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권투 세계챔피언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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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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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보다 여자 복서들이 더 독해”
여성 복서 이인영씨(32). 그녀는 지난 9월27일, 국내 최초로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르며 ‘철녀 신드롬‘에 화룡점정을 했다. 이인영씨를 만나 보았다.

머리가 짧은 편이다.
일생을 10cm 머리 길이로 살아왔다. 이게 편하다. 화장도 안 하고 다닌다. 운동하는 데 방해만 된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공기놀이·고무줄 등 여자들이 잘하는 것은 두루 못했다. 그래서 주로 방해하면서 놀았다.

여자답게 조신하라는 말을 들었을 텐데.
언니들이 치마도 입혀 보고 머리도 묶어 보며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젠 모두 포기한 것 같다. 어머니까지도 포기했다.

그래도 ‘나도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텐데?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다. 어렸을 때는 낯을 가려서 친척집에 가서 밥을 못 먹었다. 생긴 것 같지 않게 마음이 여리다. 이번 시합 전에는 대기실에서 어머니를 보고 울음보가 터져서 한참 울고 나서 시합에 나갔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었나?
예쁜 여자가 왠지 잘나 보였다. 한·일전에서 붙은 일본 선수가 모델 출신이었는데, 매우 여유 있어 보였다. 속으로 ‘예쁜 것들은 겁도 없나 보다’고 생각했다.

권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폐인처럼 살았다고 들었다.
알코올 중독자로 10년 허송 세월했다. 하루에 소주 다섯 병 이상씩 매일 마셨다.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의사가 ‘죽으려면 조금만 더 마시라’고 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나?
처음에는 집안일 때문에 마셨다. 나중에는 그냥 마셨다. 아무 희망이 없었다.

권투를 시작한 계기는?
술 때문에 병이 나서 방바닥을 뒹굴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세계 여자 챔피언 킴 메서의 경기를 보았다. 바로 저거다 싶었다.

식구들이 권투하는 걸 말리지 않았나?
술 퍼마시는 것보다는 낫다며 안 말렸다.

시합 스타일은 어떤가?
전형적인 인파이터이다. 칠 때 치고 맞을 때 맞아야 직성이 풀린다. 안 맞는 데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한 대라도 더 때릴까를 신경 쓴다.

여자와 시합하는 것이 어떤가?
차라리 남자들이랑 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여자들이 더 독하다. 질 것 같으면 머리통이고 목덜미고 무조건 물고 본다. 당해보면 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는지 알거다.

시합 전에는 어떤 기분이 드나?
긴장이 된다. 첫사랑, 첫 키스보다 첫 시합때 더 긴장했다.

목표는?
주변에서 통합 챔피언에 도전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냥 최선을 다해서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

요즘 기분은 어떤가?
이제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아니 하나 있다. 박세리 허벅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하체가 약한 편이다. 그것만 있으면 남부러울 것이 없겠다.

동년배인 평범한 여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다 아줌마들이다. 그냥 나도 저렇게 늙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남자의 사랑이 아쉽지 않나?
한 남자가 아니라 전국민이 날 사랑하는데 무엇이 아쉽겠나? 남자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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