘일자리 없는 성장’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은 채용부터 줄이기 때문에 청년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청년층 실업 문제에는 이밖에도 구조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5년 이후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자는 30만명에서 50만명으로 20만명이나 늘었다. 반면 대기업·공기업·금융업 등의 일자리는 1백50만 개에서 1백20만 개 수준으로 30만 개나 줄었다. 이 과정에서 40대 중반 이후 중년·고령자 들이 대거 퇴출되었고, 20대 청년층의 취업문도 닫혔다. 반면 중소 제조업체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는 단순히 양적 수급 문제가 아니다. 이처럼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수급 불균형에는 우선 획일적인 고등 교육 시스템과 불완전한 진로 선택 관행이 대학 졸업자들이 직업 세계로 이행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글로벌 경제에서 대기업들의 구조 조정과 중소기업들의 생존 경쟁 및 산업 구조 조정 문제가 겹쳐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한 국가가 ‘좋은 일자리’를 지키고 이를 확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 국가의 경제·산업·복지 정책이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재구성되어야 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부양해 일자리를 늘리고, 청년층에게 인턴 제도와 같은 직장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구인과 구직을 효율적으로 결합하기 위한 직업 안정 기구를 정비하고, 고령자를 위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고령자 고용 촉진 사업들을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조세 및 각종 복지비용 등 경제의 인센티브 구조를 채용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다시 설계하고 임금과 복지 시스템을 고용 친화적인 형태로 바꾸어가야 한다. 경영 환경이 불확실하고 위험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고성장 기업들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위험 감수 기업들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타협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모델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히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지상주의적 전략만으로 좋은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노·사·정이 합의할 수 있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의 틀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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